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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이야기/서울경찰 치안소식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성동경찰서 편

서울경찰 2022. 10. 4. 15:56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는 이렇다 할 생산 기능이 없던 사대문 안의 소비자에게

신선한 채소와 과일 등을 재배해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 사대문 주변 10리 이내, 다만 중랑천, 홍제천, 한강 등 자연 경계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임

 

 

 

 

한양도성 성곽의 동쪽에 있어 성동(城東)이라 명명된 자치구,

성동구 역시 성저십리에 포함되어 무와 배추를 주로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유구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성동구의 모습과 남겨진 옛 흔적을 살피고자 합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열다섯 번째 이야기!

오늘은 성동구와 성동경찰서를 찾아갑니다.

 

 

 

 

 

성동경찰서는 1945. 10. 21. 국립경찰의 창설과 동시에 개서,

현재의 성동구, 광진구,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에 중구의 일부까지 관할하던,

서울 남동부 경찰서들의 모체 경찰서였습니다.

 

그로 인해 1966. 11. 25. 중구와 성동구 외의 지역을 담당할 동부경찰서(現광진경찰서)가

분서(分署)할 때까지 한강을 넘나들며 광활한 지역의 치안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현재 성동경찰서의 관할 구역은 성동구 전체로,

17개 법정동(상왕십리동, 하왕십리동, 홍익동, 도선동, 마장동, 사근동, 행당동, 응봉동, 금호동1가, 금호동2가, 금호동3가, 금호동4가, 옥수동, 성수동1가, 성수동2가, 송정동, 용답동),

17개 행정동(왕십리도선동, 왕십리제2동, 마장동, 사근동, 행당제1동, 행당제2동, 응봉동, 금호1가동, 금호2·3가동, 금호4가동, 옥수동, 성수1가제1동, 성수1가제2동, 성수2가제1동, 성수2가제3동, 송정동, 용답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동경찰서는 3개 지구대(한양, 성수, 서울숲)와 6개 파출소(행당, 옥수, 왕십리, 용답, 금호, 응봉)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소는 아래 표를 참고해 주세요. ^^

 

 

구분 기관명 주소
경찰서 성동경찰서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광장로 9
지구대 한양지구대 서울특별시 성동구 사근동길 5
성수지구대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나루로2길 35
서울숲지구대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덕정길 77-2
파출소 행당파출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로 89
옥수파출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독서당로 211
왕십리파출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로 205
용답파출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중앙길 49
금호파출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로11길 2-1
응봉파출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독서당로 373

 

 

 

 

 

무학대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명에 따라 새 도읍지를 찾던 중

왕십리 인근에 이르러 명당이라 보고 이곳으로 정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때 어떤 노인이 "무학같이 엉뚱한 길로 가려니 미련하다"라며 소를 끌고 가니

무학대사가 연유를 묻자 "10리를 더 가라"라는 말을 듣고 그 가르침에 따랐다.

 

왕십리(往十里)와 관련된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 설화 덕분인지 무학초등학교, 무학중학교, 무학여자고등학교, 무학봉 등

인근에서 무학대사의 호에서 비롯된 명칭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명 설화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의 경복궁 인근은 조선 건국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1068년 고려 문종 시대에 남경 별궁*이 창건되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 중경 개성부, 서경 평양부와 함께 고려의 삼경(三京) 중 하나였던 남경 한양부의 궁궐

 

조선왕조실록에서조차 왕십리(往十里), 왕심리(往心里), 왕십리(王十里) 등

표기가 통일되지 않은 것을 보면 후대에 짜 맞춰진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대한민국 보물 제1738호 살곶이 다리(=전곶교, 箭串橋)

 

 

조선 전기 최대의 교량인 살곶이 다리 역시 관련된 설화가 여럿 있습니다.

 

살곶이 다리는 세종 2년(1420)에 건설을 시작해 성종 14년(1483) 완공된 다리로,

1900년대 초반까지 주요 교량으로 쓰여오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일부 유실되었고,

* 1925년 4차례에 걸쳐 일어난 홍수, 한강의 본류가 바뀌는 등 서울에 큰 영향을 끼친 홍수

 

1972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거친 복원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데요.

살곶이(=전곶, 箭串)은 '화살이 꽂힌'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설에는 왕자의 난으로 왕위를 차지한 태종이 함흥에 은둔한 태조를 간곡히 청하여

다시 한양으로 모시는데, 태조가 중랑천 인근에서 맞이하는 태종에게 활을 쏘았고,

그 화살이 빗나가 꽂힌 자리가 지금의 살곶이 다리 인근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도 정사(正史)에는 기록이 없으니 후대에 지어진 것이라 봐야 옳겠습니다.

 

다만, 살곶이 다리에 대해 전해지는 여러 설화와는 별개로 다리 너머 성수동 일대는

조선시대에 사냥터이자 군대 사열 장소(열무장, 閱武場)로 쓰였다 하니,

살곶이라는 명칭이 붙은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답니다.

 

 

 

 

 

앞에서 설명한 살곶이 다리 너머에 한강과 중랑천을 끼고 서울숲이 있습니다.

 

서울숲이 위치한 성수동의 또 다른 이름은 뚝섬으로, 독기(=둑기, 纛旗)에 제사를 올리는

독신사(=둑신사, 纛神祠)*에서 유래한 지명입니다. (둑신사가 있는 섬 모양 지형의 땅)

* 대장군 깃발이자 군권을 상징하는 독기에 제를 올리던 사당. 을축년 대홍수로 유실

 

뚝섬은 조선시대엔 사냥터이자 열무장(閱武場)이자 관마(官馬)의 목마장으로 사용되었고,

그중 서울숲 부지의 경우 광복 이후에도 경마장과 골프장으로 활용되었는데요.

 

현재도 서울경찰기마대가 성수동에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

뚝섬은 말과 인연이 끊이지 않는 장소인 듯합니다.

 

뚝섬에 조선 시대와 같은 울창한 숲이 들어선 것은 2005년입니다.

 

2002년 서울시는 뚝섬골프장 부지에 대규모의 공원 조성을 결정했고,

기업과 시민의 캠페인과 모금, 봉사활동이 더해져 2005년 숲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현재의 서울숲은 총 432,394㎡의 드넓은 부지를 자랑하는데요.

연 750만여 명의 시민이 이용하는 우리 모두의 쉼터가 되었습니다. (2021.1.1. 기준)

 

 

청계천 박물관과 청계천년만년(판잣집 테마존)

 

 

서울숲과 유사하게 과거의 환경을 복원한 공간으로 청계천도 꼽을 수 있습니다.

 

청계천은 조선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준설공사와 직선화를 해 온 개천으로,

도성에서 발생하는 하수가 빠져나가는 길 역할을 해 도시 기능 유지에 도움을 줬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 주택 부족으로 청계천변을 무허가 판자촌이 점령해버리고

청계천의 수질과 위생 상황은 나날이 악화되어 결국 복개공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58년 시작된 복개공사는 1977년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고

청계천은 청계로와 그 상부의 청계고가도로로 변모해 도심 교통 체증을 완화해줬습니다.

 

하지만, 고속성장시대에 만들어진 청계고가도로는 급격한 노후화가 진행되었는데,

1990년대 후반에 이르자 전면 재보수냐 철거냐 갈림길에 서게 되었고,

결국, 서울시는 2002년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복원된 5.84Km의 청계천은 언뜻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 것 같지만,

하수가 흐르던 건천에서 맑은 물이 흐르는 도심 개천으로 재생된 것이랍니다.

 

 

 

 

 

마장동(馬場洞) 역시 뚝섬과 마찬가지로 말을 키우던 목마장이 있던 동네입니다.

 

세월이 흐르며 마장동에서 말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축산물시장이 자리 잡았는데,

마장축산물시장은 보기 드물게 육류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시장입니다.

 

마장축산물시장은 1961년 건립된 제1시립도축장이 그 형성 기원으로,

우시장과 도축장을 중심으로 24시간 내내 육류를 가공해 공급했습니다.

 

그런데 1988년 도축장이 없어지며 정육과 도 · 소매 기능만 남게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마장축산물시장은 수도권 육류 유통량의 60%를 담당한다고 합니다.

 

시장 내에는 구입한 고기를 차림비를 내고 먹을 수 있는 정육식당도 여럿 있어.

일반 정육점에서 보기 힘든 특수부위나 신선한 육류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일설에는 왕십리 곱창거리의 발달에도 마장축산물시장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하는데,

내장이 다른 부위보다 쉽게 상하기도 하니 일리 있는 주장이라 생각됩니다.

 

 

 

 

2022년 현재. 성수동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동구 최고의 핫플레이스입니다.

 

골목골목마다 음식점, 카페, 공방 등 개성 있는 소규모 점포가 입점해 시선을 끌고

때로는 대형 브랜드가 팝업 스토어를 열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성수동 거리를 거닐면 다른 번화가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이는 공장, 창고 등 기존의 건물을 허물지 않고 리모델링 한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본래 성수동은 1960년대부터 제조업체와 공장이 모여들며 형성된 공업단지였는데,

1980년대 경공업의 쇠락과 함께 성수동도 활기를 잃고 쇠락했습니다.

 

그리고 성수동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즈음으로,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공방과 작업실이 생기기 시작하며 서서히 활력을 되찾았는데요.

 

성수동에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단순히 낡은 분위기가 이색적이고 독특해서만이 아니라,

수제화 업체, 출판 · 인쇄업체 등 제조업체가 여전히 그 기능을 유지하는 가운데

허름한 건물을 세련된 방법으로 재해석해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동구는 강변북로, 동부간선도로, 내부순환로와 모두 접한 편리한 교통망을 갖추었는데

왕십리역은 거기에 더해 지하철 2호선, 5호선, 경의중앙선, 수인분당선의 4환승역입니다.

 

그리고 그 왕십리역 3번 출구와 4번 출구 사이에 성동경찰서가 자리 잡고 있기에

'방문하기 편리한' 성동경찰서 민원실은 항상 바쁜 편입니다.

 

경찰서를 방문할 일이 얼마나 있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운전면허 관련 업무, 과태료 · 범칙금 등 단속 관련 문의와 같은 교통 관련 민원과

민원 접수, 사실확인원 발급과 같은 일반 민원도 있어서 의외로 갈 일이 많답니다.

 

성동경찰서 종합민원실에서는 교통 민원 담당 8명, 일반 민원 담당 3명의 직원이

쏟아지는 문의 전화와 줄 잇는 민원인 방문 속에서도 친절히 응대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통 민원의 경우 잦은 법률 개정으로 업무 담당자의 부담이 크다고 하는데요.

억울한 민원인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근무하는 성동경찰서 민원실을 응원합니다.

 

 

 

 

응봉산(鷹峰山)은 조선시대 임금이 매 사냥을 즐겼던 뚝섬(성수동) 근처이기에

'작은매봉'이라고도 불리는 81m의 높지 않은 산입니다.

 

게다가 중턱까지 주택가가 이어져 있어, 등산이 아니라 흔한 언덕 같기도 한데요.

응봉산에서 보는 절경은 오르기 위한 노력에 비해 과분한, 하나의 선물과도 같습니다.

 

한강과 중랑천이 서울숲을 사이에 두고 합류하며 그리는 자연의 풍경을 배경 삼아

마천루와 도로, 교량이 선보이는 인공의 빛이 더해져 야경이 특히 아름답지요.

 

오늘 소개해 드린 성동구와 성동경찰서의 모습은 어떤가요?

 

저에게는 마치 응봉산의 풍광같이 과거에 현재가 잘 어울리게 채색된 것만 같답니다.

오늘 이야기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응봉산의 경관과 함께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