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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이야기/서울경찰 치안활동

“살아만 있어다오. 내가 너를 구할거야!”

서울경찰 2013. 6. 24. 14:22

살아만 있어다오. 내가 너를 구할거야!”

자살 시도 중학생을 극적으로 구해낸 한 경찰관의 수기-

 

613일 저녁, 때 이른 무더위에 몸은 이미 천근만근.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려던 찰나에 무전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의 지령이 들려왔다.

 

자살 기도자 발생, 화곡 6동으로 출동 바람

 

동생이 자살한다는 문자를 남기고 집을 나갔다는 신고였다.

 

경찰관의 본능일까?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식사도 뒤로 미룬 채 급히 핸들을 돌려 신고자의 주소지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119와 협조해 신고자 동생의 휴대폰에 대한 위치추적을 진행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조수석에 탄 근무자는 신고자와 통화하며 자살 기도자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해 신고자와 통화를 계속했다.

 

한 초등학교 주변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신고자를 만나 함께 주변수색을 시작할 무렵 기다리던 위치추적 결과가 나왔다.

 

자살 기도자 위치, ○○주택가 부근 반경 100미터

 

 

 

반가운 무전지령이었지만, 그 곳은 주택 밀집지역이라 아파트, 빌라가 수십 채,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 순찰차 뒷자석에 앉아 받지도 않는 아이에게 계속 통화를 시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아이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집과 가장 가까운 곳부터 찾기 시작했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마다 옥상 출입문이 열려 있는 통로를 물어보고는 한 달음에 옥상까지 내달렸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내가 너를 구할거야!”

 

그렇게 몇 개 동을 뛰어 다녔을까, 다른 동 수색을 위해 1층으로 내려온 나는 순찰차에서 내려 울먹이며 통화하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엄마는 아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구나! 이 경찰아저씨가 반드시 널 찾아내마!”

 

나는 촉각을 곤두세워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통화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죽어버리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거 아니야! 됐어!”

 

아들아, 엄마가 잘못 했어, 어디 있니,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차량 통행소리도 섞여 들려왔다.

순간 무엇인가 뇌리를 스쳐갔다.

 

이 주변에서 전화기로 차량소음이 들릴 만큼 시끄러운 곳은 ○○아파트 밖에 없어!”

 

그동안 빈집털이 예방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한집, 한집 순찰을 돌면서 기억해 두었던 아파트와 빌라들의 특징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 아이의 엄마에게는 계속 통화를 하고 있으라고 부탁한 후 신고자인 아이의 형과 함께 ○○아파트로 향했다.

 

경비아저씨! 옥상문이 열려있는 동이 어디어디에요?”

○○△△□□동이 열려 있는데 왜 그러세요?”

 

대답할 겨를도 없이 형과 함께 ○○동 옥상위로 뛰어 올라갔다.

없었다, 그리고 그 옆동인 △△동에도 없었다.

 

! 어쩌지, 여기까지 왔는데, 제발 □□동에는 있어야 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계단을 뛰어 오르는데, 형이 외쳤다.

 

아저씨! 제 동생이에요!!!”

 

소리를 들은 동생은 도망치듯 계단을 힘껏 뛰어 올라갔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 뒤를 쫓았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옥상으로 오르기 직전 겨우 아이의 바지 가랑이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냥 죽게 내버려 뒤!!!”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심하게 저항했다.

나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형을 먼저 내려 보내고, 단둘이 앉아 아이를 설득했다.

 

아저씨도 너와 같은 어려운 시절이 있었어,

누구에게나 사춘기는 오는 거야 그걸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우리, 남자잖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 아이는 옥상에서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만났다.

 

 

아이와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나는 가족의 허락을 받아 순찰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왜 아이가 자살하기 하려고했는지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는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말이 없던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천천히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누가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아이는 아버지의 투병으로 어머니가 생계를 담당하고 있는데다가 자신은 몸이 불편해 아이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싫다고 했다.

 

집에서는 저한테만 잘못을 지적하고, 제가 어떤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아요.”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애들이 저를 쉽게 생각해요.

아니 주변 사람 모두 제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아요.”

 

나는 가만히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 그렇게 30분간의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전문 상담교사(강서구청 보건 정신상담소)의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었다.

 

형이랑 카톡 친구 할 수 있지?”

 

이 사건 이후 나는 아이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소통창구 역할을 자처해 인생의 멘토가 되기로 했다.

 

소중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던 보람, 나는 오늘도 경찰관임에 마음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