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설엔 옛 한강변의 이 마을 언덕을 중심으로 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송파(松坡=소나무 언덕)라 칭했다고 합니다.
유래를 듣고 나니 송파(松坡)라는 이름이 괜스레 친근하게 느껴지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무 부동의 1위가 소나무이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소나무는 바람과 서리에 굴하지 않아 기개를 상징하기도 하는데요.
그 어원인 '솔'이 '수리'(=으뜸)에서 왔다는 설도 있으니
경찰의 상징인 참수리와도 연결되는 듯해 더욱 마음이 갑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열여덟 번째 이야기!
오늘은 송파구와 송파경찰서를 찾아갑니다.
송파경찰서는 1988년 송파구가 강동구에서 분구(分區)하고 도시 개발이 이루어짐에 따라
1990년 강남경찰서와 강동경찰서에서 송파구 지역 파출소를 인계받아 개서했습니다.
이후 1998년 수서경찰서가 신설되며 송파대로 기준 서쪽이 수서경찰서 관할이 되었다가
2006년 3월 1일의 관할 조정 이후 현재까지 송파구 전역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송파경찰서의 관할 구역은 송파구 전체로,
13개 법정동(잠실동, 신천동, 풍납동, 삼전동, 석촌동, 송파동, 방이동, 가락동, 오금동, 문정동, 장지동, 거여동, 마천동),
27개 행정동(잠실본동, 잠실2동, 잠실3동, 잠실4동, 잠실6동, 잠실7동, 풍납1동, 풍납2동, 삼전동, 석촌동, 송파1동, 송파2동, 방이1동, 방이2동, 오륜동, 가락본동, 가락1동, 가락2동, 오금동, 문정1동, 문정2동, 장지동, 거여1동, 거여2동, 마천1동, 마천2동, 위례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송파경찰서는 5개 지구대(방이, 잠실, 삼전, 가락, 문정)와 6개 파출소(마천, 거여, 풍납, 오금, 신천, 위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소는 아래 표를 참고해 주세요. ^^
구분 | 기관명 | 주소 |
경찰서 | 송파경찰서 | 서울특별시 송파구 중대로 221 |
지구대 | 방이지구대 | 서울특별시 송파구 양재대로71길 5-6 |
잠실지구대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101 | |
삼전지구대 | 서울특별시 송파구 백제고분로 238 | |
가락지구대 | 서울특별시 송파구 중대로 179 | |
문정지구대 | 서울특별시 송파구 충민로2길 18 | |
파출소 | 마천파출소 | 서울특별시 송파구 마천로41길 8 |
거여파출소 | 서울특별시 송파구 거마로10길 9 | |
풍납파출소 |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성로 42 [임시청사] | |
오금파출소 | 서울특별시 송파구 마천로8길 17 | |
신천파출소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길 12 | |
위례파출소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순환로 369 |
2002 월드컵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현재의 시선에서 보면,
1988 서울 올림픽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국제 대회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당시로써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했음을 세계에 알린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올림픽 개최로 인한 관광객 유입, 생산 · 고용 유발효과 등 유형의 이익을 넘어
우리나라의 국제 위상을 드높이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무형의 이익을 줬기 때문입니다.
1988 서울 올림픽은 9월 17일 개회식을 시작으로 10월 2일까지 16일간
IOC 회원국 중 총 160개국이 참가해 순위를 다퉜는데요.
앞선 1980 모스크바 올림픽(80개국 참가)과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140개국 참가)이
냉전과 이념 경쟁으로 개최지의 반대 진영이 참가 거부를 선언하며 파행 운영되었기에,
양 진영이 함께 참가한 서울 올림픽은 냉전 종식을 예고하는 신호탄과도 같았습니다.
실제로도 1989년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붕괴되고 그 이듬해 동 · 서독이 통일했으며,
1991년 소련이 붕괴되었으니, 서울 올림픽의 세계적 영향이 작지 않았답니다.
당연하게도 서울 올림픽은 서울에 있어서도 기념비적인 일이었습니다.
올림픽을 준비하며 또는 기념하며 신축한 건축물과 도로 등 도시 기반 시설도 적지 않아
올림픽 경기장은 물론이고, 올림픽대교, 올림픽공원, 올림픽대로, 올림픽선수기자촌 등
서울, 그중에서도 송파구에서는 관련된 명칭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요.
송파구 자체가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1980년대 초반부터 계획적으로 개발된 곳이기에
서울 올림픽과 관련된 흔적 역시 송파구에 몰려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백자를 모티브 삼아 디자인해 지금 보아도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는 주경기장과
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로, 주탑 최상단의 횃불 형상 조형물이 인상적인 올림픽대교는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상징하는 현대의 문화유산과도 같답니다.
우리 기억 속 송파구의 큰 변화는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사실 송파구는 1900년대 초중반 엄청난 지형적 변화를 겪은 곳입니다.
본래 잠실은 강 북쪽 육지에 붙은 돌출 지형으로,
남쪽으로 한강의 본류인 송파강이 흐르고, 북쪽은 건천인 신천강이 흐르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잠실은 강북의 육지도, 섬도 아닐뿐더러 물길은 신천강으로만 흐르는데요.
그 변화의 시작은 이전 기사들에 수차례 언급된 을축년 대홍수입니다.
을축년 대홍수는 1925년 7월부터 8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발생한 홍수로,
이 홍수의 영향으로 6,363호의 가옥이 유실되고 17,045호가 붕괴되었으며,
총 46,813호의 침수가 발생하는 등 전국적으로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게다가 당시의 홍수는 잠실을 끼고 곡류로 흐르던 한강의 직류화를 가속했고,
이후 한강의 본류는 남쪽의 송파강이 아닌 북쪽의 신천강으로 바뀌었습니다.
작은 하천이었던 신천강이 한강의 본류가 되며 한강의 섬으로 변화한 잠실,
이어서 잠실은 강남 및 한강유역 개발로 또 한번 지형 변동이 이루어졌는데,
1971년 송파강의 물길을 막는 공유수면매립 사업으로 한강 남쪽의 육지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잠실은 불과 50여 년 사이에 한강 북쪽 육지에서 섬으로,
또다시 섬에서 한강 남쪽 육지로, 마치 카멜레온과도 같이 모습을 바꿔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잠실을 보면 도저히 강이 흐르던 자리란 것을 믿기 힘들 정도인데요.
결국 잠실도는 사라지는 대신 잠실동으로 재편되어 송파구의 핵심지가 되었고,
송파강도 매립되었으되 석촌호수의 동호와 서호로 남아 시민 휴식처로 재탄생했습니다.
송파구에는 강동구의 선사유적지*처럼 을축년 대홍수로 드러난 역사 유적이 있습니다.
* 홍수로 강변이 심하게 휩쓸려 나가며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노출되며 유적지의 존재가 드러남
바로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백제 유물이 출토되며 알려진 풍납토성인데요.
풍납토성은 발견 초기부터 왕성인지 아니면 방어용 성곽인지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풍납토성이 백제의 시조 온조가 도읍한 하남위례성으로 인정받은 것은 최근입니다.
1997년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백제 유물이 대거 출토되었고,
곧이어 실시된 발굴조사에서 왕궁 터로 볼 수 있는 증거가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풍납토성의 발굴 과정은 어렵고 험난하기까지 한데,
최초 발견의 단초가 된 홍수로 인해 토성의 서쪽 벽면이 유실되어 버린 데다가
풍납1동과 풍납2동 거의 전체가 성곽 내에 있어 발굴 진행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앞으로 태어날 후손에게 한성백제*의 유물과 역사적 증거를 물려주기 위해선
그 과정이 지난해도 감내하고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엔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 백제가 웅진(공주) 천도 전 서울에 수도를 두었던 전성기 (B.C. 18 ~ A.D. 475, 493년간)
올림픽공원에는 한성백제의 또 다른 유적지이자 또 하나의 토성인 몽촌토성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한성백제의 도성이 북성(北城)과 남성(南城)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전하는데
몽촌토성이 그중 남성이자 전쟁 발발 시 사용된 방어성으로 추정되며,
화살촉 · 뼈 갑옷 등 무기류가 다수 발굴되어 그 주장을 강력히 뒷받침합니다.
몽촌토성은 풍납토성과 달리 공원화된 지역 내에 있어 발굴이 수월한데요.
이는 1988 서울 올림픽 개최를 준비로 송파구 일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유적지로 추정된 몽촌토성 지역을 개발하는 대신 공원으로 존치했던 덕분입니다.
몽촌토성 역시 풍납토성과 마찬가지로 현재도 발굴작업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더군다나 몽촌토성에서는 한성백제가 함락된 후 고구려가 사용한 흔적,
그리고 삼국통일을 이루어 낸 통일신라 시기의 유적도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발굴조사 결과 하나하나가 우리의 역사를 대변하는 것만 같습니다.
송파구는 주민등록 인구 60만 명이 넘는 유일한 자치구로, 그 치안을 책임지는
송파경찰서 역시 서울에서 유일하게 경찰관 정원이 1천 명이 넘는* 대형 경찰서입니다.
* 송파경찰서 1,030명, 영등포경찰서 979명, 강서경찰서 927명 순
형사과 실종수사팀 역시 정원이 9명으로, 다른 경찰서 대비 많은 편(서울 평균 6.5명)이지만,
편성된 인원이 무색할 정도로 막대한 업무량을 소화하는 부서로 손꼽힙니다.
관할지인 송파구 자체의 면적이 넓은 데다가 인근의 강남구, 강동구, 광진구는 물론이고
경기도 성남시, 하남시 등 다른 경찰서의 공조 수색 요청도 잦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강력사건과 어울리지 않는 실종수사팀이 형사과 소속인 점이 의아할 수도 있는데요.
실종자가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아 도주 등 돌발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고
긴박한 수색 사건엔 강력팀이 같이 움직이는 긴밀한 대응체계를 갖추기 위함입니다.
특히, 송파경찰서 실종수사팀은 2020년부터 매년 우수수사팀*으로 선정되어 왔는데요.
* 2020년 상·하반기 및 2021년, 2022년 서울경찰청 실종수사팀 중 실적 1위
그 이면에는 하루 평균 20건 이상 발생하는 실종 신고에 대비해
주간(08-18시)/야간(18-08시)/비번/일근(09-18시)의 고강도 교대근무도 마다치 않는
실종수사팀 모두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습니다.
최근에도 불법 성매매 업소에 붙잡혀있던 지적 장애인을 끈질긴 수사 끝에 구출하고,
실종 신고 2시간 만에 탄천 갈대숲에서 쓰러진 90대 치매 노인을 구조하는 등
실종수사팀의 활동 영역은 광범위하고, 그 활약상은 대단하답니다.
실종수사팀 수사관들은 실종자 가족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신고를 접수하면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다고 합니다.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실종수사팀 수사관들을 응원하며,
모든 실종자가 안전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랜드마크는 흔히 '어떤 지역을 대표하는 특별한 지형지물이나 시설물'로 정의되는데요.
기원전 한성백제부터 현대의 올림픽까지 역사의 무대에서 빠지지 않은 송파구는
서울의 '역사적' 랜드마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이 역사적 랜드마크, 송파구에 대해 풀어낼 이야기는 아직도 무궁무진하지만,
이 짧은 글에 그 모두를 담는 것은 과욕임에 분명합니다.
송파구의 남겨진 이야기는 또 다른 필자를 위한 숙제로 남기며,
어두운 밤 뚜렷하게 형상을 드러내는 서울의 랜드마크들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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