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 경인고 치안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2018. 6. 22. 11:29

 

경인고 치안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다시피,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독립·호국·민주화 과정을 거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하신 분들에게 추모와 감사를 전하는 달입니다.

 

이런 뜻깊은 달을 맞아 서울구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SPO(학교폭력전담경찰관)

구로구 관내 경인고등학교 치안동아리(POLI)와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여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충의와 위훈을 기렸습니다.

 

 

 

 

경찰 충혼탑에서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추모사를 낭독하며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추모글을 작성하여 메모보드에 붙여 게시하는 등 참배를 통하여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번 현충원 참배를 통해 경인고 치안동아리 학생들에게 더욱더 경찰의 대한 자긍심과 사명감을 고취시켰으며,

앞으로 경찰의 꿈을 더욱더 키울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거 같습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 서울경찰은 국가를 위해 힘쓰다 가신 모든 분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달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동네 경찰서 - 동작경찰서

2015. 6. 29. 09:16

 

  「우리동네 경찰서」(이하 우리서)가 한 호 쉬었습니다.

  매호 우측 상단에 붙박이처럼 있던 '우리서'가 보이지 않자,

  수많은 독자들의 서울경찰청을 항의(?) 방문하고,

  이메일과 댓글을 통해 '다시 기사를 올려라!'는

  열화와 같은 요구가 있을 줄 알았으나... ....

 

  현실은,

  아무도 그런 기사가 있었던 줄도 모르고

  심지어 '우리서'가 없었던 지난 호가 유독 더 재미있었다는 의견도.... ㅠㅠ

 

  이러다 하반기 인사 때 홍보실에 쫓겨날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금 경찰서를 방문합니다. ^^

  (여러분의 댓글이 기사를 쓰는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각설하고,

  오늘 방문할 '우리서'는 「동작 경찰서」입니다.

 

 

  '동작 경찰서'는 '노량진 경찰서'라는 이름으로 1966년에 개서했습니다.

  서울 도심 사대문 안의 경찰서가 1945년 경찰 창설과 함께 개서했던 것과는 비교되지요.

  서울에 있는 경찰서의 개서 년도를 살펴보면,

  서울의 행정구역이 근대화를 거치면서 어떻게 확장됐는지를 잘 알 수 있는데요.

 

  동작 경찰서가 있던 이곳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 동작리였습니다.

  이후, 1914년 경기도 시흥군 북면에 속하였고,

  1949년 8월에는 서울이 커지면서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하게 되었다가

  1973년 관악구로, 1980년 비로소 지금의 동작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6년 이곳 경찰서도 '노량진 경찰서'에서 '동작 경찰서'로 개명했습니다.

 

  한강 이남에 있는 동작구는 예로부터 나루터가 발달했는데요.

  지명에 '진(津)'이 들어가 곳은 나루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의 광진(廣津), 송파진(松坡津), 양화진(楊花津),

  노량진(鷺梁津), 동작진(銅雀津)이 바로 한강의 대표 나루터입니다.

 

 

  이곳은 동작대교 아래 '동재기 나루터'가 있었던 곳입니다.

  노량진에서 오면 흑석동 고개를 넘어와 만날 수 있는 곳인데요.

 

  주변에 검은 돌이 많아 '흑석동'이라고 불리던 곳을 지나면

  '동(銅)' 색깔을 띤 구릿빛 돌이 많았기에 사람들은 이곳을 동재기 나루터라고 불렀고,

  지금의 '동작'이라는 말의 어원이 됐습니다.

 

  동재기 나루터는 서울에서 과천 · 수원 · 평택을 거쳐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서울로 들어오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너던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우리서' 동작 경찰서를 선정한 가장 큰 이유.

  바로 16만여 명의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이하 현충원)이 위치하고 있어서입니다.

 

 

  현충원은 1955년 7월 15일 이곳 동작동에 142만㎡(43만여 평)의 대지에 설립되었습니다.

  민족적 수난인 한국전쟁으로 전몰한 국군 장병들이 이름없는 넋이 되어 전국에 산재해 있던 것을

  한 곳에 안장하기 위하여 '국군묘지'라는 이름으로 설치되었습니다.

 

  처음 국군묘지의 안치 대상은 전몰한 군인에 한하였으나,

  1965년 '국립묘지'로 그 격을 높이고,

  안장 대상자 범위도 군인, 경찰 외에 국가에 공을 세운 민간인에까지 확대하였습니다.

  그리고 1996년 6월 1일 '국립묘지'에서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이곳을 좀 더 둘러볼까요?

 

 

  채명신 장군의 묘역입니다.

  1926년 황해도 곡산에서 항일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난 채 장군은

  1947년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5기로 입학해, 한국 전쟁에는 소위로 참전했습니다.

 

  1965년 베트남 전쟁에는 맹호 부대장으로 4년 동안 참전했는데요.

  당시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지시하는 등

  덕장으로 존경을 받았던 분입니다.

 

  지난 2013년 고인이 된 채 장군은 '나를 파월 장병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이곳 현충원 장군 묘역이 아닌 일반 병사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죽어서도 전쟁 동료들 속에 있는 채명신 장군의 비석을 보는 것만으로도

  덕장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경찰충혼탑입니다.

  우연히 저희가 방문한 날. 경감급 기본 교육생들이 현충원 방문을 하고 있었는데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 바친 선배경찰관들의 묘역에 머리 숙이는 후배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제가 아는 이름도 있네요.

  2013년 신호위반을 하던 오토바이에 치여 순직한 박경균 경감의 묘역입니다.

  한 시대를 한 하늘 아래서 함께 근무한 동료 경찰의 비석 앞에 선다는 것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현충원을 나와 사육신 공원으로 향합니다.

 

  사육신에 대해서 아시나요?

  세조 2년(1456)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처형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삼문 · 박팽년 · 하위지 · 이개 · 유성원 · 유응부 등 여섯 분을 가리킵니다.

 

 

  1681년 사육신이 처형당하고 200여 년이 지나서 숙종이 이곳에 서원을 세워 이들의 충절을 기원했으며,

  이후 정조(1782)가 이곳에 신도비를 세워 이들을 추모했다고 합니다.

 

  1978년 서울시는 이곳 묘역을 9,370평으로 확장하고

  의절사, 불이문, 홍살문, 비각을 새로 지어 충효 사상의 실천도장으로 정화하고자 했습니다.

 

  본래 이 묘역에는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그 후 하위지, 류성원, 김문기의 허묘(墟墓)도 함께 추봉하였습니다.

 

 

  불이문입니다.

  '忠臣不事二君(충신불사이군)'

  '충성된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라는 고사에서 따온 모양입니다.

 

  이처럼 동작구에는 곳곳에 나라에 대한 충(忠)과 관련된 흔적들이 많습니다.

 

 

  이번에는 효(孝)에 대한 흔적들을 찾아볼까요?

 

  '화성능행도'는 정조가 1795년 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소 현륭원(顯隆園)에 행차한 뒤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던 일을 그린 것인데요,

  이후 정조는 자주 수원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의 흔적을 이곳 동작구 곳곳에서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장승배기'라고 들어보셨죠?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에 있는 장승들인데요.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참배 길을 떠난 정조는 지금의 이 자리에서 항상 쉬었답니다.

  지금은 차량이 다니고 도심 번화가이지만, 옛날에 이 일대는 인가가 없는 울창한 나무숲이었답니다.

 

  어두운 저녁이면 오싹한 기운까지 돌자 정조는 "이곳에 장승을 만들어 세워라. 하나는 장사 모양을 한 남자 장승을 세워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또 하나는 여자 장승을 세워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으로 하여라."하고 명했답니다.

 

  이때부터 이곳은 장승배기란 지명이 붙게 되었고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가는 길에 이 장승 앞에 어가를 멈추고 편안하게 쉬었다고 하네요. ^^

 

 

  한강대교가 보이는 이곳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도 정조(15년, 1791)가 지은 행궁입니다.

 

  이곳 행궁은 지금의 휴게소 같은 곳입니다.

  한강에 다리가 없던 시절 왕의 행차가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배다리를 설치했는데요.

  다리가 설치되는 동안 왕 일행이 쉬었던 곳입니다.

 

  용양봉저정에서 한강대교가 바로 보이는 것으로 보아

  왕 일행이 한강대교가 놓인 곳을 통해 강을 건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동작경찰서 관내에는 의미 있는 다리들이 몇 개 있는데요.

  용양봉저정에서 바로 보이는 이곳 '한강대교'는 1900년 한강을 남북으로 잇는 최초의 다리입니다.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1969년 다시 복구된 역사가 있는 다리입니다.

 

 

  한강대교 옆 동작대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과 차량이 함께 다닐 수 있는 병용다리입니다.

 

 

  노량진역입니다.

  이곳 노량진역에는 철도의 시발지를 알리는 돌비석이 있는데요.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철길 중간에 있어 노량진 역의 협조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1897년 3월 22일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가 착공되었습니다.

  최초 건설을 했던 미국인 제임스 모스는 공사자금이 부족하자 이를 일본인 회사에 팔아넘겼고,

  1899년 4월 일본에 의한 두 번째 기공식이 열렸으며,

  우여곡절 끝에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역에서 인천역 간 33.2Km의 철도가 놓임으로써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노량진에는 수산시장과 학원가가 있는데요.

  노량진 학원가를 설명한 글은 서울경찰 뉴스레터 41호에 있으니 참고해 보세요. ^^

 

  노량진역 건너편 동작경찰서에 도착했습니다.

 

 

  노량진 경찰서 민원실에는 올해 12월 정년퇴직을 앞둔 인상 좋은 경찰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바로 교통관리계장 김우찬 경위입니다.

  올해로 경찰근무 33년째인 김우찬 경우는 교통업무의 달인인데요.

  정년을 6개월 앞둔 지금도, 유치원 · 초 · 중 · 고등학교는 물론

  경로당까지 찾아가 교통안전교육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Q. 유치원부터 경로당의 어르신까지 교통안전교육을 하는데 강의에 대한 본인만의 비법이 있나요?

 

  A. 있지요, 세대별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릅니다. 천편일률적인 강의를 한다면 아무도 공감을 안 합니다.

 

 

  김 경위는 성공적인 강의를 위해 마술을 배우기도 하고,

  최신 유머와 교육 관련된 동영상 자료도 평소에 수집하는 것이 취미라고 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는 이유는 학원가가 밀집한 동작경찰서와 고시생들로 북적이는 관악경찰서에서 30년을 근무했기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수험생의 열정과 심리를 잘 알기 때문이랍니다.

 

 

  "네가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면 아주 좋은 행운이 온다."

 

  방범순찰대 의경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정광영 경사는 독특한 취미가 있는 경찰관인데요.

  바로 손금과 타로를 연구하고 있는 경찰관입니다.

 

 

  동작경찰서 수사지원팀에 근무하고 있는 정광영 경사는

  10년 전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가 궁금해 손금과 타로를 공부하게 됐지만,

  행운이란 것은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기보다는

  노력하는 자가 만날 확률이 높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요즘은 점심시간이나 일과시간이 끝난 후 찾아오는 동료나 의경들에게 상담해 주고 있답니다.

 

  정 경사의 꿈은 경찰청 과학수사과에서 범죄자들의 유형별 손금에 관한 연구를 해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지문뿐 아니라 손금도 수사기법으로 활용하는 외국 사례가 있는 만큼,

  프로파일링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포춘 폴리스 정광영 경사의 말이

  지문의 경우 "만인부동(萬人不同), 종생불변(終生不變)"하지만

  종생불변한 운명은 없다고 합니다.

 

  자신의 노력이 자신의 운명도 바꿀 수 있다고 하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기회가 올 때 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운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손금이나 지문이 한 사람의 살아온 인생의 발자취라면

  지금 이 시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서울경찰의 노력이야말로

  서울시민의 행복이고 안전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서울경찰 파이팅!"

 

  다음 방문할 우리서는

  '마포 경찰서'입니다.

 

 

 

취재 : 홍보담당관실 이주일 경위

촬영 : 홍보담당관실 박세원 경사

 

 

 

(동작) 수양벚꽃과 함께하는 현충원 안보전시회

2015. 4. 23. 14:39

수양벚꽃과 함께하는 현충원 안보전시회

서울 동작경찰서에서는
다채로운 봄꽃과 싱그러운 봄 내음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이 계절에
국립현충원에서 수양벚꽃과 함께하는 안보전시회를 개최하였어요.

대국민 안보의식 향상을 위한 이번 전시회는 주민 누구나 관람할 수 있고
사진전시회, 페이스 페인팅, 순찰차 시승, 기념품 증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었어요.

과거의 경색된 남북관계를 보여주는 사진전시회 현장이에요
사진들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시는 어르신들입니다.

아직은 안보의식이 부족한 어린이들에게도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배우며, 남북관계가 처한 상황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입니다.

태극기 그리기가 무척이나 재미있는 듯 흠뻑 빠진 어린이들,
아이들에게 태극기에 담긴 뜻을 알려주며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도 쑥쑥 키워가요~~

해맑은 아이들에게 순찰차는 역시 인기 만점~^^
순찰차를 직접 타보는 시간을 가지며 경찰이 되고 싶은 꿈도 키워갑니다.
이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키우며 자라날 수 있도록 튼튼한 국가안보는 필수겠죠?

포돌이 인형을 직접 써보며 멋지게 자세도 잡아보는 동심 가득한 어르신이에요.
안전하고 행복한 동작, 포돌이와 함께 만들어가요~^^

 

이번 안보 전시회를 통해 주민 여러분들에게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국가안보관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면서
앞으로도 대국민 안보의식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하는 동작경찰이 될게요.

당신의 안보의식은 몇 점입니까?
하나 되는 안보의식이 강한 대한민국을 만듭니다.

 

(서부) 10년 전 그 날...

2014. 8. 8. 16:44

 

 

 

10년 전 그 날도 오늘처럼 덥고 습한 여름날이었습니다.

200481일 밤 9시를 넘긴 시각.

도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피서를 떠났거나, 남은 사람들은 다가올 월요일에 대한 준비로 벅차 있을 한여름의 일요일 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강력계 형사의 일상에 주말이란 없었습니다. 강간범을 잡기 위해 피서조차 미뤘으니까요.

 

서울서부경찰서 강력계 심재호 형사와 이재현 형사는 그날도 여전히 강간수배범을 잡기위해 하루 종일 티셔츠가 젖는 줄도 모르고 뛰어다녔습니다.

 

마침내 강간범이 피해자와 다시 만난다는 첩보를 듣고 그들이 만나기로 한 카페에 잠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눈앞에 강간범이 나타났고 두 형사가 그를 체포하려던 순간, 강간범이 미리 준비한 흉기에 찔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에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된 후였습니다.

 

[2004.8.1일자 연합뉴스]

 

아내와 자식을 둔 아버지, 곧 결혼을 앞둔 한 남자...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두 형사의 마지막이 그렇게 끝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1일은 두 형사가 떠난 지 10년이 된 날이었습니다.

 

경찰서에서는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추모식을,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과 지금의 강력계를 지키고 있는 형사들은 국립현충원으로 향했습니다.

 

서부경찰서 1층 복도 한쪽에 자리 잡은 두 형사의 추모관,

작은 공간이지만 그들을 기리는 마음만은 크게 기리고 있습니다.

 

 

"영원한 빛으로 기억되리라"  문구 그대로 당신들은 우리의 빛이 되셨습니다.

 

 

 

매미 울음소리가 유독 서럽게 느껴지는 여름날, 단출한 선물을 들고 동료를 만나러 갑니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동료의 허망한 죽음은 마치 엊그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항상 생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범죄현장과 강력계 형사는 불과분의 관계인것 같습니다. 언제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동료의 부상이나 죽음을 접하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느껴집니다.

 

" 이 친구야, 잘 지냈는가..."

가족들은 아직 남편이, 아빠가 옆에 있는 것 만 같습니다.

 

 

예전처럼 함께 사진도 찍어 봅니다. 비록 동료의 이름과 함께이지만 아마 그 곳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경찰서나, 현충원을 찾지 못하는 동료들을 위해 사이버경찰청<순직경찰관 추모관>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아직 그들을 잊지 못한 동료들과 후배들,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2004년 8월1일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마 대한민국 경찰 역사상 두 경찰관이 한 장소에서 운명을 달리한 사건은  없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을...

다시 만날 그날까지 편히 잠드소서... 

 

 

 

  • 지현 2014.08.20 10:51

    10년 후 2014년 7월 25일 또 한분의 경찰관이 피습으로 순직하셨습니다.
    그리고, 같이 출동했던 동료 경찰관은 범인이 휘두르는 칼날을 막고, 총기 사용으로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경찰관은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4주째 입원중입니다.
    맞벌이 하던 아내는 한달 가까이 출근을 못하고 간병인 역활을 하고, 아이들은 지방에서 저희 둘이 밥해먹고, 학원다니고, 청소하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순직하신 분 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경찰관도 잊지 않은 경찰조직이 되길 바래봅니다. 순직하신 분껜 특진, 훈장, 기타 등등을 제공하고, 살아남은 경찰관에겐 관할서장님의 "빨리 회복해서 복귀해야 하게나, 정말 훌륭하게 일처리 했어~!" 이 격려가 전부 였답니다.

    이런 일들을 보고서 마음 아파하던 와중에 서부경찰서의 이런 애도의 마음이 참으로 존경스럽니다.

우리들의 영웅! 당신을 기억합니다

2014. 6. 13. 10:51

 

 

 

  지구 상의 어떤 나라도 전쟁을 치르지 않은 곳이 없고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이 없는 나라 또한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인데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법질서 수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순직경찰관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시원한 바람이 일던 지난 6월 6일 아침.
  제59회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습니다.

 

 

 

 

  순직한 선배 경찰관의 묘역에 꼭 한 번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로 창설된 현충원은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로 승격된 이후,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가 장으로 장의 된 사람 및 국가 · 사회 공헌자, 순국선열 또는 애국지사, 군인 등을 비롯하여 경찰공무원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정문을 통과하면서 마주했던 충성분수탑!

 

  필자 역시 경찰관인지라 각 군 용사들의 조각상 사이에서도 가장 먼저 경찰관 동상이 눈에 띄었는데요. (으쓱) 마치 "잘 왔다, 어서 와라"며 반겨주는 것 같았습니다.

 

 

 

 

  분수탑 뒤쪽을 보니 금잔디 광장 너머로 현충문이란 커다란 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문을 들어서면 하늘을 찌들 듯한 현충탑이 서 있는데요.

 

 

 

 

  대한민국 육, 해, 공 3군 의장대의 정중한 예우를 받으며 경건하고 엄숙하게 현충탑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갔습니다.

 

  현충탑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충의와 휘훈을 총체적으로 상징하는 탑인데요. 이 탑을 중심으로 동서묘역에 국가유공자 묘역, 애국지사 묘역, 장군 묘역, 장교사병 묘역, 경찰관 묘역 등 신분별로 약 5만여 위가 정렬해있습니다.

 

 


<현충탑 비문>

 

  현충탑 참배를 마치고 묘역 상단에 위치한 <경찰충혼탑>을 찾았습니다.

 

 


<경찰충혼탑>

 

  이 탑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경찰관의 넋을 위로하고 그 뜻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것인데요. 탑신 중앙으로부터 양쪽으로 두 팔을 벌린 듯한 날개는 경찰의 따뜻한 보호를 나타내고, 탑신 하단에는 경찰 활동의 상징인 신, 의, 용의 3인 상을 세워 충성과 봉사정신을 나타냈습니다.

 

  탑 전면 하단에는 이은상 선생이 지은 헌시가 새겨져 있으며, 탑신 중앙의 '경찰충혼탑' 글씨는 故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휘호했는데요.

 

 


<충혼탑 참배 중인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이성한 경찰청장>

 

  이곳을 처음 방문한 필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알리는 뜨거운 나팔 소리에 뭉클함을 느끼며 순직한 선배 경찰관들을 떠올렸습니다.

 

 

 

 

  경찰충혼탑 바로 아래에 있는 이곳이 바로 경찰묘역입니다.

 

  꼭 한 번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던 바로 그곳이죠.

 

 

 

 

  경찰묘역은 장병묘역 중 5, 8, 9번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이곳에는 1988년 10월 10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오로지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다 순직한 故 안병하 경무관과 2013년 12월 7일 이륜차 단속 근무 중 법규위반 오토바이에 치여 순직한 故 박경균 경감 등 전사 · 순직한 820명의 경찰관이 잠들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숭고한 희생으로 후배 경찰관에게 귀감이 되는 우리들의 영웅!

 

  자랑스러운 선배 경찰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별이 되다'

 

  안전한 도로를 꿈꾸던 은평경찰서 경비교통과 故 박경균 경감.

 

 

 

 

  한 묘역 앞에 뜨거운 눈물을 보이는 두 여인이 있었습니다.

 

  말을 건네기가 너무도 죄송했지만,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으니 故 박경균 경감의 아내와 처제라고 합니다.

 

  순직한지 1년이 채 안 된 박 경감.

 

  아직도 생생한 남편의 기억 때문인지 그의 아내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故 박경균 경감은 2013년 11월 15일 은평구 구기터널 부근에서 교통단속을 하고 있었고, 오후 4시 10분쯤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과속 오토바이 한 대를 세우기 위해 정지 지시를 했습니다.

 

  하지만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오토바이는 더 빠르게 질주하였고, 박 경감은 오토바이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머리부터 땅에 떨어진 박 경감은 그 충격으로 의식을 잃었고, 곧장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두개골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고 입원치료 중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겠다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故 박경균 경감.

 

  누군가의 가족이고, 동료였을 선배 경찰관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의 묘역 앞에 작은 꽃 한 송이를 헌화했습니다.

 


  '위민정신의 표상'

 

  故 안병하 경무관을 추모하며…

 

 

 

 

  이곳은 故 안병하 경무관의 묘역입니다. 안 경무관은 1980년 5 · 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 지역의 치안 책임자인 전남 경찰 국장이었는데요.

 

 


<故 안병하 경무관>

 

  당시 신군부로부터 "경찰만으로는 치안 유지가 어려우므로 군 병력 투입을 요청하라"는 강요와 협박을 받았지만, 군이 투입될 경우 시민들을 자극하여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이를 거부했고,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라는 명령에도 "상대는 우리가 보호해야 할 시민인데 경찰이 어떻게 총을 들 수 있느냐"며 경찰이 소지한 무기를 회수하기도 했습니다.

 

 


<故 안병하 경무관의 묘역 앞에서 묵념하는 이성한 경찰청장>

 

  결국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직위를 해제당한 그는 보안사로 끌려가 10여 일의 온갖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1988년 10월 10일 생을 마감했습니다.

 

  묘역 앞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봤습니다.

 

  "과연 나였다면…"

 

  신군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면 출세가 보장되고, 그러지 않으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닥칠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알았음에도 정의의 길을 선택한 故 안병하 경무관.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오직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 노력했던 그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살신성인 자세'

 

  故 최규식 경무관을 기억하며…

 

 

 

 

  1932년 9월 9일 강원도 춘천 출생인 故 최규식 경무관은 1961년 경찰에 투신했습니다.

 

  종로경찰서장으로 재직 중이던 그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 공비 김신조 등 31명이 청와대를 기습 공격하기 위해 파주지역에서 남하 중이란 첩보를 접수하고, 이를 막기 위해 현장에 배치됐습니다.

 

 


<청운실버센터 앞>

 

  무장공비 일행이 청와대 바로 옆(현재 청운실버센터 앞)에 이르렀을 때, 최규식 서장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검문을 했고, 이에 불응한 일당을 체포하라고 명령하자 뒤에 따라오던 일당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순직했습니다.

 

 


<종로구 청운 공원에 세워진 故 최규식 경무관 동상>

 

  최규식 서장은 가슴과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서도 "청와대를 사수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남겼는데요. 이러한 헌신과 희생으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로 진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안위는 잠시 잊고 국가와 국민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그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는데요.

 

  순직 당시 나이가 서른 중반이었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이 밖에도 2004년 7월 29일 폭력사건의 피의자를 검거하던 중 피의자가 휘두른 칼에 찔렸음에도 계속해서 검거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과다출혈로 순직한 서부경찰서 심재호 경위, 이재현 경장

 


 

 

 

  1982년 11월 5일 마포구 아현동 도시가스 정압장(배관압력을 조절 하는 곳)에서 가스가 누출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인부 3명을 구출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정압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구출 도중 가스에 질식해 숨진 마포경찰서 故 김유연 경사, 황재하 상경 등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경찰관이 그들의 사명을 다 하고 순직했습니다.

 


 

 

 

  이 아이도 어른이 되면 알겠죠?

 

  자신의 아버지가 너무나도 멋있고 자랑스럽다는 것을…

 

 

 

 

  그렇게 선배경찰관들의 묘역을 순례하고 고귀한 희생과 숭고한 정신을 떠올리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려왔습니다.

 


  알고 계시나요?

 

  뉴스에서 범인을 검거하다 순직한 경찰관의 소식과 음주운전 도주 차량을 쫓다 순직한 경찰관 등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1948년 10월 21일 경찰이 창설된 이래 지금까지 매년 전국의 20~25명의 경찰이 업무 중 순직했고, 1,000여 명이 공상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이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법과 질서를 잘 지키고 마음으로 이분들을 희생을 기리며 그 숭고한 뜻을 본받는 것인데요.

 

  그들을 직접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가까운 현충원을 찾을 수 없다면 인터넷으로 참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 사이버 참배>

 

<국립서울현충원>이나 <국립대전현충원>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면 사이버상에서 실제와 같은 참배를 체험하고 추모의 글을 남기며 애도를 표할 수 있고,

 

 

 

 

 

  사이버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순직경찰 추모관>이나 <참수리 사랑재단 추모관>에서 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순직경찰 추모관 사이버 참배 화면>

 

 


<순직경찰 추모관에 남겨진 추모의 글>

 

  또한 서울경찰청은 청사 1층 중앙홀에 '서울경찰 추모의 벽'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서울경찰청사 1층에 위치한 '서울경찰 추모의 벽'>

 

  가로 3m 10㎝×세로 1m 30㎝ 크기의 금도금 동판에 6 · 25 전쟁 중 전사하거나 공무수행 중 순직한 서울경찰 1,379명의 이름을 새겨놓은 '추모의 벽'을 설치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경찰관들의 이름을 벽에 새겼습니다.

 

 


<'영웅 찾아보기' 코너에 마련된 방명록 작성>

 

  방명록 작성과 영상헌화, 순직자 업적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웅찾아보기'도 마련되어 있으니 한 번쯤 방문하셔서 추모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법질서 수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순직경찰관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6월 한 달만큼은 우리 모두 호국정신과 애국심을 가슴 깊이 새기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다시는 순직과 같은 아픔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경찰관의 안전을 기원합니다.

 

 

 

 

 

 

  • BlogIcon 황보옥섭 2014.06.16 09:42

    고 박경균경감의 명복을 빕니다
    같이 근무하면서 많은 직원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었는데 이렇게 훌쩍 떠나버리니...맘이 너무 아픕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부디 교통사고 없는 평온한 영면을 하셨으면 합니다


10-1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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