시민 중심 · 현장 중심
안전한 서울, 질서있는 서울
자세히보기

서울경찰이야기/현장영웅 소개

우리들의 영웅! 당신을 기억합니다

서울경찰 2014. 6. 13. 10:51

 

 

 

  지구 상의 어떤 나라도 전쟁을 치르지 않은 곳이 없고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이 없는 나라 또한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인데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법질서 수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순직경찰관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시원한 바람이 일던 지난 6월 6일 아침.
  제59회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습니다.

 

 

 

 

  순직한 선배 경찰관의 묘역에 꼭 한 번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로 창설된 현충원은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로 승격된 이후,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가 장으로 장의 된 사람 및 국가 · 사회 공헌자, 순국선열 또는 애국지사, 군인 등을 비롯하여 경찰공무원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정문을 통과하면서 마주했던 충성분수탑!

 

  필자 역시 경찰관인지라 각 군 용사들의 조각상 사이에서도 가장 먼저 경찰관 동상이 눈에 띄었는데요. (으쓱) 마치 "잘 왔다, 어서 와라"며 반겨주는 것 같았습니다.

 

 

 

 

  분수탑 뒤쪽을 보니 금잔디 광장 너머로 현충문이란 커다란 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문을 들어서면 하늘을 찌들 듯한 현충탑이 서 있는데요.

 

 

 

 

  대한민국 육, 해, 공 3군 의장대의 정중한 예우를 받으며 경건하고 엄숙하게 현충탑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갔습니다.

 

  현충탑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충의와 휘훈을 총체적으로 상징하는 탑인데요. 이 탑을 중심으로 동서묘역에 국가유공자 묘역, 애국지사 묘역, 장군 묘역, 장교사병 묘역, 경찰관 묘역 등 신분별로 약 5만여 위가 정렬해있습니다.

 

 


<현충탑 비문>

 

  현충탑 참배를 마치고 묘역 상단에 위치한 <경찰충혼탑>을 찾았습니다.

 

 


<경찰충혼탑>

 

  이 탑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경찰관의 넋을 위로하고 그 뜻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것인데요. 탑신 중앙으로부터 양쪽으로 두 팔을 벌린 듯한 날개는 경찰의 따뜻한 보호를 나타내고, 탑신 하단에는 경찰 활동의 상징인 신, 의, 용의 3인 상을 세워 충성과 봉사정신을 나타냈습니다.

 

  탑 전면 하단에는 이은상 선생이 지은 헌시가 새겨져 있으며, 탑신 중앙의 '경찰충혼탑' 글씨는 故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휘호했는데요.

 

 


<충혼탑 참배 중인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이성한 경찰청장>

 

  이곳을 처음 방문한 필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알리는 뜨거운 나팔 소리에 뭉클함을 느끼며 순직한 선배 경찰관들을 떠올렸습니다.

 

 

 

 

  경찰충혼탑 바로 아래에 있는 이곳이 바로 경찰묘역입니다.

 

  꼭 한 번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던 바로 그곳이죠.

 

 

 

 

  경찰묘역은 장병묘역 중 5, 8, 9번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이곳에는 1988년 10월 10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오로지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다 순직한 故 안병하 경무관과 2013년 12월 7일 이륜차 단속 근무 중 법규위반 오토바이에 치여 순직한 故 박경균 경감 등 전사 · 순직한 820명의 경찰관이 잠들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숭고한 희생으로 후배 경찰관에게 귀감이 되는 우리들의 영웅!

 

  자랑스러운 선배 경찰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별이 되다'

 

  안전한 도로를 꿈꾸던 은평경찰서 경비교통과 故 박경균 경감.

 

 

 

 

  한 묘역 앞에 뜨거운 눈물을 보이는 두 여인이 있었습니다.

 

  말을 건네기가 너무도 죄송했지만,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으니 故 박경균 경감의 아내와 처제라고 합니다.

 

  순직한지 1년이 채 안 된 박 경감.

 

  아직도 생생한 남편의 기억 때문인지 그의 아내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故 박경균 경감은 2013년 11월 15일 은평구 구기터널 부근에서 교통단속을 하고 있었고, 오후 4시 10분쯤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과속 오토바이 한 대를 세우기 위해 정지 지시를 했습니다.

 

  하지만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오토바이는 더 빠르게 질주하였고, 박 경감은 오토바이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머리부터 땅에 떨어진 박 경감은 그 충격으로 의식을 잃었고, 곧장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두개골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고 입원치료 중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겠다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故 박경균 경감.

 

  누군가의 가족이고, 동료였을 선배 경찰관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의 묘역 앞에 작은 꽃 한 송이를 헌화했습니다.

 


  '위민정신의 표상'

 

  故 안병하 경무관을 추모하며…

 

 

 

 

  이곳은 故 안병하 경무관의 묘역입니다. 안 경무관은 1980년 5 · 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 지역의 치안 책임자인 전남 경찰 국장이었는데요.

 

 


<故 안병하 경무관>

 

  당시 신군부로부터 "경찰만으로는 치안 유지가 어려우므로 군 병력 투입을 요청하라"는 강요와 협박을 받았지만, 군이 투입될 경우 시민들을 자극하여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이를 거부했고,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라는 명령에도 "상대는 우리가 보호해야 할 시민인데 경찰이 어떻게 총을 들 수 있느냐"며 경찰이 소지한 무기를 회수하기도 했습니다.

 

 


<故 안병하 경무관의 묘역 앞에서 묵념하는 이성한 경찰청장>

 

  결국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직위를 해제당한 그는 보안사로 끌려가 10여 일의 온갖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1988년 10월 10일 생을 마감했습니다.

 

  묘역 앞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봤습니다.

 

  "과연 나였다면…"

 

  신군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면 출세가 보장되고, 그러지 않으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닥칠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알았음에도 정의의 길을 선택한 故 안병하 경무관.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오직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 노력했던 그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살신성인 자세'

 

  故 최규식 경무관을 기억하며…

 

 

 

 

  1932년 9월 9일 강원도 춘천 출생인 故 최규식 경무관은 1961년 경찰에 투신했습니다.

 

  종로경찰서장으로 재직 중이던 그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 공비 김신조 등 31명이 청와대를 기습 공격하기 위해 파주지역에서 남하 중이란 첩보를 접수하고, 이를 막기 위해 현장에 배치됐습니다.

 

 


<청운실버센터 앞>

 

  무장공비 일행이 청와대 바로 옆(현재 청운실버센터 앞)에 이르렀을 때, 최규식 서장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검문을 했고, 이에 불응한 일당을 체포하라고 명령하자 뒤에 따라오던 일당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순직했습니다.

 

 


<종로구 청운 공원에 세워진 故 최규식 경무관 동상>

 

  최규식 서장은 가슴과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서도 "청와대를 사수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남겼는데요. 이러한 헌신과 희생으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로 진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안위는 잠시 잊고 국가와 국민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그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는데요.

 

  순직 당시 나이가 서른 중반이었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이 밖에도 2004년 7월 29일 폭력사건의 피의자를 검거하던 중 피의자가 휘두른 칼에 찔렸음에도 계속해서 검거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과다출혈로 순직한 서부경찰서 심재호 경위, 이재현 경장

 


 

 

 

  1982년 11월 5일 마포구 아현동 도시가스 정압장(배관압력을 조절 하는 곳)에서 가스가 누출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인부 3명을 구출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정압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구출 도중 가스에 질식해 숨진 마포경찰서 故 김유연 경사, 황재하 상경 등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경찰관이 그들의 사명을 다 하고 순직했습니다.

 


 

 

 

  이 아이도 어른이 되면 알겠죠?

 

  자신의 아버지가 너무나도 멋있고 자랑스럽다는 것을…

 

 

 

 

  그렇게 선배경찰관들의 묘역을 순례하고 고귀한 희생과 숭고한 정신을 떠올리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려왔습니다.

 


  알고 계시나요?

 

  뉴스에서 범인을 검거하다 순직한 경찰관의 소식과 음주운전 도주 차량을 쫓다 순직한 경찰관 등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1948년 10월 21일 경찰이 창설된 이래 지금까지 매년 전국의 20~25명의 경찰이 업무 중 순직했고, 1,000여 명이 공상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이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법과 질서를 잘 지키고 마음으로 이분들을 희생을 기리며 그 숭고한 뜻을 본받는 것인데요.

 

  그들을 직접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가까운 현충원을 찾을 수 없다면 인터넷으로 참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 사이버 참배>

 

<국립서울현충원>이나 <국립대전현충원>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면 사이버상에서 실제와 같은 참배를 체험하고 추모의 글을 남기며 애도를 표할 수 있고,

 

 

 

 

 

  사이버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순직경찰 추모관>이나 <참수리 사랑재단 추모관>에서 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순직경찰 추모관 사이버 참배 화면>

 

 


<순직경찰 추모관에 남겨진 추모의 글>

 

  또한 서울경찰청은 청사 1층 중앙홀에 '서울경찰 추모의 벽'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서울경찰청사 1층에 위치한 '서울경찰 추모의 벽'>

 

  가로 3m 10㎝×세로 1m 30㎝ 크기의 금도금 동판에 6 · 25 전쟁 중 전사하거나 공무수행 중 순직한 서울경찰 1,379명의 이름을 새겨놓은 '추모의 벽'을 설치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경찰관들의 이름을 벽에 새겼습니다.

 

 


<'영웅 찾아보기' 코너에 마련된 방명록 작성>

 

  방명록 작성과 영상헌화, 순직자 업적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웅찾아보기'도 마련되어 있으니 한 번쯤 방문하셔서 추모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법질서 수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순직경찰관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6월 한 달만큼은 우리 모두 호국정신과 애국심을 가슴 깊이 새기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다시는 순직과 같은 아픔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경찰관의 안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