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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구로경찰서 편

서울경찰 2022. 4. 11. 07:57

고척스카이돔, 프로야구, 신도림역, 디지털단지, G밸리, 그리고 '우리 회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구로구 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꼽힌 단어들로,

구로구를 일터이자 여가를 즐기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는 분들이 대다수였는데요.

 

특히 IT ·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분들께는 더욱 친근한 지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 구로경찰서 전경

 

 

서울 시내 경찰서와 그 경찰서가 지키고 있는 동네의 모습을 소개하는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오늘은 그 두 번째 이야기.

구로구와 구로경찰서입니다.

 

 

 

 

 

구로경찰서는 1980년대 초 한국수출산업공단을 중심으로 구로구가 신설되고 이 지역의 치안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영등포경찰서에서 2개 파출소, 남부(현재의 금천경찰서) · 강서경찰서에서 각 5개 파출소를 인수받아 1980년 11월 3일 개서했습니다.

 

개서 당시에는 현재의 제일제당 건물(경인로 518)을 임대하여 임시청사로 사용하다

1982년 9월 6일 현재의 위치(가마산로 235)에 청사를 신축 · 이전했습니다.

 

관할 면적과 인구는 20.12 제곱킬로미터에 39만여 명으로, 각 서울시의 3.3%와 4.1%입니다.

 

관할 구역은 구로구 전체로,

10개 법정동(신도림동, 구로동, 가리봉동, 고척동, 개봉동, 오류동, 천왕동, 항동, 궁동, 온수동),

16개 행정동(신도림동, 구로1동, 구로2동, 구로3동, 구로4동, 구로5동, 가리봉동, 고척1동, 고척2동, 개봉1동, 개봉2동, 개봉3동, 오류1동, 오류2동, 수궁동, 항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구로경찰서는 5개의 지구대(신구로, 오류, 구일, 고척, 개봉)와 3개 파출소(천왕, 구로3, 가리봉)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소는 아래 표를 참고해 주세요. ^^

 

 

구분 기관명 주소
경찰서 구로경찰서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마산로 235
지구대 신구로지구대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26
오류지구대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로1길 34
구일지구대 서울특별시 구로구 도림로 63
고척지구대 서울특별시 구로구 중앙로15길 30
개봉지구대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로18길 5
파출소 천왕파출소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리로 1102-8
구로3파출소 서울특별시 구로구 디지털로31길 86
가리봉파출소 서울특별시 구로구 남부순환로 1275

 

 

 

 

상대적으로 분구(分區)가 늦었던(1980년) 구로구의 지명은 구청 소재지인 구로(九老)동에서 왔는데,

그 유래에 대해서는 구로동에서 장수한 9명의 현명한 노인(九老)에서 왔다는 설과

현재의 구로5동에 존재했던 옛 마을 '구루지 마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래와 별개로 근현대사에서 구로구에 관한 변하지 않는 사실은

구로구가 인천과 서울을 잇는 관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경인로 고척교 앞

 

 

조선은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으며 부산항을 개항한 이래

1879년엔 원산항을 그리고 1883년엔 인천항을 차례로 열었습니다.

 

세 항구 중 인천항(제물포)은 서울(한양)에서 가장 가깝기에 그 중요도가 더 컸는데요.

 

각국의 외교관들도 제물포에 앞다투어 영사관을 만들었고,

제물포는 곧 새로운 서양문물의 주된 유입지가 되었습니다.

 

사람과 물자가 움직이려면 길이 필요한 법!

제물포와 한양을 이어주던 경인가도(현재의 경인로)가 주요 간선로로 활용되었습니다.

 

물론 현재의 경인로와 당시의 경인가도는 완벽히 일치하는 도로는 아니지만,

선형이 나빠 개량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당시의 도로를 온전히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로구는 그 붐비던 경인가도에서도 제물포와 한양의 중간 지점에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거쳐 가고 때로는 머물다 가는 곳이었습니다.

 

 

주막거리 객사 표지석 (서울시 구로구 경인로 90)

 

 

주막거리 객사

서울과 제물포의 중간 지점으로

청일전쟁 이전에는 청국사신이나 고위관리가 쉬어가던 객사였으며,

이 근처에 주막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던 자리임

 

그 흔적은 중앙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오류동 '주막거리 객사'와 '오류장'에서도,

고척동 '장터골'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당시 제물포와 한양 사이는 약 100리 거리로 빠른 걸음으로는 하루에 이동할 수 있어 중간 지점인 주막거리(오류동)를 현대의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에 따라 현재의 동부제강입구 교차로와 광덕사거리 사이에서는 주막업, 숙박업 등이 성업했다고 합니다.

 

 

 

오류역 문화공원에서 본 철길

 

 

이처럼 일찌감치부터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 온 구로구.

도로교통은 물론, 철도교통 역시 이른 시기부터 발달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오류동역은 1899년 9월 18일 국내 최초의 철도 노선인 경인선*의 완공과 함께 개업한 120년 이상 영업해 온 철도역이기에 철도 역사에서 의미가 깊답니다.

* 제물포역(현재의 인천역) - 유현역(현재의 동인천역) - 우각동역(폐역) - 부평역 – 소사역(현재의 부천역) - 오류동역 - 영등포역 - 노량진역

 

철도교통이 일반화된 지금에 와서는 수많은 철도역 중 하나일 뿐이지만,

오류선(오류동~광명시 옥길동, 화물 전용선)의 시점이 되는 등 일반 철도역보다는 큰 부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로역으로 진입하는 전철

 

 

현재는 구로역과 신도림역이 철도교통 상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로역은 경인선과 경부선이 분기되는 역인 데다가 완행, 급행, 특급전철의 정차가 이루어지기에 승강장도 9번까지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규모가 큰 전철역*입니다.

* 서울역이나 용산역 등이 더 커 보이나 해당 역들은 열차 승강장이 더해진 것

 

그리고 구로역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한 정거장만 가면 신도림역이 있는데요.

 

신도림역은 독자분들도 익히 알고 경험(!)하셨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붐비는 전철역입니다.

 

2019년 기준 신도림역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환승객 26만여 명에 승하차객 12만여 명을 합한 38만여 명!

승하차객으로는 강남역(20만여 명)에 밀리지만, 강남역은 환승객을 포함해도 28만여 명에 그쳐 신도림역이 훨씬 붐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도권 전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형 역사인 신도림역과 구로역은

불과 700여 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습니다.

 

이는 신도림역이 경인선 개통 이후 2호선 환승을 위해 추가로 만들어진 전철역이기 때문인데요.

 

본래 수도권 전철 2호선 계획 초기에는 구로역에서 경인선과 환승하는 안이 들어간 적도 있다 하니,

지금의 신도림역이 지닌 위상에 비춰보면 구로역이 2호선 환승역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구디', '가디'라고 들어보셨나요?

 

각각 '구로 디지털단지'와 '가산 디지털단지'의 줄임말인데요.

서울시 구로구와 금천구에 조성된 '서울디지털산업단지' 1단지(구로), 2 · 3단지(가산)를 칭합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왜 두 개 자치구에 걸쳐 조성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67년 우리나라는 수출입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2백만 제곱미터의 부지(여의도 넓이의 2/3)에 국내 최초의 공업단지인 구로공단을 조성했고,

이후 구로공단은 봉제 · 섬유 · 전기 등 경공업을 중심으로 수출 산업을 주도했는데요.

 

1970년대 인구 과밀화 및 공업지구 확장 등 문제가 맞물리며 1980년대 경기도 안산시에 반월공단이 조성되며 상당수 기업이 이주했고,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중화학공업으로 재편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디지털1단지 사거리

 

 

구로공단이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한 건 IT산업의 발달과 궤를 같이합니다.

 

1990년대 후반 닷컴열풍을 타고 테헤란로 등지에 몰려있던 벤처기업들이

사무실 임대료 상승 등으로 인해 구로로 이전하기 시작했고,

 

첨단산업의 입주가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단지의 성격이 변하자,

2000년 지금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을 개정했습니다.

 

현재에 와서는 수많은 벤처기업이 입주해 있는 업무지구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했는데요.

 

남부순환로를 경계로 구로구에서 금천구가 분구한 것이 1995년 3월 1일의 일이니,

'구디'와 '가디'를 떼어놓고 이야기하긴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구로구와 금천구, 구로경찰서와 금천경찰서의 분구와 개서에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금천구(1995년 분구)는 구로구(1980년 분구)에서 분구한 자치구이지만,

금천경찰서(옛 남부경찰서, 1972년 개서)는 오히려 구로경찰서(1980년 개서)에 5개 파출소를 이양했다는 점입니다.

 

 

 

구로구는 서울에서 외국인 거주 비율이 비교적 높은 자치구에 속합니다.

2021년 12월 기준 2.4만여 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서울 전체 거주 외국인의 10.8%에 해당합니다.

 

국적도 다양해 중국, 베트남, 일본, 타이완, 미국, 필리핀 등 익숙한 국가부터

벨리즈, 지부티, 말리, 키프로스 등 약간은 생소한 국가에서도 오신 거주민도 계십니다.

 

종종 언어의 장벽 때문에

또는 문화적 상대성으로 인해 주민 사이에 오해가 발생할 때도 있는데요!

 

 

 

 

구로경찰서에서도 이런 부분을 잘 인식하여

올해로 14년 차를 맞이하는 외국인 자율방범대와 협업을 지속하고,

외사안전구역에 대한 특별 순찰을 시행하고 범죄 피해 예방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경찰서 내 모든 부서가 합심해 다양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자율방범대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지역 안전에 관심을 가지는 주민도 늘어나

현재 가리봉 외국인 자율방범대와 구로4동 한중 다문화 자율방범대에서는

80명 이상의 대원들이 범죄예방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 2회 이상 저녁 범죄취약지 곳곳을 순찰하고 범죄예방 캠페인을 도맡아 하는 등

적극적인 방범 활동으로 '베스트 자율방범대'에도 수차례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구로경찰서와 외국인 자율방범대는 깊은 사명감을 가지고

'더욱 안전한 구로'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구로 테크노마트와 디큐브시티, 신도림역

 

 

오늘 소개해드린 구로경찰서와 구로구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유서 깊은 서울에 특별하지 않은 장소는 없겠지요.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내가 사는 동네, 내가 지나쳐온 길 어디에서나 특별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다음 편에도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

독자 여러분 건강 유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