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경찰서 - 용산경찰서

2015. 4. 30. 08:50

 

 

  책상 위에 커다란 서울 지도를 올려놓고,

  두 눈을 꼭 감은 상태에서 서울에 중앙을 손가락으로 '콕' 찍으면

  아마도 그곳이 용산구일 확률이 높습니다. ^^

 

  한강의 중심이자 서울 한가운데 위치한 용산!

 

  우리 동네 경찰서!

  오늘은 용산 경찰서로 찾아갑니다.

 

  용산구 원효로에 있는 용산 경찰서는 1945년 국립경찰 창설과 함께 문을 열었습니다.

  현재 사용하는 건물은 1979년에 건축한 건물입니다.

 

 

 

 

  남산은 알겠는데 용산은 어디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서울에 40년 이상 살고 저도 용산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네요. ^^

 

 

  서울 인왕산의 남쪽 지맥이 남산을 거쳐 구불구불 능선을 이루고

  한강까지 뻗어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의 모양과 같다'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 용산입니다.

 

  현재는 도심 개발로 용산의 능선에는 집과 빌딩이 들어섰습니다.

  용(龍)이 멋있게 하늘로 승천하기에는 등에 지고 있는 건물이 너무 무거워 보이네요! ^^

 

 

서빙고 나루터 부근에서 본 노량진과 동작대교

 

  용산은 조선시대부터 교통과 물류의 요충지였습니다.

 

  지금의 반포대교 북단에 있었던 '서빙고 나루터'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나루터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서빙고 나루터를 통해 한양에 입성했답니다.

 

 

  서빙고(西氷庫).

 

  '서쪽에 있는 얼음 창고'라는 뜻의 서빙고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운영하는 가장 큰 얼음 창고였습니다.

  위치는 반포대교 북단 지금의 서빙고동 주민센터 자리입니다.

 

 

  용산 서빙고에는 한해 13만 정(丁) 이상의 얼음을 보관했다고 하는데요,

  한 정(丁)의 크기가 대략 두께 12cm 이상, 사방 둘레가 180cm이었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보는 크기의 얼음이 무려 13만 개 이상을 저장했다고 하니 대단하죠! ^^

 

  서빙고의 얼음은 궁중에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일반인에게도 나눠 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활인서(조선시대 의료기관)의 환자 치료나, 한여름 의금부의 죄수에게도 나눠주었다고 하네요. ^^

 

 

 

  배달하는 '집배원', 물건 파는 '판매원', 기타 치는 '김태원' 모두 모여 '이태원'

 

  앞서 말했듯이 물류와 교통의 요충지인 용산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는데요.

  이들에게 잠을 잘 숙박시설이 필요했겠죠?

 

  당시 용산에서 가장 유명한 숙박시설의 이름이 바로 '이태원(梨泰院)'이었습니다.

  '이태원'이 오늘날 호텔의 이름이란, 사실 여러분 아셨나요? ^^

 

 

  조선시대 이태원이 위치한 곳은 지금의 용산고등학교 자리였습니다.

  지금의 이태원 거리와는 조금 차이가 있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일본군 주둔을 위해

  이태원 주변 주민을 지금의 이태원역 근처로 강제 이주 시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태원 거리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태원 입구 관관경찰 안내센터

 

 

 

  "서울은 몰라도 이태원은 안다."

  서울을 방문했던 외국인이 사이에 회자됐던 말인데요.

  그럼 왜 이태원에는 외국 사람이 많은 걸까요?

 

  앞서 설명했듯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의 주둔지였고,

  광복 이후 미군의 주둔지가 되고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많은 외국인이 다니게 되면서

  지금의 상권이 형성됐습니다.

 

 

  현재 이태원은 연간 164만 명 하루 평균 4,500명 정도의 외국인이 찾는 명소가 됐으며,

  1997년 서울시에서 최초의 관광특구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서울에 있는데,

  바로 이태원 '세계 음식거리'입니다.

 

  지하철 이태원역에 내려 해밀톤 호텔 뒤편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데요.

  각자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용산에는 이태원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유일하게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용산미군기지'입니다.

 

  이곳에도 대한민국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시나요?

  정식 명칭은 '미8군 한국 경찰출장소'인데요.

  양현호 경위를 포함 3명의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곳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용산경찰서 보안과 소속으로,

  미군과 한국인 사이에 일어나는 다양한 형사사건의 초기대응과

  미군과 한국경찰간의 연락관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근무하는 경찰관의 특징은 모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과

  매일 한국에서 미국으로 출근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곳 미군부대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주문하고 카드를 내밀었더니,

  미국에서 00달러가 결제 됐습니다. 라는 문자가 오네요. ^^)

 

  한국 경찰출장소에서는 주말 저녁마다 미군 헌병과 함께 이태원 주변 순찰근무를 한답니다.

 

 

  얼마 전 장이태·박호선 경사는 미군의 요청으로

  미국 병사를 상대로 한국 마약 범죄에 관한 특별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미군도 서울에 주둔하면 대한민국 경찰의 보호를 받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미군을 보호하고 있는 대한민국 경찰이야말로 세계 최강이 아닌가 싶습니다. ^^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을 뽑으라면 많은 사람이 효창공원을 이야기합니다.

 

  용산경찰서 관내 있는 효창공원을 찾았습니다.

  때마침 내린 봄비가 한결 더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네요.

 

 

  현재 효창공원에는 광복을 위해 순국한 애국지사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194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이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이곳 효창공원에서 안장했고,

  자신도 1949년 6월 흉탄에 쓰러져 이곳에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이름이 '효창(孝昌)'공원이라는 것이 좀 이상하죠?

  애국(愛國)공원이면 더 이해가 쉬울 텐데 말이죠!

 

 

  '효창공원'의 옛 이름은 '효창원(孝昌園)'입니다.

  이름에서 알 듯 끝에 능(陵), 원(園), 묘(墓)가 들어가면

  왕족의 묘라는 것을 예전 국사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묘를 말하고, 원(園)은 왕이 되지 못한 세자나 세자빈의 묘를 말합니다.

 

  효창원은 '정조 이산'의 어린 아들 문효세자와 그의 생모 '의빈 성씨'의 묘소를 말합니다.

  유독 자식 복이 없었던 정조는 의빈 성씨의 몸에서 첫아들인 '문효세자'를 얻게 됩니다.

 

  존재만으로도 아비에게 기쁨인 '문효세자'는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 죽고 맙니다.

  그리고 같은 해 아들을 잃은 슬픔에 생모인 '의빈 성씨'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조는 이들의 묘지를 선대왕릉 부근으로 하지 않고

  당시 궁궐에서 멀지 않으면서 수십만 그루의 소나무가 장관을 이룬 이곳에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의 묘를 세우고 이름을 '효창원(孝昌園)'이라 했습니다.

 

  효창원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효창공원이 되면서

  기존 묘소는 서삼릉(경기도 고양시 원당)으로 옮김을 당했습니다.

  이후, 조국광복과 함께 독립 운동가들의 묘소를 이곳으로 옮겨와 지금의 공원이 조성됐다고 합니다.

 

 

  용산구 사진을 위성에서 보면 빽빽한 빌딩 숲 사이로 유일한 녹색지대가 효창공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서 말한 건물에 깔린 전설의 동물 용(龍)이 하늘로 승천한다면

  아마도 효창공원 언덕쯤에서 머리를 빼꼼히 내밀지 모른다는 소심한 예언(?)을 해 봅니다. ^^

 

  다음은 '성북 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11-2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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