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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강동경찰서 편

서울경찰 2022. 4. 20. 08:24

'이 지역'은 서울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증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지역'을 포함한 한강 유역에서 초기 백제 문화가 발원했습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모하는 '이 지역'.

바로 강동구입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세 번째 이야기!

오늘은 강동구와 강동경찰서를 찾아갑니다.

 

 

 

 

 

 

강동경찰서는 1978년 10월 5일 서울 강남구(현재의 강동구) 성내동 110번지에서 임시청사로 개서했습니다.

 

이는 1976년 개서한 강남경찰서의 업무량이 과다하여* 2년만에 경찰서를 신설한 것이며,

임시청사에 신설된 강동경찰서는 이듬해 10월 9일 강동구 성내동 540-1번지(현재의 강동구청 제2청사)의 신청사로 이전했습니다.

* 서울 전체 면적의 1/5에 이르는 현재의 강남, 송파, 서초, 강동구 치안을 담당

 

강동경찰서의 관할 구역은 강동구 전체로,

9개 법정동(암사동, 고덕동, 강일동, 천호동, 명일동, 상일동, 길동, 성내동, 둔촌동),

19개 행정동(암사1동, 암사2동, 암사3동, 고덕1동, 고덕2동, 강일동, 천호1동, 천호2동, 천호3동, 명일1동, 명일2동, 상일1동, 상일2동, 길동, 성내1동, 성내2동, 성내3동, 둔촌1동, 둔촌2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동경찰서는 4개의 지구대(천호, 성내, 암사, 길동)와 5개 파출소(강일, 고덕, 명일, 둔촌, 상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소는 아래 표를 참고해 주세요. ^^

 

 

구분 기관명 주소
경찰서 강동경찰서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내로 57
지구대 천호지구대 서울특별시 강동구 구천면로 141
성내지구대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내로 57
암사지구대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로 137
길동지구대 서울특별시 강동구 양재대로96길 35
파출소 강일파출소 서울특별시 강동구 아리수로91길 20
고덕파출소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로61길 61
명일파출소 서울특별시 강동구 동남로 895
둔촌파출소 서울특별시 강동구 진황도로 239
상일파출소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로80길 7

 

 

 

 

현재 강동구의 모태는 조선시대 행정구역이었던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구천면(龜川面, 1907년 九川面으로 변경)*입니다.

* 구천면(龜川面) : 조선 성종 당시 명신 구천 어효담의 호를 따서 붙여진 지명

 

광복 이후 빠른 산업화와 도시화의 전개에 힘입은 도심권의 팽창으로

1963년 경기도 광주군에서 서울시 성동구로 편입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성동구는 점점 더 넓어져갔는데요.

 

1973년에는 현재의 성동구, 광진구,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에 중구와 용산구의 일부까지 포함한 광활한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관할 문제에 서울로 인구 유입까지 지속되며

1975년 한강을 경계로 성동구와 강남구가 분구(分區)되었고,

곧이어 1979년 탄천을 경계로 강남구와 강동구가 나뉘었습니다.

 

강동구 행정구역이 현재와 같아진 건 1988년 송파구가 강동구에서 분구된 이후입니다.

 

송파구와 강동구는 풍납동과 오륜동을 경계로 하는데,

그로 인해 분구 전 강동구 중심부인 성내동에 위치시켰던 행정기능이

분구 이후에는 송파구와의 경계 부근까지 쏠리게 되었습니다.

 

 

구천면로(광진교 북단→남단)

 

 

강동구의 과거 흔적은 도로 '구천면로'에도 뚜렷하게 남아있습니다.

 

구천면로는 광진교 북단으로부터 천호동, 명일동, 상일동을 가로지르는 연장 6.6Km의 왕복 2차로 도로인데요.

 

비록 현재는 일반도로로 격하되었지만,

조선시대에는 광나루를 이용해 서울과 충청도, 경상도를 이어주는 주요 간선도로였습니다.

 

 

 

 

천호사거리

 

 

서울 전체의 역사에 빗대어 보면 서울 편입이 늦은 편이기도 한,

비교적 신생 자치구에 속하는 강동구.

 

하지만 강동구는 부산 동삼동, 양양 오산리, 연천 전곡리 등과 함께

우리나라 신석기문화의 중심지로 꼽힐 정도로 역사 깊은 주거지입니다.

 

 

암사동 유적지

 

 

특히 암사동 유적지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집단 거주지 중 최대 규모로,

기원전 5천 년에서 4천 년 경에 형성되기 시작한 빗살무늬토기문화 초기단계의 마을 유적입니다.

 

유적지가 알려지고 발굴되는 데에는 우연이 겹쳤는데요.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강변이 심하게 휩쓸려 나가며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노출되어 유적지가 일부 드러났고,

1968년 장충고등학교 야구부 훈련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거지가 드러나며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암사동 일대는 유적지의 발굴 과정에서도 나타났다시피

주기적으로 한강이 범람하며 침식 · 퇴적작용이 활발했는데요.

 

한강이라는 풍부한 수원을 근처에 둔 비옥한 토지는

암사동 인근의 신석기 문화 발달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강동구는 이처럼 거주에 유리한 환경적 요인을 고루 갖춰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동네로 알려졌는데요.

 

강동구의 최대 번화가인 천호(千戶)동을 봐도,

그 명칭부터 수천 호가 넘는 집이 들어설 것이라는 데서 왔다는 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강동구는 타 자치구에 비해 상업지역이 적고 주거지역이 넓은 편*인데,

예나 지금이나 주거에 적합한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전체 대지 대비 상업용도 지목 비율 : 강동구 2.77%, 서울특별시 전체 평균 4.23%

 

 

 

 

강동구는 지역 주민 중에도 '토박이'를 자처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강동구와 함께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다소 연로하셔서 지역 터줏대감이 되신 분들.

 

그분들의 어린 시절에 강동구는 강가에 백사장도 있어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동네로,

유년기의 추억이 깃든 유원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올림픽대로 위 어르신들을 구조하라!

 

 

그 때문인지 어르신들이 한강으로 가는 길로 착각해

올림픽대로로 진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을 목격하면 지역 주민분들께서 바로 경찰에 신고해주시는데요.

 

어르신 구조는 강동경찰서 교통경찰관에게 있어서도 중요도가 높은 업무로,

올림픽대로와 주요 진 · 출입로 역시 주요 순찰 지점이라고 합니다.

 

 

가을단풍길(고덕로)

 

 

오늘은 역사와 함께하는 강동구, 그리고 강동경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 옛날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암사 선사유적지에서도,

먼 후손인 우리가 일상을 영위하는 어느 길 한가운데에서도,

역사는 만들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역사학자 칼 베커(1873~1945)는 말했습니다.

"역사는 항상 새롭게 다시 쓰이며, 따라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

 

우리가 지닌 책무는 후대를 위해 과거의 흔적을 잘 보존하고

오늘의 역사를 잘 가꾸어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업무 협조 : 강동구청 문화예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