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중심 · 현장 중심
안전한 서울, 질서있는 서울
자세히보기

서울경찰이야기/현장영웅 소개

호국보훈의 달, 6.25 전쟁 속 구국 경찰

서울경찰 2020. 6. 25. 13:34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주신 순국열사, 호국영령들의 희생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호국보훈의 달'

어느덧 6월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의 시간이 지난 2020년 6월 25일을 맞이하여,

이번 111호 뉴스레터에서는 6.25 전쟁 속 구국 경찰에 관해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의 포화 속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경찰관 약 5만여 명이 참전했습니다.

 

이 중 1/3에 해당하는 17,378명이 전사 혹은 부상을 당했는데요.

혹시 한국전쟁 최초 전사자가 북한군과 교전한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순직경찰관대장에 기록된 자료를 살펴보면, 정동진 등명해안 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강릉경찰서 전대욱 경사가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한 한국전쟁 최초의 전사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27세였던 전대욱 경사는 새벽 3시경

발동선 30척, 어뢰정 4척의 대규모 북한군 상륙부대를 발견하고 초동대응을 했으나,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초소에서 전사했습니다.

 

정동진에서는 북한군의 포격이 아닌 기습상륙작전으로 6.25전쟁이 시작되었는데요.

이는 새벽 4시로 알려진 6.25 전쟁 발발 시간보다 1시간 빠른 시간이었습니다.

 

 

전대욱 경사의 희생으로 북한군의 상륙을 알게 된 당시 강릉경찰서장은

곧바로 상황을 군에 전파했고,

군은 즉시 강동면 군선강에 방어선을 구축하도록 했습니다.

 

강릉시를 목표로 북상하던 북한군은 이곳을 돌파하려 했지만

남한군의 방어에 큰 피해를 입고 공격을 포기했는데요.

 

이러한 남한군의 방어는 38도선을 넘어 내려오는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키고

강릉지역 군력을 전멸하려던 북한군의 의도를 무력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전대욱 경사는 전쟁 직전이라는 상황과 군인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1993년 6월, 한국전쟁민간인희생기념사업회가 '6.25 남침사적탑'을 동명해안 부근에 건립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리에 건립되어 있는 이 6.25 남침사적탑에는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최초의 6.25 남침 현장]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

이 땅을 이데올로기의 미명 아래 피로 물들인

공산(共産)침략자들이 첫 발을 들여 놓은 곳.

 

.... (중략)

 

보라!

저 남침의 현장 이곳에 이 탑(塔)을 세움은

첫 민간인 희생자 심경섭(대한청년단), 전대욱(경찰관), 김진화 등

3년 1개월 6.25 동란에 희생된 민간인과 경찰관의 애국혼을 일깨우자 함이니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고이 잠드소서

 

 

이밖에도 조국을 지킨 경찰관 영웅들은,

 

 

1950년 6월 산청에서 유격대 10여 명으로 공비 322명을 사살하고 61명을 생포했던 일명 '지리산 귀신' 강삼수 경감

 

 

1950년 7월 곡성군 압록교 근방에서 북한군 연대가 야영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포위망을 형성해 집중 화력을 퍼부으면서 선제공격에 들어가 4시간 만에 사살 52명, 생포 3명, 트럭 등 물자 80여 점을 노획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아군의 방어 작전 준비에 크게 공헌한 주순철 경감

 

 

1950년 7월 영월읍 화력 발전소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48명의 결사대를 조직,
부대 이동 중 조우한 인민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여 적 73명을 사살하고 전사한 김해수 경감

 

 

1950년 11월 강원도 양구에서 주민 2천여 명을 대피시킨 후 적에 맞서다 전사한 조관묵 경감
(2019년 5월 국가보훈처 '이달의 전쟁 영웅' 선정)

 

 

1953년 9월 남부군 사령관 사살 등으로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대표적 경찰 영웅인 차일혁 경무관이 있습니다.

 

 

또한, 경찰의 활약은 20세기 미·중의 첫 무력 충돌인 장진호 전투에서도 이어졌는데요.

 

(장진호 전투란?
동부전선의 미 제10군단 예하 미 제1해병사단이 서부전선부대와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하던 중
중공군 제9병단 예하 7개 사단 규모가 포위망을 형성한 장진호 계곡을 벗어나기 위해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2주간에 걸쳐 전개한 전투)

 

 

당시 장진호 전투에 관해 다룬 책

마틴 러스의 '브레이크 아웃'에 따르면,

 

 

"그곳에는 훈련되어 군기가 있고 상당한 전투력을 가진 한국 전투경찰 부대가 있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생존 군인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 전투경찰 소대는 약 40여 명이었으며, 창원에서부터 미 해병대에 배속되어 북진을 했고,

중공군에 맞서 기관총 진지를 구축하고 온몸으로 적의 파상공세를 막아내 UN군의 후퇴를 도왔다고 합니다.

 

이렇듯, 조국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던 순국 경찰의 그 숭고함을 기리고자,

1979년 서울 현충원에 경찰충혼탑이 중건되었습니다.

 

 

 

 

탑신 중앙으로부터 양쪽으로 두 팔을 벌린 듯한 날개를 두어 민주경찰의 따뜻한 보호를 나타내고,

탑신 하단에는 경찰 활동의 상징인 신, 의, 용의 3인상을 세워 경찰의 충성과 봉사정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탑 좌측에는 애민상, 우측에는 호국상을 새겼으며

양쪽 날개 벽면에는 조국을 지키고 국민을 보호해 온 경찰의 훌륭한 업적을 조각으로 부각하였는데요.

 

탑 전면 하단에는 이은상 선생이 지은 헌시가 새겨져 있으며

탑신 중앙의 "경찰충혼탑" 글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휘호한 것이기도 합니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이 흐른 지금.

서울경찰은 현충원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가슴에 새기며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뜨거운 역사를 기억하고 그분들의 숭고한 호국보훈의 정신을 받들어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지켜나갈 경찰이 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는데요.

 

늘 시민과 함께하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서울경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