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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이야기/현장영웅 소개

우리 동네 경찰서 - 마포경찰서

서울경찰 2015. 7. 24. 09:40

 

  에이핑크, 소녀시대, 투애니원, AOA

  멋진 춤과 가창력으로

  삼촌 팬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걸 그룹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투애니원 씨엘의 허스키 보이스를 좋아합니다. ^^

 

 

  그런데 여러분

  '은방울 자매'라고 들어보셨나요?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4년도에 결성한 걸그룹 '은방울 자매'는

  '마포종점'이라는 노래로 유명한대요.

 

  당시에 마포에 살던 작곡가 정두수 씨가

  마포와 세종로를 오가던 전차(1907-1968)가 사라진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만든 노래입니다.

 

 

 

  예전 걸그룹의 노랫말은 시 같습니다. ^^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엔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또한, 마포전차종점은 독립운동 유적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의 독립선언식을 마친 1천여 명의 시민이

  해 질 무렵부터 일제의 감시와 견제를 피해 마포종점 부근에 모여 밤늦은 시간까지

  대한민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만세를 부른 곳입니다.

 

 

  오늘 방문한 경찰서는 '마포 경찰서'입니다.

 

  마포 경찰서는 1945년 경찰 창설과 함께 개서했습니다.

  마포구는 서울의 중서부 한강 하류 연안에 있는 구(區)로서

  북쪽으로는 경기도 고양시와 서대문구에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용산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서쪽은 한강을 끼고 있습니다.

 

  마포구는 25개 자치구 중 한강과 가장 많이 접해 있습니다.

  예로부터 포구문화가 발달하여 역사적으로 서울의 관문역할을 했는데요.

 

 

  현재는 발달한 교통을 기반으로 서울 도심의 업무중심지구로 발전하고 있으며

  아울러 홍대 앞과 신촌 등은 대학문화를 기반으로 '젊음의 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쓰레기 매립지였던 상암동은 2002 월드컵을 거치면서

  IT · 미디어 기업이 집중된 첨단 정보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마포팔경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관동팔경(강원도), 단양팔경(충북 단양)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한강을 끼고 도는 마포 주변의 모습을 옛 선인들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경 비 갠 날 저녁 용산강에 뜬 달 「용호제월(龍虎霽月)」

  2경 삼개나루로 돌아오는 수많은 돛단배 「마포귀범(麻浦歸帆)」

  3경 방학교 부근의 샛강에서 밤낚시 하는 등불 「방학어화(放鶴漁火)」

  4경 밤섬 주변에 쌓인 깨끗한 백사장 「율도명사(栗島明沙)」

  5경 농바위 부근의 인가에서 저녁 짓는 연기 「농암모연(籠岩暮煙)」

  6경 와우산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목동들의 피리 소리 「우산목적(牛山牧笛)」

  7경 양화나루 하늘에 붉게 물든 석양과 노을 「양진낙조(楊津落照)」

  8경 관악산에 맑게 갠 날 어른거리며 오르는 아지랑이 「관악청람(冠岳晴嵐)」

 

 

  마포구 '망원동'의 동명은 이 '망원정'에서 유래합니다.

  망원정은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이 1424년에 지은 별장입니다.

  별장이 지어진 다음 해인 1425년은 올해처럼 극심한 가뭄이 들었답니다.

  세종대왕은 친히 농가 형편을 살피려 효령대군이 기거하던 마포로 거동해 망원정에 올랐는데,

  마침 한줄기 비가 시원하게 내렸답니다.

 

 

  단비가 들판을 흡족히 적시는 것을 보고 기뻐한 세종이 정자의 이름을 '희우정(喜雨亭)',

  '비를 만나니 몹시 기쁘다'로 지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예전의 망원정은 1925년 대 홍수로 유실되었다가

  1989년 서울시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서울시 기념물 제9호 문화재)

 

  지금도 망원정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겉에 걸려 있는 현판은 '망원정'

  안쪽에 걸려 있는 현판은 '희우정'이라 쓰여 있습니다.

 

  마포 강변의 수려한 경치 때문에

  예로부터 권세가들의 정자나 별장이 30여 채나 위치했다고 합니다.

 

 

  공덕리금표(孔德理禁標)

  '공덕리! 이곳으로 지나다니지 마시오!'

 

  이게 무슨 소리??

 

  마포구 공덕오거리 대형빌딩 앞에 서 있는 작은 돌 비석에 쓰여 있는 말입니다.

  누가 이런 돌을 이곳에 세워놨을까요?

  이 돌을 세운 사람은 바로 흥선대원군인데요,

 

 

  이곳은 고종의 아버지며, 당시 천하를 호령했던 흥선대원군의 인생 말년을 보내던 별장

  '아소정(我笑亭)'이 있던 곳입니다.

 

  며느리인 명성황후가 청나라 군대에 의존해 세력을 얻고,

  아끼던 손자마저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떠나자

  이에 격분한 흥선대원군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이곳에 별장을 짓고 은둔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은둔생활의 징표가 바로 이 돌 '공덕리금표'입니다.

  '공덕리금표'는 아소정에서 직선거리로 100m 전방에 세워진 비석입니다.

  아소정(我笑亭)은 99칸의 저택이었다고 합니다만,

  현재는 철거되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일생이 너무나 덧없음을 깨달은 흥선대원군은 '스스로 조소한다(비웃는다)'는 뜻에서

  집의 이름을 '아소정(我笑亭)'이라 하였답니다.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절두산(切頭山)' 이곳은 원래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잠두봉(蠶頭峰)'이라 불렀던 곳입니다.

 

  예로부터 풍류객들이 산수를 즐기고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유람선을 띄워

  한강의 경치를 즐겼던 곳이기도 합니다.

 

 

  잠두봉이 절두산으로 불리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1866년 병인년에 흥선대원군이 여러 이유로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했고,

  이에 격분한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통해 이곳 한강까지 군함을 몰고 들어옵니다.

 

  당시 조선은 아무 반격도 하지 못했는데,

  이에 격분한 흥선대원군이 이곳 잠두봉에 형장을 설치해

  천주교인 1만여 명의 머리를 잘라 한강에 던졌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병인박해'와 '병인양요'입니다.

  그 뒤로 사람들은 이곳을 절두산이라 불렀고, 현재는 천주교의 유명한 성지가 됐습니다.

 

 

  절두산 옆 양화진에는 외국인 묘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의사이면서 개신교 선교사였던 헤론(John w. Heron 1856-1890)은

  1985년 한국에 들어와, 고종의 시의(侍醫)로 제중원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나 헤론은 한국에 온 지 5년 만에 이질병에 걸려 3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고종의 건강을 돌보던 의사 헤론이 돌연 사망하게 되자,

  가족들은 정동 미국 공사관 내에 임시로 묘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외국인의 시신이 사대문 안에 묻힌 것을 알게 된 백성들이 크게 반대하자,

  미국, 영국 등 5개국 공사가 모여 당시 정부에 양화진을 외국인 묘지로 쓸 수 있도록 청원했고,

  고종이 이를 허락했다고 합니다.

 

  당시 고종은 자기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저지른 천주교도들에 대한 죄과를 속죄받는다는 뜻에서

  이 같은 결정을 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제중원 의사 헤론을 비롯해 현재 417명의 유해가 잠들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연세대학을 세운 언더우드 부부와 그의 가족,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 이화학당을 설립한 메리 스크랜턴,

  숭실대학 설립자 윌리엄 베어드,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외교활동을 펼친 호머,

  한국에 결핵 요양원을 처음 세운 셔우드 홀 등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의 의료와 교육발전을 위해 노력한 그들의 영령 앞에 잠시 고개를 숙입니다.

 

 

  마포가 포구였다는 흔적은 현재 사용 중인 동명은 곳곳에 있는데요.

  염전에서 배로 싣고 온 소금을 내리고 커다란 소금 창고가 있었던 곳은

  예전 '소금골'로 불리던 마포구 염리동이고, 대흥동의 최근 지명이 '동막'이었는데

  이는 소금을 담았던 옹기를 굽는 옹막(甕幕)에서 유래했습니다.

 

 

 

  마포에는 토정로가 있습니다.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 선생은 생애 대부분을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土亭)'이라는 호가 붙었습니다.

  현재는 이곳이 토정이 살았던 곳임을 알리는 표지석만 있을 뿐입니다.

 

  토정비결이란 책이 토정 이지함 선생이 쓴 책인지,

  아니면 이지함 선생의 생각과 사상을 후대에 누군가 정리한 것인지에 대한 의견대립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포천과 아산의 현감을 지낸 관리로서

  궁핍한 백성들의 생활을 가슴 아프게 여겨 선정을 베풀고,

  그 구제 대책을 왕에게 상소했던 이지함 선생의 선한 마음은

  후대의 길이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마포경찰서를 찾았습니다.

  평생 백성이 불편한 것은 없는지, 굶주린 사람은 없는지를 살펴 살아온

  이지함 선생의 정기가 서려 있는 동네의 경찰서에는 어떤 경찰관들이 있을까요?

 

 

  우리 동네 숨어있는 슈퍼맨을 만나다.

 

  먼저 소개할 경찰관은 용강지구대 김치열 순경입니다.

  184cm의 건장한 체구의 김 순경은 올해 37세로

  경찰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1년이 조금 넘은 신임경찰관입니다.

 

  마포대교를 관할하는 용강지구대 근무하면서

  지난 1년간 자살기도자를 70여 명이나 살린 경찰관이기도 합니다.

 

 

  마포대교는 '투신자살 시도가 가장 많은 다리'라는 오명을 안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강 다리에서 투신한 사람 396명 중 184명(46.5%)이 이곳에서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김 순경은 하루에 3명의 자살 시도자를 구한 경험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112신고 혹은 생명의 전화로 누군가 자살을 하려 한다"는 신고를 접할 때면

  아직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손에 진한 땀이 난다고 합니다.

 

 

  너무 힘들어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을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질 그날까지

  마포경찰서 용감지구대,

  아니 용감하고 강한, 용강지구대

  김치열 순경은 오늘도 마포대교로 달려갑니다!

 

 

  두 번째 만난 경찰관은 청문감사관실에 근무하는 송무영 경위입니다.

  얼굴색이 유난히 좋아 보이는 송 경위는 지난 20년간 헌혈을 무려 101번 한 경찰관입니다.

 

  헌혈을 시작하게 된 동기에 관해 물었더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만성신부전증으로 혈액투석을 하셨는데,

  혈액은 누군가의 헌혈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어디엔가 있을지 모를 또 다른 누군가의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헌혈할 계획이랍니다.

 

  송 경위의 말이 우리나라에서 100번 이상 헌혈을 하신 분이 8천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인도 그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네요.

 

  두 달에 한 번 정도 헌혈을 하는 송 경위는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헌혈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제가 세상을 만든 조물주(?)라면

  송 경위에게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싶습니다.

 

  마포경찰서 송무영 경위와 김치열 순경!

  두 경찰관의 배려와 봉사의 마음이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음 방문할 경찰서는 '영등포 경찰서'입니다.

 

 

 

취재 : 홍보담당관실 이주일 경위

촬영 : 홍보담당관실 박세원 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