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이 만드는 연말연시 안전 A to Z - #4. 꼼짝 마! 동네조폭

2016. 12. 29. 10:04


















서울경찰이 만드는 연말연시 안전 A to Z

#4. 꼼짝 마! 동네조폭


당신 곁에 Seoul Police 민생안정

File4. 주민이 안전한 동네 만들기


"왜 상납 안 해?"

서울 명동 한 복판, 상습적으로 노점상들에게 자릿세를 요구, 심지어 잦은 폭력을 일삼았던 남성들 검거 - 서울남대문경찰서


"어차피 당신들 불법이야!"

도우미 영업을 신고하겠다며 매일같이 업소에 찾아와 무전취식 등 금품을 갈취하며 윽박지르던 일당 검거 -서울도봉경찰서


그들은 바로! 지역주민이나 상인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돈을 갈취하거나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는 '동네조폭' 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조폭의 집단 행동은 점차 음성화되었으나 지역 주민들의 평온을 해치는 동네조폭은 증가했는데요

특히 서민생활권에 대한 직접적인 위해가 커 국민 불안의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지난해부터 경찰서에 전담수사팀을 설치하고 동네조폭을 집중단속 한 결과

총 13,938건을 적발, 8,760명 검거했습니다. (※ 서울경찰청 3,499건 적발, 2,121명 검거, 375명 구속) ('16. 10월 기준)


동네조폭은 경찰의 집중단속 뿐만 아니라 주민의 신고가 중요한 만큼

피해자 및 신고자들 보호에도 주력하여 주민들의 긍정적인 호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서울경찰은 앞으로도 연말연시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밤낮없이 보다 힘껏 뛰겠습니다.










안전한 서울, '안전한 우리동네를 소개합니다'

2016. 6. 29. 10:26


안전한 서울, '안전한 우리동네를 소개합니다'

서울경찰 SNS 기자단이 함께 만드는 우리동네 안전지도



연이은 범죄소식으로 '안전'에 더욱 민감해지는 요즘,


질문을 던져봅니다. 과연 우리 동네는 안전한가요?

안전한 동네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해답을 얻고자 마련된 시간!

서울시내 각 지역에 근무하고 있는 현장경찰 SNS 기자단*이 '우리동네 알리미'가 되어

지역별 운영 중인 여성 및 시민안전을 위한 제도를 직접 취재해 봤는데요.


* SNS기자단이란?
   사진과 SNS에 탁원할 능력이 있는 시민과 현장경찰을 각 20명씩 선발,
   서울경찰의 치안현장을 촬영·취재하면 해당 내용을 서울경찰 공식 SNS에 포스팅


안전한 서울, '안전한 우리동네를 소개합니다'


범죄취약지에 벽화·등 설치 등 다양한 환경 개선 노력으로

안전 확보를 넘어 지역 명물로까지 거듭난 공간들.

이곳에 대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안전한 동네'를 만드는 해법을 모의해보고자 합니다.


지역별 대표 선수 9곳을 중심으로

한 눈에 살펴보는 '우리동네 안전지도'를 완성해 보았는데요.


아래 지도에서 궁금한 지역을 클릭해보세요!

클릭 한 번이면,

언제 어디서든 우리동네만의 특별한 시책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답니다.



강동구관악구금천구도봉구동대문구마포구성북구용산구은평구




안전한 우리동네 만들기,

시민 여러분들의 관심과 참여가 꼭 필요합니다.

함께 해 주실거죠? ^^


취재 : SNS 기자단

기사 : 홍보담당관실 경사 박소영










2015. 10. 23. 18:26

(영등포)전통시장에 찾아온 불청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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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2015. 8. 10. 14:50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전국 경찰관들의 노력으로 날이 갈수록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48,000명의 아이가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하고 있는데요.

학교폭력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학교 가기가 두렵고, 친구들이 무섭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진 마음을 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성북경찰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이번에는 청소년과 학교전담경찰관(SPO)이 함께하는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입니다. 말 그대로, 청소년과 학교전담경찰관이 학교 주변이나 청소년 밀집지역, 공원,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지정하여 걸어서 동네 한 바퀴 순찰하며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홍보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훨씬 더 효과적인 홍보활동이 예상되는데요.

우리 아이들이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
먼저, 효과적인 순찰활동이 될 수 있도록 학교폭력은 물론 4대 사회악(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에 관한 사전내용을 설명해 주고 순찰방법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그럼 이제 홍보활동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 출발해볼까요??


출~발~ !!!!!
학교폭력 예방 어깨띠를 매고 성북에서 유동인구가 많기로 소문난 성신여자대학교 앞 하나로 거리부터 시작했습니다.


골목골목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민들이 많은 정릉시장도 방문하였습니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2시간 동안 걸어서 마을 곳곳을 돌아다닌 아이들을 보며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만큼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열정이 뛰어난 거겠죠?
열정이 뛰어난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선물을 주기로 했는데요.
이 더운 날~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 ???!!!!!

쨔잔~~~


바로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무척이나 좋아하던 아이들 ^^
열심히 홍보활동 한 후 먹는 아이스크림은 완전 꿀맛 >.<
아이들의 활기찬 에너지 덕분에 우리도 덩달아 힘이 납니다!
아이들과의 “동네 한 바퀴”는 앞으로도 쭈우우우우우욱~~~~~ 계속될 것입니다.
학교폭력에 ZERO(0%)가 되는 그 날까지
아자아자 파이팅 !!!!

 


우리 동네 경찰서 - 마포경찰서

2015. 7. 24. 09:40

 

  에이핑크, 소녀시대, 투애니원, AOA

  멋진 춤과 가창력으로

  삼촌 팬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걸 그룹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투애니원 씨엘의 허스키 보이스를 좋아합니다. ^^

 

 

  그런데 여러분

  '은방울 자매'라고 들어보셨나요?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4년도에 결성한 걸그룹 '은방울 자매'는

  '마포종점'이라는 노래로 유명한대요.

 

  당시에 마포에 살던 작곡가 정두수 씨가

  마포와 세종로를 오가던 전차(1907-1968)가 사라진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만든 노래입니다.

 

 

 

  예전 걸그룹의 노랫말은 시 같습니다. ^^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엔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또한, 마포전차종점은 독립운동 유적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의 독립선언식을 마친 1천여 명의 시민이

  해 질 무렵부터 일제의 감시와 견제를 피해 마포종점 부근에 모여 밤늦은 시간까지

  대한민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만세를 부른 곳입니다.

 

 

  오늘 방문한 경찰서는 '마포 경찰서'입니다.

 

  마포 경찰서는 1945년 경찰 창설과 함께 개서했습니다.

  마포구는 서울의 중서부 한강 하류 연안에 있는 구(區)로서

  북쪽으로는 경기도 고양시와 서대문구에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용산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서쪽은 한강을 끼고 있습니다.

 

  마포구는 25개 자치구 중 한강과 가장 많이 접해 있습니다.

  예로부터 포구문화가 발달하여 역사적으로 서울의 관문역할을 했는데요.

 

 

  현재는 발달한 교통을 기반으로 서울 도심의 업무중심지구로 발전하고 있으며

  아울러 홍대 앞과 신촌 등은 대학문화를 기반으로 '젊음의 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쓰레기 매립지였던 상암동은 2002 월드컵을 거치면서

  IT · 미디어 기업이 집중된 첨단 정보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마포팔경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관동팔경(강원도), 단양팔경(충북 단양)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한강을 끼고 도는 마포 주변의 모습을 옛 선인들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경 비 갠 날 저녁 용산강에 뜬 달 「용호제월(龍虎霽月)」

  2경 삼개나루로 돌아오는 수많은 돛단배 「마포귀범(麻浦歸帆)」

  3경 방학교 부근의 샛강에서 밤낚시 하는 등불 「방학어화(放鶴漁火)」

  4경 밤섬 주변에 쌓인 깨끗한 백사장 「율도명사(栗島明沙)」

  5경 농바위 부근의 인가에서 저녁 짓는 연기 「농암모연(籠岩暮煙)」

  6경 와우산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목동들의 피리 소리 「우산목적(牛山牧笛)」

  7경 양화나루 하늘에 붉게 물든 석양과 노을 「양진낙조(楊津落照)」

  8경 관악산에 맑게 갠 날 어른거리며 오르는 아지랑이 「관악청람(冠岳晴嵐)」

 

 

  마포구 '망원동'의 동명은 이 '망원정'에서 유래합니다.

  망원정은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이 1424년에 지은 별장입니다.

  별장이 지어진 다음 해인 1425년은 올해처럼 극심한 가뭄이 들었답니다.

  세종대왕은 친히 농가 형편을 살피려 효령대군이 기거하던 마포로 거동해 망원정에 올랐는데,

  마침 한줄기 비가 시원하게 내렸답니다.

 

 

  단비가 들판을 흡족히 적시는 것을 보고 기뻐한 세종이 정자의 이름을 '희우정(喜雨亭)',

  '비를 만나니 몹시 기쁘다'로 지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예전의 망원정은 1925년 대 홍수로 유실되었다가

  1989년 서울시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서울시 기념물 제9호 문화재)

 

  지금도 망원정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겉에 걸려 있는 현판은 '망원정'

  안쪽에 걸려 있는 현판은 '희우정'이라 쓰여 있습니다.

 

  마포 강변의 수려한 경치 때문에

  예로부터 권세가들의 정자나 별장이 30여 채나 위치했다고 합니다.

 

 

  공덕리금표(孔德理禁標)

  '공덕리! 이곳으로 지나다니지 마시오!'

 

  이게 무슨 소리??

 

  마포구 공덕오거리 대형빌딩 앞에 서 있는 작은 돌 비석에 쓰여 있는 말입니다.

  누가 이런 돌을 이곳에 세워놨을까요?

  이 돌을 세운 사람은 바로 흥선대원군인데요,

 

 

  이곳은 고종의 아버지며, 당시 천하를 호령했던 흥선대원군의 인생 말년을 보내던 별장

  '아소정(我笑亭)'이 있던 곳입니다.

 

  며느리인 명성황후가 청나라 군대에 의존해 세력을 얻고,

  아끼던 손자마저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떠나자

  이에 격분한 흥선대원군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이곳에 별장을 짓고 은둔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은둔생활의 징표가 바로 이 돌 '공덕리금표'입니다.

  '공덕리금표'는 아소정에서 직선거리로 100m 전방에 세워진 비석입니다.

  아소정(我笑亭)은 99칸의 저택이었다고 합니다만,

  현재는 철거되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일생이 너무나 덧없음을 깨달은 흥선대원군은 '스스로 조소한다(비웃는다)'는 뜻에서

  집의 이름을 '아소정(我笑亭)'이라 하였답니다.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절두산(切頭山)' 이곳은 원래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잠두봉(蠶頭峰)'이라 불렀던 곳입니다.

 

  예로부터 풍류객들이 산수를 즐기고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유람선을 띄워

  한강의 경치를 즐겼던 곳이기도 합니다.

 

 

  잠두봉이 절두산으로 불리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1866년 병인년에 흥선대원군이 여러 이유로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했고,

  이에 격분한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통해 이곳 한강까지 군함을 몰고 들어옵니다.

 

  당시 조선은 아무 반격도 하지 못했는데,

  이에 격분한 흥선대원군이 이곳 잠두봉에 형장을 설치해

  천주교인 1만여 명의 머리를 잘라 한강에 던졌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병인박해'와 '병인양요'입니다.

  그 뒤로 사람들은 이곳을 절두산이라 불렀고, 현재는 천주교의 유명한 성지가 됐습니다.

 

 

  절두산 옆 양화진에는 외국인 묘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의사이면서 개신교 선교사였던 헤론(John w. Heron 1856-1890)은

  1985년 한국에 들어와, 고종의 시의(侍醫)로 제중원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나 헤론은 한국에 온 지 5년 만에 이질병에 걸려 3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고종의 건강을 돌보던 의사 헤론이 돌연 사망하게 되자,

  가족들은 정동 미국 공사관 내에 임시로 묘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외국인의 시신이 사대문 안에 묻힌 것을 알게 된 백성들이 크게 반대하자,

  미국, 영국 등 5개국 공사가 모여 당시 정부에 양화진을 외국인 묘지로 쓸 수 있도록 청원했고,

  고종이 이를 허락했다고 합니다.

 

  당시 고종은 자기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저지른 천주교도들에 대한 죄과를 속죄받는다는 뜻에서

  이 같은 결정을 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제중원 의사 헤론을 비롯해 현재 417명의 유해가 잠들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연세대학을 세운 언더우드 부부와 그의 가족,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 이화학당을 설립한 메리 스크랜턴,

  숭실대학 설립자 윌리엄 베어드,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외교활동을 펼친 호머,

  한국에 결핵 요양원을 처음 세운 셔우드 홀 등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의 의료와 교육발전을 위해 노력한 그들의 영령 앞에 잠시 고개를 숙입니다.

 

 

  마포가 포구였다는 흔적은 현재 사용 중인 동명은 곳곳에 있는데요.

  염전에서 배로 싣고 온 소금을 내리고 커다란 소금 창고가 있었던 곳은

  예전 '소금골'로 불리던 마포구 염리동이고, 대흥동의 최근 지명이 '동막'이었는데

  이는 소금을 담았던 옹기를 굽는 옹막(甕幕)에서 유래했습니다.

 

 

 

  마포에는 토정로가 있습니다.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 선생은 생애 대부분을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土亭)'이라는 호가 붙었습니다.

  현재는 이곳이 토정이 살았던 곳임을 알리는 표지석만 있을 뿐입니다.

 

  토정비결이란 책이 토정 이지함 선생이 쓴 책인지,

  아니면 이지함 선생의 생각과 사상을 후대에 누군가 정리한 것인지에 대한 의견대립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포천과 아산의 현감을 지낸 관리로서

  궁핍한 백성들의 생활을 가슴 아프게 여겨 선정을 베풀고,

  그 구제 대책을 왕에게 상소했던 이지함 선생의 선한 마음은

  후대의 길이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마포경찰서를 찾았습니다.

  평생 백성이 불편한 것은 없는지, 굶주린 사람은 없는지를 살펴 살아온

  이지함 선생의 정기가 서려 있는 동네의 경찰서에는 어떤 경찰관들이 있을까요?

 

 

  우리 동네 숨어있는 슈퍼맨을 만나다.

 

  먼저 소개할 경찰관은 용강지구대 김치열 순경입니다.

  184cm의 건장한 체구의 김 순경은 올해 37세로

  경찰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1년이 조금 넘은 신임경찰관입니다.

 

  마포대교를 관할하는 용강지구대 근무하면서

  지난 1년간 자살기도자를 70여 명이나 살린 경찰관이기도 합니다.

 

 

  마포대교는 '투신자살 시도가 가장 많은 다리'라는 오명을 안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강 다리에서 투신한 사람 396명 중 184명(46.5%)이 이곳에서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김 순경은 하루에 3명의 자살 시도자를 구한 경험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112신고 혹은 생명의 전화로 누군가 자살을 하려 한다"는 신고를 접할 때면

  아직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손에 진한 땀이 난다고 합니다.

 

 

  너무 힘들어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을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질 그날까지

  마포경찰서 용감지구대,

  아니 용감하고 강한, 용강지구대

  김치열 순경은 오늘도 마포대교로 달려갑니다!

 

 

  두 번째 만난 경찰관은 청문감사관실에 근무하는 송무영 경위입니다.

  얼굴색이 유난히 좋아 보이는 송 경위는 지난 20년간 헌혈을 무려 101번 한 경찰관입니다.

 

  헌혈을 시작하게 된 동기에 관해 물었더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만성신부전증으로 혈액투석을 하셨는데,

  혈액은 누군가의 헌혈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어디엔가 있을지 모를 또 다른 누군가의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헌혈할 계획이랍니다.

 

  송 경위의 말이 우리나라에서 100번 이상 헌혈을 하신 분이 8천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인도 그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네요.

 

  두 달에 한 번 정도 헌혈을 하는 송 경위는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헌혈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제가 세상을 만든 조물주(?)라면

  송 경위에게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싶습니다.

 

  마포경찰서 송무영 경위와 김치열 순경!

  두 경찰관의 배려와 봉사의 마음이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음 방문할 경찰서는 '영등포 경찰서'입니다.

 

 

 

취재 : 홍보담당관실 이주일 경위

촬영 : 홍보담당관실 박세원 경사

 

 

 

우리 동네 경찰서 - 동작경찰서

2015. 6. 29. 09:16

 

  「우리동네 경찰서」(이하 우리서)가 한 호 쉬었습니다.

  매호 우측 상단에 붙박이처럼 있던 '우리서'가 보이지 않자,

  수많은 독자들의 서울경찰청을 항의(?) 방문하고,

  이메일과 댓글을 통해 '다시 기사를 올려라!'는

  열화와 같은 요구가 있을 줄 알았으나... ....

 

  현실은,

  아무도 그런 기사가 있었던 줄도 모르고

  심지어 '우리서'가 없었던 지난 호가 유독 더 재미있었다는 의견도.... ㅠㅠ

 

  이러다 하반기 인사 때 홍보실에 쫓겨날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금 경찰서를 방문합니다. ^^

  (여러분의 댓글이 기사를 쓰는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각설하고,

  오늘 방문할 '우리서'는 「동작 경찰서」입니다.

 

 

  '동작 경찰서'는 '노량진 경찰서'라는 이름으로 1966년에 개서했습니다.

  서울 도심 사대문 안의 경찰서가 1945년 경찰 창설과 함께 개서했던 것과는 비교되지요.

  서울에 있는 경찰서의 개서 년도를 살펴보면,

  서울의 행정구역이 근대화를 거치면서 어떻게 확장됐는지를 잘 알 수 있는데요.

 

  동작 경찰서가 있던 이곳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 동작리였습니다.

  이후, 1914년 경기도 시흥군 북면에 속하였고,

  1949년 8월에는 서울이 커지면서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하게 되었다가

  1973년 관악구로, 1980년 비로소 지금의 동작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6년 이곳 경찰서도 '노량진 경찰서'에서 '동작 경찰서'로 개명했습니다.

 

  한강 이남에 있는 동작구는 예로부터 나루터가 발달했는데요.

  지명에 '진(津)'이 들어가 곳은 나루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의 광진(廣津), 송파진(松坡津), 양화진(楊花津),

  노량진(鷺梁津), 동작진(銅雀津)이 바로 한강의 대표 나루터입니다.

 

 

  이곳은 동작대교 아래 '동재기 나루터'가 있었던 곳입니다.

  노량진에서 오면 흑석동 고개를 넘어와 만날 수 있는 곳인데요.

 

  주변에 검은 돌이 많아 '흑석동'이라고 불리던 곳을 지나면

  '동(銅)' 색깔을 띤 구릿빛 돌이 많았기에 사람들은 이곳을 동재기 나루터라고 불렀고,

  지금의 '동작'이라는 말의 어원이 됐습니다.

 

  동재기 나루터는 서울에서 과천 · 수원 · 평택을 거쳐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서울로 들어오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너던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우리서' 동작 경찰서를 선정한 가장 큰 이유.

  바로 16만여 명의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이하 현충원)이 위치하고 있어서입니다.

 

 

  현충원은 1955년 7월 15일 이곳 동작동에 142만㎡(43만여 평)의 대지에 설립되었습니다.

  민족적 수난인 한국전쟁으로 전몰한 국군 장병들이 이름없는 넋이 되어 전국에 산재해 있던 것을

  한 곳에 안장하기 위하여 '국군묘지'라는 이름으로 설치되었습니다.

 

  처음 국군묘지의 안치 대상은 전몰한 군인에 한하였으나,

  1965년 '국립묘지'로 그 격을 높이고,

  안장 대상자 범위도 군인, 경찰 외에 국가에 공을 세운 민간인에까지 확대하였습니다.

  그리고 1996년 6월 1일 '국립묘지'에서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이곳을 좀 더 둘러볼까요?

 

 

  채명신 장군의 묘역입니다.

  1926년 황해도 곡산에서 항일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난 채 장군은

  1947년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5기로 입학해, 한국 전쟁에는 소위로 참전했습니다.

 

  1965년 베트남 전쟁에는 맹호 부대장으로 4년 동안 참전했는데요.

  당시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지시하는 등

  덕장으로 존경을 받았던 분입니다.

 

  지난 2013년 고인이 된 채 장군은 '나를 파월 장병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이곳 현충원 장군 묘역이 아닌 일반 병사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죽어서도 전쟁 동료들 속에 있는 채명신 장군의 비석을 보는 것만으로도

  덕장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경찰충혼탑입니다.

  우연히 저희가 방문한 날. 경감급 기본 교육생들이 현충원 방문을 하고 있었는데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 바친 선배경찰관들의 묘역에 머리 숙이는 후배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제가 아는 이름도 있네요.

  2013년 신호위반을 하던 오토바이에 치여 순직한 박경균 경감의 묘역입니다.

  한 시대를 한 하늘 아래서 함께 근무한 동료 경찰의 비석 앞에 선다는 것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현충원을 나와 사육신 공원으로 향합니다.

 

  사육신에 대해서 아시나요?

  세조 2년(1456)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처형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삼문 · 박팽년 · 하위지 · 이개 · 유성원 · 유응부 등 여섯 분을 가리킵니다.

 

 

  1681년 사육신이 처형당하고 200여 년이 지나서 숙종이 이곳에 서원을 세워 이들의 충절을 기원했으며,

  이후 정조(1782)가 이곳에 신도비를 세워 이들을 추모했다고 합니다.

 

  1978년 서울시는 이곳 묘역을 9,370평으로 확장하고

  의절사, 불이문, 홍살문, 비각을 새로 지어 충효 사상의 실천도장으로 정화하고자 했습니다.

 

  본래 이 묘역에는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그 후 하위지, 류성원, 김문기의 허묘(墟墓)도 함께 추봉하였습니다.

 

 

  불이문입니다.

  '忠臣不事二君(충신불사이군)'

  '충성된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라는 고사에서 따온 모양입니다.

 

  이처럼 동작구에는 곳곳에 나라에 대한 충(忠)과 관련된 흔적들이 많습니다.

 

 

  이번에는 효(孝)에 대한 흔적들을 찾아볼까요?

 

  '화성능행도'는 정조가 1795년 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소 현륭원(顯隆園)에 행차한 뒤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던 일을 그린 것인데요,

  이후 정조는 자주 수원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의 흔적을 이곳 동작구 곳곳에서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장승배기'라고 들어보셨죠?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에 있는 장승들인데요.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참배 길을 떠난 정조는 지금의 이 자리에서 항상 쉬었답니다.

  지금은 차량이 다니고 도심 번화가이지만, 옛날에 이 일대는 인가가 없는 울창한 나무숲이었답니다.

 

  어두운 저녁이면 오싹한 기운까지 돌자 정조는 "이곳에 장승을 만들어 세워라. 하나는 장사 모양을 한 남자 장승을 세워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또 하나는 여자 장승을 세워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으로 하여라."하고 명했답니다.

 

  이때부터 이곳은 장승배기란 지명이 붙게 되었고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가는 길에 이 장승 앞에 어가를 멈추고 편안하게 쉬었다고 하네요. ^^

 

 

  한강대교가 보이는 이곳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도 정조(15년, 1791)가 지은 행궁입니다.

 

  이곳 행궁은 지금의 휴게소 같은 곳입니다.

  한강에 다리가 없던 시절 왕의 행차가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배다리를 설치했는데요.

  다리가 설치되는 동안 왕 일행이 쉬었던 곳입니다.

 

  용양봉저정에서 한강대교가 바로 보이는 것으로 보아

  왕 일행이 한강대교가 놓인 곳을 통해 강을 건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동작경찰서 관내에는 의미 있는 다리들이 몇 개 있는데요.

  용양봉저정에서 바로 보이는 이곳 '한강대교'는 1900년 한강을 남북으로 잇는 최초의 다리입니다.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1969년 다시 복구된 역사가 있는 다리입니다.

 

 

  한강대교 옆 동작대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과 차량이 함께 다닐 수 있는 병용다리입니다.

 

 

  노량진역입니다.

  이곳 노량진역에는 철도의 시발지를 알리는 돌비석이 있는데요.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철길 중간에 있어 노량진 역의 협조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1897년 3월 22일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가 착공되었습니다.

  최초 건설을 했던 미국인 제임스 모스는 공사자금이 부족하자 이를 일본인 회사에 팔아넘겼고,

  1899년 4월 일본에 의한 두 번째 기공식이 열렸으며,

  우여곡절 끝에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역에서 인천역 간 33.2Km의 철도가 놓임으로써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노량진에는 수산시장과 학원가가 있는데요.

  노량진 학원가를 설명한 글은 서울경찰 뉴스레터 41호에 있으니 참고해 보세요. ^^

 

  노량진역 건너편 동작경찰서에 도착했습니다.

 

 

  노량진 경찰서 민원실에는 올해 12월 정년퇴직을 앞둔 인상 좋은 경찰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바로 교통관리계장 김우찬 경위입니다.

  올해로 경찰근무 33년째인 김우찬 경우는 교통업무의 달인인데요.

  정년을 6개월 앞둔 지금도, 유치원 · 초 · 중 · 고등학교는 물론

  경로당까지 찾아가 교통안전교육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Q. 유치원부터 경로당의 어르신까지 교통안전교육을 하는데 강의에 대한 본인만의 비법이 있나요?

 

  A. 있지요, 세대별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릅니다. 천편일률적인 강의를 한다면 아무도 공감을 안 합니다.

 

 

  김 경위는 성공적인 강의를 위해 마술을 배우기도 하고,

  최신 유머와 교육 관련된 동영상 자료도 평소에 수집하는 것이 취미라고 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는 이유는 학원가가 밀집한 동작경찰서와 고시생들로 북적이는 관악경찰서에서 30년을 근무했기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수험생의 열정과 심리를 잘 알기 때문이랍니다.

 

 

  "네가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면 아주 좋은 행운이 온다."

 

  방범순찰대 의경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정광영 경사는 독특한 취미가 있는 경찰관인데요.

  바로 손금과 타로를 연구하고 있는 경찰관입니다.

 

 

  동작경찰서 수사지원팀에 근무하고 있는 정광영 경사는

  10년 전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가 궁금해 손금과 타로를 공부하게 됐지만,

  행운이란 것은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기보다는

  노력하는 자가 만날 확률이 높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요즘은 점심시간이나 일과시간이 끝난 후 찾아오는 동료나 의경들에게 상담해 주고 있답니다.

 

  정 경사의 꿈은 경찰청 과학수사과에서 범죄자들의 유형별 손금에 관한 연구를 해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지문뿐 아니라 손금도 수사기법으로 활용하는 외국 사례가 있는 만큼,

  프로파일링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포춘 폴리스 정광영 경사의 말이

  지문의 경우 "만인부동(萬人不同), 종생불변(終生不變)"하지만

  종생불변한 운명은 없다고 합니다.

 

  자신의 노력이 자신의 운명도 바꿀 수 있다고 하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기회가 올 때 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운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손금이나 지문이 한 사람의 살아온 인생의 발자취라면

  지금 이 시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서울경찰의 노력이야말로

  서울시민의 행복이고 안전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서울경찰 파이팅!"

 

  다음 방문할 우리서는

  '마포 경찰서'입니다.

 

 

 

취재 : 홍보담당관실 이주일 경위

촬영 : 홍보담당관실 박세원 경사

 

 

 

우리 동네 경찰서 - 동대문경찰서

2015. 6. 1. 10:01

 

 

  흥인지문(興仁之門)!

  사람들은 「동대문」이라고 부르는 서울 사대문 동쪽에 있는 문의 이름입니다.

 

  그동안 우리 동네 경찰서 편에서 사대문의 이야기를 모두 다뤘는데요.

  「동대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눈치채셨겠지만,

  오늘 방문할 경찰서가 동대문 경찰서이기 때문입니다. ^^

 

  서대문 경찰서 관내에는 서대문이 없는 슬픈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동대문 경찰서에 관내에는 동대문이 있다? 없다?

  정답은 없습니다.

 

  이유는 현재 동대문의 행정구역이 종로구 종로 288번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대문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번 혜화경찰서 편에서 다뤘습니다.

  아무튼, 오늘 동대문구를 관할하는 동대문 경찰서를 방문합니다.

 

 

  위에 교통 정리하는 경찰관이 보이시나요?

  1957년 10월 서울 어느 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관 모습인데요.

  전차가 지나가는 것으로 봐 종로나 동대문의 어디쯤으로 추측해봅니다. ^^

 

 

  동대문 경찰서는 1957년 「청량리 경찰서」라는 이름으로 개서했고,

  2006년 3월 관할 조정을 통해 동대문경찰서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동대문구는 서울 동부의 중심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교통 수단인 전차의 출발역이 바로 청량리역입니다.

 

  지금부터 동대문 경찰서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량리역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청량리역을 관할하는 청량리역 파출소를 찾았는데요.

  청량리역 파출소 건물도 무려 1957년부터 사용한 건물이라고 하네요.

 

 

  청량리역 파출소 정성희 순경입니다.

  경찰관으로 임용된 지 1년 된 신임경찰관인데요,

  정 순경은 관내 '문안순찰'을 아주 잘하는 싹싹한 경찰관이라고 합니다.

 

 

  문안(問安)순찰이란?

  집안 어른에게 안부 인사를 하는 것처럼,

  경찰이 순찰하며 주민들에게 일상적인 안부를 묻고

  지역의 애로사항을 경청하는 치안서비스입니다.

 

 

  정 순경이 말하는 문안순찰의 핵심은 '관계'랍니다.

  시민과 경찰과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이웃'이 되고, '가족'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거죠.

  정 순경은 관내에 스무 명 정도의 어머니(?)가 계시고,

  서른 명 넘는 언니와 동생이 있다고 하니, 관계를 잘 맺는 경찰관 맞지요? ^^

 

 

  정 순경이 청량리역에 숨어 있는 문화재가 있다고 저희에게 소개해 주었는데요.

  바로 「청량리역 검수차고」입니다.

 

  이 낡은 건물이 등록문화재 269호인데요

  1938년에 건립되어 청량리역의 전차대를 거쳐 기관차를 수리 및 보관하는 차고로 사용된 건물이랍니다.

  우리나라 철도건축사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철도차량 정비시설로 철도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랍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경찰서 앞에서 설렁탕을 한 그릇 먹었는데요.

  설렁탕이 유래가 되는 「선농단」이 동대문에 있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선농단」은 조선시대 왕이 풍년을 기원하며 농사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제를 마친 왕은 친히 밭을 갊으로써 백성들에게 농사일이 소중함을 알렸다고 합니다.

 

 

  선농제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 3년(1909)을 마지막으로 일제강점기에 폐지되었으며

  사방 4m의 돌단만이 남아 있던 것을 후대에 복원했다 합니다.

 

 

  왕이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일반 백성들과 함께 먹은 음식을 '선농탕'이라 불렀고

  이 음식이 지금의 '설렁탕'이라는 설명이 「선농단 역사문화관」에 있었는데요.

  설렁탕에 관한 다른 학설도 있으니 어느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

 

  「선농단 역사문화관」은 지난 4월에 개장을 했고 무료라고 하니 한 번쯤 방문해 보세요.

 

 

  선농단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제원 터」라는 표지석이 있는데요.

  「보제원」은 조선시대 여행자에 대한 무료 숙박을 제공하고

  의지할 곳 없는 병자에 대한 치료를 담당하던 구휼기관이었답니다.

 

  조선시대에는 보제원과 비슷한 역할과 기능을 가졌던 기관으로

  서쪽의 홍제원, 남쪽의 이태원, 전관원 등이 있었답니다.

  조선시대 이런 훌륭한 복지단체가 있었다고 하니 대단하네요.

 

 

 

  경동시장에 위치한 서울약령시입니다.

  국내 한약재 거래량의 약 70%를 점유하는 한약재 전문시장으로,

  1960년대부터 한약재를 취급하는 상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청량리역을 이용해 모여 들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고 합니다.

 

  경동시장 한약거리(상가)로 불리다가 1995년 서울시로부터 「서울약령시」로 지정 됐습니다.

  거리를 가득 메운 한약 냄새 때문에 지나다니기만 해도 건강해 진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랍니다. ^^

 

  다양한 한약재가 시중 시세보다 20~40% 저렴한 가격으로 거래된다고 하니,

  봄철 건강을 위해 한 번 들려보심도 좋을 듯싶습니다. ^^

 

 

  할머니와 손자의 무덤

  「영휘원」은 조선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의 무덤이고,

  「숭인원」은 엄씨가 낳은 아들 영친왕의 큰아들 이진의 무덤입니다.

 

  순헌귀비 엄씨는 8살에 입궁해 명성황후의 시위상궁을 하다

  1897년 고종황제와의 사이에서 영친왕을 낳아 귀인이 된 후

  순헌황귀비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 후 여성들의 신교육을 위해 1906년 진명여학교를 설립하였고,

  명신여학교(현 숙명여자대학교)가 재정난을 겪자 200만평 땅을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숭인원에 안장된 이진은 1921년 8월 일본에서 태어나 부모(영친왕, 이방자여사)와 일시 귀국하였으나,

  이듬해 5월, 생후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의 풍습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장례를 치룰 수가 없었으나,

  순종황제가 이진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어른의 장례와 같게 치르도록 하고 원호를 숭인(崇仁)으로 내리고,

  할머니인 순헌귀비 엄씨의 영휘원 남측에 모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곳 영휘원과 숭인원을 「홍릉(洪陵)」이라고 알고 계신데,

  「홍릉」의 주인인 명성황후가 처음에는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가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로 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휘원 옆 세종대왕기념관입니다.

  조선 4대 임금인 세종의 성덕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설립한 이곳은

  1973년 한글날인 10월 9일 개관했습니다.

 

  이곳을 방문해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의 묘인 역릉은 지금의 서울 강남 헌릉 부근에 있었는데

  풍수학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예종(1년)때인 1469년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으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왕의 묘를 옮기면서 당시 운송수단이 마땅치 않아 석물을 함께 옮기자고 하였으나

  왕명에 의하여 그 자리에 묻었답니다.

  1973년에 석물들을 발굴하여 청량리 영휘원(永徽園) 북쪽에 세운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캠퍼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경희대가 위치한 회기동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 씨의 묘인 「회묘(懷墓)」가 있던 곳에서 유래합니다.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회릉으로 추숭하였으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회묘로 강봉되고 신주는 묘 곁에 묻혔으며,

  석물(石物)은 봉분과 함께 남아 있다가 서삼릉 내의 묘역으로 이장되었습니다.

 

 

  배봉산 근린공원입니다.

  이 나지막한 산의 이름에는 유래가 있는데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가 아버지에 의해 죽음을 당한 뒤

  배봉산 기슭에 수은묘라는 이름으로 묻히게 됩니다.

 

  왕세자의 죽음을 슬퍼하던 백성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예를 다해 절을 했다고 하여

  배봉산(拜峰山)이라 부르게 됐답니다.

  이후 수은묘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에 의해 수원의 융릉으로 이장됩니다.

 

 

  이 밖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휘경동은 「휘경원(徽慶園)」이 있었던 곳에서 유래하는데,

  「휘경원」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의 후궁이자 제23대 임금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 씨의 묘입니다.

  휘경원 역시 지금의 휘경중학교 자리에 있다가 철종 임금 때 경기도 남양주로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동대문 경찰서 관내는 옛 왕과 왕족들의 묘지가 많은 곳이네요.

 

 

  장안동 고미술 거리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예스러움을 찾아 인사동을 찾지만

  '진짜 옛 것'에 관심이 있다면 답십리 고미술 거리를 추천합니다.

 

  1980년대 청계천, 아현동, 충무로, 황학동 등지에서 모여든 고미술상 140여 곳이

  답십리에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보고, 묻고, 만지고, 게다가 구매까지 할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

  '답십리 고미술상가 거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보시죠! ^^

 

 

  지금까지 동대문 관내 명물들을 안내해 드렸다면,

  이제 동대문 경찰서 경찰관 중 명물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경찰서 홍보담당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경찰관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동대문 경찰서 최고 인기 경찰관은 바로 지능범죄수사팀 현병의(54)경위입니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현 경위는 헌병대 직업군인으로 8년간 근무하다 늦은 나이에 경찰에 들어왔습니다.

  경찰에 들어와 경제팀 조사업무를 배운 것도 만45세 때인 2007년입니다.

 

  그렇지만 매사 열심히 근무한 덕에 지금은 경제 5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특별한 경력이나 이력을 찾았던 제가 현 경위의 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수사부서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것도 아니고, 높은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늘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현 경위는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는 인품에 가진 경찰관이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근무할 수 있었던 건 군 생활 할 때 제가 형님처럼 생각했던 김성호 경장의 덕입니다."

 

  헌병으로 경찰과 함께 한강 초소근무를 할 당시 김성호 경장은 지금은 퇴직했지만

  얼마 전까지 동대문 경찰서에서 경무과장으로 근무했던 김성호 경정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자신을 추천해 준 선배경찰관처럼

  자신도 늘 후배를 챙겨주고 싶다는 현병의 경위에게서 사람 따뜻한 경찰관의 배려심을 느낍니다.

  서울경찰이 추진하는 선선선 中 하나인 '배려양보선'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다음은 「동작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취재 : 홍보담당관실 이주일 경위
촬영 : 홍보담당관실 박세원 경사

 

 

 

 

우리 동네 경찰서 - 성북경찰서

2015. 5. 18. 09:17

 

  어느 날 호랑이 사냥을 하던 장수가 목이 말라 말을 멈춥니다.

  우물가에 도착한 장수는 한 여인에게 물 한 바가지를 청하자

  여인은 버들잎을 따 물 위에 띄워 장수에게 건넵니다.

  여인의 정성에 감동한 장수는 그녀에게 청혼하고 둘은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고전이나 영화의 한 장면에서 보았을 법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호랑이를 사냥하던 장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이고,

  우물가의 여인은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입니다. ^^

  <신덕왕후>가 잠들이 있는 무덤이 바로 '정릉(貞陵)'입니다.

 

  '정릉'을 품고 있는 경찰서

  오늘 우리가 방문할 우리 동네 경찰서는 '성북 경찰서'입니다.

 

 

  성북구 보문로에 위치한 성북경찰서는

  1945년 경찰 창설과 함께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의 신청사는 2008년 신축한 청사입니다.

  성북구는 도심과 서울 동북부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고,

  북한산 국립공원과 고려대학교, 국민대학교 등 8개의 대학이 있으며,

  구 면적의 70%가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많은 대사관저가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성북경찰서 홍보담당인 김소미 순경과 함께 '정릉'을 찾았습니다.

  정릉은 주택가 중앙에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정릉'을 입력하고 가면 골목길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런 곳에 왕비의 능이 있을까?" 싶을 때쯤 정릉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릉은 앞서 말했듯이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묘지입니다.

  처음부터 정릉이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닙니다.

  태조 이성계는 사랑했던 여인의 묘(신덕왕후 강씨)를

  궁궐과 가까운 지금의 정동 영국대사관 자리에 잡았습니다.

  (정동의 동명도 '정릉'이 있었던 곳에서 유래합니다)

 

 

  왕자의 난 이후 태종(이방원)은 자신에게는 계모였던 신덕왕후를

  후궁의 지위로 격하시키고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애지중지하던 정릉도

  서울 정동지역에서 도성 밖 양주, 현재의 성북구로 정릉동으로 옮겼습니다.

  이유는 아버지 태조가 '신덕왕후' 소생인 여덟째 왕자 '방석(芳碩)'을

  세자로 정한 것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태종은 능을 옮긴 뒤에도 정릉의 정자각(丁字閣)을 허물고 석물을 모두 묻어 없애고,

  홍수로 광교에 있던 흙다리가 무너지자 정릉의 석물을 실어다 돌다리를 만들게 해

  온 백성이 이것을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후 정릉은 돌보는 이 없이 270년간을 지내다가

  1669년 조선 18대 왕인 현종에 의해 복원되었습니다.

 

  정릉이 이런 아픈 사연이 있는 줄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내게도 사랑이...신덕왕후를 찾아 온 님이여...내게도 오소서! ^^ (성북경찰서 김소미 순경)

 

  '우리동네 경찰서'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의 4대문과 4소문 이야기를 했는데요.

  오늘이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서울의 북대문에 해당하는 문이 바로 '숙정문(肅靖門)'입니다.

 

 

  숙정문은 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숙정문 주위에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소나무들이 많습니다.

  도성 북문이지만, 서울성곽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있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답니다.

 

  숙정문의 생생한 사진을 여러분께 보여 드리기 위해

  와룡공원에서 올라가 봤는데요,

  지도 상으로 멀어 보이지 않아 구두를 신고 산책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40분 등반했습니다. ㅠㅠ

 

숙정문 가는 길 성곽에서 본 서울시내 전경

 

  숙정문을 보기 위해서는 평일 4시 이전에 도착해서 숙정문 입구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안내 표찰을 패용해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참고하세요^^

  도성 밖 숙정문 넘어가 성북동입니다.

  성북동에는 정말 볼 곳이 많은데요, 지금부터 여러분께 성북동의 숨은 비경을 소개하겠습니다.

 

 

  숙정문을 통해 내려오면 처음 만나는 곳이 삼청각(三淸閣)입니다.

  과거, 삼청각(三淸閣)은 고위정치인의 회동과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 이용하였던 곳으로, 요정정치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 5월 서울특별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문화시설로 지정했으며,

  리모델링 공사를 끝낸 후

  2001년 10월 새로운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한국 가구박물관입니다.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꼭 한번 소개해 주고 싶은 공간입니다.

  최근 각국 정상 등 해외 VIP의 오찬 장소로 유명세를 얻은 곳이기도 합니다.

  2011년에는 미국 CNN이 꼽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방문했을 때는 행사가 진행 중어서 들어갈 수 없었지만,

  사전 예약을 통해 방문해 보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그런데 입장료가 좀 비싸네요! ^^)

 

 

  성북동 중턱에 위치한 길상사입니다.

  예전에 이곳은 '삼청각'과 마찬가지로 '대원각'이라는 이름의 대중식당이었는데,

  '무소유'를 저술하신 법정스님의 글에 감동을 받은 '대원각' 주인이

  1995년 이곳의 땅과 건물을 송광사에 시주했다고 합니다.

  이후, 1997년 '길상사'라는 사찰로 이름을 바꾼 이곳은

  법정스님이 2010년 타계할 때까지 머물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시끌벅적했던 대중식당이 이렇게 고요한 도심 속 공간으로 거듭났다는 거

  신기하지 않나요? ^^

 

 

  성북동에는 세계 각국의 대사관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틈에 근대 한국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집들이 숨어 있는데요.

  사진의 집은 <최순우 옛집>입니다.

  전 국립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로

  한국 미술사에 큰 자취를 남긴 최순우(1916~1984년) 선생의 개인 주택입니다.

 

  2002년 성북동 한옥의 양옥화로 허물어질 위기에 처한 것을

  시민운동단체인 '한국내셔널 트러스트'가 매입해

  2년간의 복원절차를 걸쳐 지금의 모습을 갖춰

  '시민문화 유산 제1호'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최순우 옛집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이종석 별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00년대 마포에서 젓갈 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석이 지은 별장으로

  20세기 별장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옥입니다.

  1985년, 덕수교회에서 인수해 사용하고 있으므로 방문 전 미리 교회에 요청해야 한다고 하네요.

  저희도 이종석 별장의 대문만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심우장(尋牛莊)은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인생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입니다.

  이 집은 독특하게 북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남쪽에 있는 조선총독부를 쳐다보지 않으려는 한용운 선생의 뜻에서랍니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랍니다.

  심우장의 현판은 한용운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 선생이 쓴 것입니다.

 

 

  성락원(城樂園)은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으로 처음 지어졌고

  조선말기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조선 후기 정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성북동에 이런 자연이 남아 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저희가 방문했을 때는 송석정이 수리 중이었으나, 그 아름다움은 감출 수 없어 보입니다.

 

  성락원에는 200∼300년 되는 엄나무를 비롯하여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안뜰과 성락원 바깥을 가려주는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성락원은 조선시대 서울 도성 안에 위치한 몇 안 되는 정원중 하나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사적 제378호. 면적 1만 4,407㎡)

 

출처 : 성북구청 홈페이지

 

  지금까지 설명한 볼거리들이 모두 성북동에 위치합니다.

  성북동은 칼국수와 돈가스가 유명한 곳이니,

  주말 가족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신 뒤 걸어 다녀 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모든 것이 걸어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미아리 고개입니다.

  성북구 돈암동과 길음동을 잇는 고갯길로,

  한국전쟁 당시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기 때문에

  북한군과 대한민국 군인 사이의 교전이 벌어진 곳이며,

  북한군이 퇴각할 때 많은 남한 포로를 데리고 이 고개를 넘어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자동차로 1분이면 오를 수 있는 이 고갯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고갯길 위에서 북으로 간 가족을 기다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기에

  이 고개를 단장(창자를 끊어내는 듯한 고통)의 미아리 고개라 불렀답니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미아리 고갯길에는 점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1960년대에서부터 자리 잡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는

  100여 개 이상의 점집들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20여 곳만 남아 있습니다.

 

 

  미아리 고개를 넘어 매일 성북경찰서에 출근하는 경찰관이 있습니다.

  성북경찰서 정보보안과 외사계 근무하는 김 루 경장입니다.

 

 

  김 루 경장은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난 중국 국적의 한국인입니다.

  중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지난 2000년 부모님과 함께 한국을 찾았습니다.

  한국어 학당을 통해 한국말을 배운 김 경장은 서울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2012년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한민국 경찰(외사특채)이 됐습니다.

 

 

  Q. 현재,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요?

 

  A. 성북경찰서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관련 경찰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성북경찰서 관내에는 8개 대학에 2천 명이 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유학생들을 상대로 범죄예방 교실을 운영하기도 하고 다문화 센터에서 경찰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김 루 경장은 경찰청 등에서 주관하는 각종 국제 행사에도

  중국어 통역으로 선발돼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중국어보다 한국어가 더 편하하다는 김 루 경찰!

  (심지어 꿈도 한국어로 꾼다고 하네요^^)

 

  앞으로도 더 멋진 활약을 기대합니다!!

 

 

  성북경찰서에 대포수사(?)의 달인이 있다고 해서 만났습니다.

  수사과 지능팀에 근무하는 구기동 경위(52)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포는 전쟁에 무기로 쓰이는 대포가 아닌 건 아시죠? ^^

  '허풍', '거짓'이라는 의미의 '대포'(은어)를 말하며,

  자신이 직접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대포통장, 대포폰, 대포차 등을 일컫습니다.

  구 경위는 지난해 10월 노숙자 명의로 서민들의 전세자금을 빼돌린 일당 42명을 검거했는데요,

  이들이 가짜 서류를 제출해 착복한 서민주택 전세자금이 무려 75억 원에 달한답니다.

  이런 범죄 뒤에는 노숙자와 대포통장이 꼭 등장한다고 합니다.

 

 

  구 경위는 현재 대포차량에 관한 기획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요.

  대포차량 역시 노숙자 명의를 도용해 법인을 설립하고,

  법인이 사들인 차량을 고가에 파는 수법을 구사합니다.

  이런 대포차량의 수요자 대부분이 범죄자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합니다.

  곧 구 경위에 의해 검거될 대포차들의 어마어마한 숫자를 기대해 봅니다.

 

  성북 경찰서 관내에는 재미있는 구전설화가 전해 내려오는데요.

  옛날 안암동에 순흥 안씨(安氏) 성을 가진 '안감(安甘)'이라는 채소장수가 살고 있었답니다.

  하루는 이 사람이 채소를 다 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점잖은 노인이 술값 때문에 주모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인이 술을 마신 다음 술값을 치르려고 하였으나 돈을 가져오지 않아

  야단을 맞고 있었던 것이 안쓰러웠던 안감은 대신 술값을 치러주었습니다.

 

  노인은 안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자신에 집에 꼭 들러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며칠 후 노인의 집을 찾아간 안감은, 그 노인이 '장안 최고의 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안암동의 서쪽에는 성북동에서 흐르는 개천이 있고

  동쪽에는 영도사(지금의 개운사)에서 흘러내리는 개천이 있는데,

  비만 오면 두 개천의 물이 흘러넘쳐 섬 같이 고립된 안암동 주민들의 고생이 많으니,

  개천에 다리를 놔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 추구에만 집착하는데,

  동네를 위한 소원을 말하는 채소장수에게  더욱 감동한 노인은 쾌히 동네 앞에 다리를 놓아주었습니다.

 

  이리하여 이 다리는 안감의 이름을 따서 안감내다리, 개천은 안감내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안감내 다리는 지금의 안암교이고 안감내는 안암천으로 불리던 지금의 성북천입니다.

 

  안감이 실천한 '배려양보'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며,

  다음은 『동대문 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동작) 신고하고 싶어도 신고하기 힘든 주민의 마음을 헤아린 동작경찰

2015. 5. 13. 14:29

신고하고 싶어도 신고하기 힘든 주민의 마음을 헤아린 동작경찰

 

관내 도보순찰 중 다급한 손짓으로 도움을 청하는 주민을 만난

노량진지구대 박대훈 경장,

언어장애가 있어 말을 하고 듣는 것이 조금 불편하신 이 여성은

자신의 고충을 설명하기 위해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자신의 집 앞에 매일 불법으로 주차하는 차량 때문에

소음과 매연으로 피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신고를 하려 해도 자신이 가진 장애 때문에

쉽게 전화신고를 하지 못하였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하였습니다.

 

시원스레 해결하지 못한 주민의 불편으로 지구대에 복귀한 후에도

마음 한구석이 영 불편했던 박대훈 경장은 갑자기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휴대폰 문자를 통한 생활불편 민원 신고 방법을 쉽고 상세하게

작성하기 시작하였어요.

그리고 정성스레 출력한 이 문서를 가지고 다시 찾아간 주민의 집,

비록 말하고 듣는 것은 조금 불편하지만,

연신 감사하다는 마음을 표하는 주민을 보면서

박대훈 경장은 그제야 마음 속 불편함을 털어낼 수 있었어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박대훈 경장, 앞으로의 활약을 응원하며

안전한 동네를 만들기 위한 치안활동뿐만 아니라

행복한 동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동작경찰이 될게요~^^

 

우리 동네 경찰서 - 용산경찰서

2015. 4. 30. 08:50

 

 

  책상 위에 커다란 서울 지도를 올려놓고,

  두 눈을 꼭 감은 상태에서 서울에 중앙을 손가락으로 '콕' 찍으면

  아마도 그곳이 용산구일 확률이 높습니다. ^^

 

  한강의 중심이자 서울 한가운데 위치한 용산!

 

  우리 동네 경찰서!

  오늘은 용산 경찰서로 찾아갑니다.

 

  용산구 원효로에 있는 용산 경찰서는 1945년 국립경찰 창설과 함께 문을 열었습니다.

  현재 사용하는 건물은 1979년에 건축한 건물입니다.

 

 

 

 

  남산은 알겠는데 용산은 어디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서울에 40년 이상 살고 저도 용산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네요. ^^

 

 

  서울 인왕산의 남쪽 지맥이 남산을 거쳐 구불구불 능선을 이루고

  한강까지 뻗어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의 모양과 같다'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 용산입니다.

 

  현재는 도심 개발로 용산의 능선에는 집과 빌딩이 들어섰습니다.

  용(龍)이 멋있게 하늘로 승천하기에는 등에 지고 있는 건물이 너무 무거워 보이네요! ^^

 

 

서빙고 나루터 부근에서 본 노량진과 동작대교

 

  용산은 조선시대부터 교통과 물류의 요충지였습니다.

 

  지금의 반포대교 북단에 있었던 '서빙고 나루터'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나루터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서빙고 나루터를 통해 한양에 입성했답니다.

 

 

  서빙고(西氷庫).

 

  '서쪽에 있는 얼음 창고'라는 뜻의 서빙고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운영하는 가장 큰 얼음 창고였습니다.

  위치는 반포대교 북단 지금의 서빙고동 주민센터 자리입니다.

 

 

  용산 서빙고에는 한해 13만 정(丁) 이상의 얼음을 보관했다고 하는데요,

  한 정(丁)의 크기가 대략 두께 12cm 이상, 사방 둘레가 180cm이었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보는 크기의 얼음이 무려 13만 개 이상을 저장했다고 하니 대단하죠! ^^

 

  서빙고의 얼음은 궁중에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일반인에게도 나눠 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활인서(조선시대 의료기관)의 환자 치료나, 한여름 의금부의 죄수에게도 나눠주었다고 하네요. ^^

 

 

 

  배달하는 '집배원', 물건 파는 '판매원', 기타 치는 '김태원' 모두 모여 '이태원'

 

  앞서 말했듯이 물류와 교통의 요충지인 용산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는데요.

  이들에게 잠을 잘 숙박시설이 필요했겠죠?

 

  당시 용산에서 가장 유명한 숙박시설의 이름이 바로 '이태원(梨泰院)'이었습니다.

  '이태원'이 오늘날 호텔의 이름이란, 사실 여러분 아셨나요? ^^

 

 

  조선시대 이태원이 위치한 곳은 지금의 용산고등학교 자리였습니다.

  지금의 이태원 거리와는 조금 차이가 있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일본군 주둔을 위해

  이태원 주변 주민을 지금의 이태원역 근처로 강제 이주 시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태원 거리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태원 입구 관관경찰 안내센터

 

 

 

  "서울은 몰라도 이태원은 안다."

  서울을 방문했던 외국인이 사이에 회자됐던 말인데요.

  그럼 왜 이태원에는 외국 사람이 많은 걸까요?

 

  앞서 설명했듯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의 주둔지였고,

  광복 이후 미군의 주둔지가 되고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많은 외국인이 다니게 되면서

  지금의 상권이 형성됐습니다.

 

 

  현재 이태원은 연간 164만 명 하루 평균 4,500명 정도의 외국인이 찾는 명소가 됐으며,

  1997년 서울시에서 최초의 관광특구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서울에 있는데,

  바로 이태원 '세계 음식거리'입니다.

 

  지하철 이태원역에 내려 해밀톤 호텔 뒤편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데요.

  각자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용산에는 이태원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유일하게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용산미군기지'입니다.

 

  이곳에도 대한민국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시나요?

  정식 명칭은 '미8군 한국 경찰출장소'인데요.

  양현호 경위를 포함 3명의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곳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용산경찰서 보안과 소속으로,

  미군과 한국인 사이에 일어나는 다양한 형사사건의 초기대응과

  미군과 한국경찰간의 연락관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근무하는 경찰관의 특징은 모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과

  매일 한국에서 미국으로 출근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곳 미군부대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주문하고 카드를 내밀었더니,

  미국에서 00달러가 결제 됐습니다. 라는 문자가 오네요. ^^)

 

  한국 경찰출장소에서는 주말 저녁마다 미군 헌병과 함께 이태원 주변 순찰근무를 한답니다.

 

 

  얼마 전 장이태·박호선 경사는 미군의 요청으로

  미국 병사를 상대로 한국 마약 범죄에 관한 특별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미군도 서울에 주둔하면 대한민국 경찰의 보호를 받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미군을 보호하고 있는 대한민국 경찰이야말로 세계 최강이 아닌가 싶습니다. ^^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을 뽑으라면 많은 사람이 효창공원을 이야기합니다.

 

  용산경찰서 관내 있는 효창공원을 찾았습니다.

  때마침 내린 봄비가 한결 더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네요.

 

 

  현재 효창공원에는 광복을 위해 순국한 애국지사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194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이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이곳 효창공원에서 안장했고,

  자신도 1949년 6월 흉탄에 쓰러져 이곳에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이름이 '효창(孝昌)'공원이라는 것이 좀 이상하죠?

  애국(愛國)공원이면 더 이해가 쉬울 텐데 말이죠!

 

 

  '효창공원'의 옛 이름은 '효창원(孝昌園)'입니다.

  이름에서 알 듯 끝에 능(陵), 원(園), 묘(墓)가 들어가면

  왕족의 묘라는 것을 예전 국사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묘를 말하고, 원(園)은 왕이 되지 못한 세자나 세자빈의 묘를 말합니다.

 

  효창원은 '정조 이산'의 어린 아들 문효세자와 그의 생모 '의빈 성씨'의 묘소를 말합니다.

  유독 자식 복이 없었던 정조는 의빈 성씨의 몸에서 첫아들인 '문효세자'를 얻게 됩니다.

 

  존재만으로도 아비에게 기쁨인 '문효세자'는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 죽고 맙니다.

  그리고 같은 해 아들을 잃은 슬픔에 생모인 '의빈 성씨'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조는 이들의 묘지를 선대왕릉 부근으로 하지 않고

  당시 궁궐에서 멀지 않으면서 수십만 그루의 소나무가 장관을 이룬 이곳에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의 묘를 세우고 이름을 '효창원(孝昌園)'이라 했습니다.

 

  효창원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효창공원이 되면서

  기존 묘소는 서삼릉(경기도 고양시 원당)으로 옮김을 당했습니다.

  이후, 조국광복과 함께 독립 운동가들의 묘소를 이곳으로 옮겨와 지금의 공원이 조성됐다고 합니다.

 

 

  용산구 사진을 위성에서 보면 빽빽한 빌딩 숲 사이로 유일한 녹색지대가 효창공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서 말한 건물에 깔린 전설의 동물 용(龍)이 하늘로 승천한다면

  아마도 효창공원 언덕쯤에서 머리를 빼꼼히 내밀지 모른다는 소심한 예언(?)을 해 봅니다. ^^

 

  다음은 '성북 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우리 동네 경찰서 - 혜화경찰서 편

2015. 4. 21. 09:09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동물원의 혜화동이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여러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되었지만,

  저는 원조가수인 '동물원'의 버전이 제일 좋습니다. ^^

 

  C코드의 어렵지 않은 화음.

  어쿠스틱 기타를 치면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멜로디

  멜로디언의 경쾌한 간주소리를 듣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80년대 혜화동으로 달려갈 것 같습니다.

 

 

  노래 혜화동을 듣고 찾아간 경찰서는 '혜화경찰서'입니다. ^^

  혜화경찰서는 1945년 '동대문경찰서'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관할 조정으로 2006년 '동대문경찰서'라는 이름을 '청량리경찰서'에게 주고

  지금의 '혜화경찰서'라는 예쁜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혜화경찰서에는 젊음의 거리 '대학로'가 있습니다.

  이화동 사거리부터 혜화동 로터리까지의 거리를 '대학로'라고 부릅니다.

 

  왜 '대학로'라는 이름을 갖게 됐을까요?

  그 뿌리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까지 올라갑니다.

 

  1920년 독립운동가 이상재 선생 등이 '조선교육회'를 발기하고 종합대학 설립을 추진하자,

  이에 일본이 한국인의 고등교육기관 설립을 봉쇄할 목적으로

  '경성제국대학'을 지금의 마로니에 공원 부근에 설립했습니다.

 

경성제국대학 터에 자리 잡은 서울대학교 舊본관 건물

 

  '경성제국대학'은 교수 대부분과 학생이 일본인으로 구성돼 있었고,

  소수의 한국인 학생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후 1945년 조국광복과 함께 '경성제국대학'도 문을 닫았습니다.

 

마로니에 공원은 서울대 문리대와 법대가 있던 자리로
캠퍼스에 마로니에 나무가 세 그루 있던 것을 유래로 '마로니에 공원'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1946년 서울대학교가 지금의 동숭동 대학로에 자리 잡게 됐고,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곳 대학로는 서울대학교 문리과학대,

  법과대학 등이 자리했었습니다.

 

舊대한의원 건물(사적 제248호)

 

  대학로 서쪽 편에는 서울대학교 병원이 있습니다.

  사진 속 건물은 '대한의원' 건물로 현재는 서울대학교병원 역사문화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한의원'은 1907년 설립된 최고의 국립 의료기관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창경궁의 외원(外苑)이어던 함춘원이 있던 곳으로 왕실에서 특별히 마련해 준 땅이랍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운영하다가 1945년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가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사를 가자,

  신촌을 비롯해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던 문화단체와 극장들이 대학로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2004년, 인사동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 '문화지구'로 지정되어 서울의 문화를 대표하는 거리가 됐습니다.

 

 

  이 거리를 관활하는 '대학로 파출소'를 찾았습니다.

  두 경찰관(이경훈 경사, 김다현 순경)이 반갑게 맞이해 주네요!

 

 

  이경훈 경사는 얼마 전 승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선배경찰관이 보내준 화환이 눈에 확 띕니다.

  보통 결혼식이나 보낼법한 대형3단 화환에 "의정부의 자랑 이경훈"이라는 문구가 재미있습니다. ^^

 

 

  대학로 파출소 앞에는 '이화장(梨花莊)'이 있습니다.

  '이화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사택입니다.

  조선 중기시대 건물로 이승만 대통령이 광복 직후부터 거주했던 공간으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이곳에서 초대 내각을 구상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사적 제479호로 서울시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는 내부 수리 중입니다.

  수리가 완료되면 일반에게 공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수리 중임에도 서울경찰 식구들을 위해 기꺼이 내부를 공개해 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감사 드립니다. ^^ 꾸뻑~

 

 

  김다현 순경의 안내로 이화동 벽화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평범한 동네에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지니 명품 마을이 됐고,

  관광객들이 꼭 찾고 싶은 동네가 돼 버렸네요. ^^

 

 

  한국에는 11곳의 세계 유네스코 유산이 있습니다.

  [해인사 장경판전, 수원 화성, 조선 왕릉, 석굴암과 불국사, 남한산성, 경주 역사지구,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한국의 역사 마을(하회와 양동), 고인돌 유적(고창, 화순, 강화),

  종묘, 창덕궁]

 

  유네스코 유산 중에 서울에 있는 2곳

  종묘창덕궁이 모두 혜화경찰서 관내 있습니다. ^^

 

 

  우선, 창덕궁을 방문했습니다.

  창덕궁은 이궁(離宮)으로 지어진 곳입니다.

  이궁(離宮)이란 전쟁이나 큰 재난이 일어나 공식 궁궐을 사용하지 못할 때 대비해 지은 궁궐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기도 합니다.

  또한, 창덕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자연지형물과 조화를 고려해 설계됐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일까요?

  창덕궁은 우리나라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창덕궁과 나란히 붙은 창경궁입니다.

  멋지죠? 창경궁 너머로 보이는 고층 빌딩이 고전과 현대의 만남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혜화경찰서 관내의 또 다른 명문, '광장시장'입니다.

  청계천 3, 4가의 '광교'와 '장교' 사이에 있는 시장이라고 해서 '광장시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재래시장입니다.

 

  1904년 을사늑약 체결 후 일본의 경제침략 정책으로 남대문시장 경영권이 장악당하자

  경제 국권을 회복하고자 광장시장이 생겼는데,

  당시 발기인 3명이 토지와 현금 10만 원을 투자해 발족했다고 합니다.

  (10만 원에 이런 대형 시장을 세울 수 있었다니 화폐가치가 너무 많이 상승한 것 같네요. ^^)

 

  광장시장은 주단, 포목, 직물, 여성의류 등의 다양한 물품을 취급하지만, 무엇보다 먹거리가 일품입니다.

  만원 한 장 들고 가도 두 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이곳 역시, 외국인 관광객들이 꼭 방문하고 싶어 하는 곳입니다.

 

 

  다음은, 조선 왕과 왕비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종묘를 찾았습니다.

  종묘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국가 최고의 사당입니다.

 

  신주(神主)란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패를 말합니다.

  유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혼(魂)백(魄)으로 분리되어

  은 하늘로 올라가고 형체인 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당을 지어 을 모시고, 무덤을 만들어 을 모시는 형태로 조상을 숭배했습니다.

 

 

  종묘 앞 하마비(下馬碑)입니다.

  大小人員下馬碑(대소인원하마비)

  신령한 곳이니 모든 사람은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정전입니다.

  왕과 왕비의 삼년상이 끝나면 신주를 이곳 정전으로 옮겨와 모신다고 합니다.

  정전은 목조건물로 지어진 사당중에, 세계에서 가장 긴 건물이랍니다.

  가로길이가 무려 109m에 이른다고 합니다.

 

 

  현재도 매년 5월 이곳에서 유교 예법에 따라 제례가 열립니다.

  특히, 제례 시 연주되는 곡은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으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 1호로 지정될 만큼 학술적 가치가 높습니다.

 

 

  신들의 길

 

  종묘에는 신들이 다니는 신로(神路)가 있습니다.

  길의 가운데는 약간 높고 양옆은 약간 낮습니다.

  가운데 길은 혼령이 다니는 신로며,

  오른쪽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

  왼쪽 길은 왕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라고 합니다.

 

  종묘는 현재 인터넷 예약 입장만 받고 있습니다.

  예약한 시간에 해설사의 안내와 함께 입장하게 됩니다.

  단, 토요일만 예약 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으니 방문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종묘를 관할하는 치안센터의 정옥현 경위입니다.

  세계 문화유산을 관할하는 자부심도 대단하지만,

  정 경위는 노인들을 상대로 하는 범죄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명 '박카스 아줌마' 단속이나 노인 상대로 하는 '도박 장기' 등도 정 경위가 챙겨야 할 업무입니다.

 

 

  지난 호에서 다뤘던 서울의 사대문과 사소문 기억하시죠?

  서울의 동쪽 문인 동대문(흥인지문)과 동소문(혜화문)이 혜화경찰서 관할입니다.

 

 

흥인지문을 출발 - 동대문 성곽공원 - 낙산공원 - 혜화문 (2.3Km)

 

  흥인지문에서 혜화문까지는 '서울 한양도성길(낙산코스)'입니다.

  흥인지문을 출발해, 한 시간 남짓 걷다 보면 혜화문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서울 도심에 이렇게 좋은 산책로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혜화경찰서 관내에는

  현대와 과거가 아름답게 공존하네요. ^^

 

  다음은 용산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우리 동네 경찰서 - 서울서대문경찰서 편

2015. 4. 1. 17:04

 

 

  걸어서 서울 속으로...

  오늘 방문할 경찰서는 서대문경찰서입니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서대문역 주변에 '서대문경찰서'는 있는데 '서대문'은 없네요?

 

 

  맞습니다. 서대문은 현재 없습니다. ㅠㅠ

 

  일제강점기인 1915년 전차 궤도 복선화 사업을 이유로 조선총독부에 의해 철거됐습니다.

  과거 서대문이 있었던 자리에 이곳이 서대문(돈의문)이었음을 알리는 표지판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입니다.

 

 

  '숭례문'이 '남대문'의 정식 이름이듯

  '돈의문'은 '서대문'의 정식 이름입니다.

 

  최초 서대문은 태조 5년(1396) 사직공원 부근에 세워진 '서전문'이었습니다.

  이후 도성을 고치며 세종 4년(1422) 지금의 정동사거리에 새로 세우며 '돈의문(敦義門)'이라 칭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돈의문을 새로 지어진 문이라고 해서 '신문(新聞)' 또는 '새문' 이라고 했는데요,

  지금의 신문로가 서대문을 통하는 길이고,

  1887년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새문안교회' 역시 새문(서대문) 안쪽에 지어진 교회라는 뜻입니다.

 

 

  예전 서울은 성곽에 둘러싸여 있었고 여덟 개에 문으로만 출입을 했는데요,

  여덟 개의 문이 바로 사대문과 사소문입니다.

 

  사대문은

  동대문(흥인지문), 서대문(돈의문), 남대문(숭례문), 북정문(숙정문)이고,

  사소문은

  동소문(혜화문), 서소문(소의문), 남소문(광희문), 북소문(창의문)입니다.

 

  그런데 유독 서쪽 지역을 통과하는 '서대문'과 '소의문'이 일제의 도시계획에 의해 철거됐습니다.

 

 

  서대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서대문 형무소'인데요.

  과거 '형무소'는 현재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하 서대문 역사관)'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서대문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한 블록 올라가면 독립문역 사거리가 나옵니다.

  이곳이 바로 '서대문 역사관'이 있는 독립공원입니다.

 

 

  독립문이 멋져 보입니다.

  저는 이번 취재가 있기 전까지는 독립문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줄 알았습니다. ㅠㅠ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독립문 앞에 두 개의 돌기둥이 보이시나요?

  이 기둥의 이야기를 알면 독립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돌기둥은 커다란 문을 바치던 기둥인데요.

  그 문이 바로 영은문(迎恩門)입니다.

 

 

  영은문은 모화관(慕華館)의 대문 격입니다.

  모화관이란 조선시대 한양을 찾아오는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장소입니다.

  사신이 도착하면 왕세자가 모화관까지 직접 나가서 이들을 영접하고 연회를 베풀며 위로했다고 합니다.

 

  독립문은 1897년 서재필 선생 등이 세운 독립협회가 국민의 성금을 모아 세웠습니다.

  조선의 개방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기 위해 모화관과 영은문 앞에 세운 것입니다.

 

 

  모화관은 후에 독립협회 사무실로 사용했고,

  지금은 '독립관'이라는 이름으로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봉안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독립문의 생김새가 파리의 개선문과 비슷하지요?

  이 문을 처음 디자인한 서재필 선생이 파리의 개선문을 보고 스케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서려 있는 서대문 역사관입니다.

 

  일본이 을사늑약(1905)으로 외교권을 강탈하고 이에 저항하는 수많은 사람을 가둘 감옥이 필요했는데요.

  그래서 지은 '경성감옥'이 바로 '서대문 형무소'입니다.

 

  주말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꼭 한번 들러 보시기를 권하며

  사진 몇 장으로 이곳의 슬픈지만 꼭 기억해야 할 역사를 전합니다.

 

 

  서대문역에 내리면 바로 서대문경찰서가 보입니다.

  서대문경찰서 1894년 7월 '서경찰지서'로 출발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지나 1945년 경찰 창설과 함께

  지금의 '서대문경찰서'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서대문경찰서에는 조금 특별히 경찰관이 있는데요.

  바로 '외국인 안전 지킴이'입니다.

 

  외국인 안전 지킴이는 서대문 지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안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서대문경찰서에서 운영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이들은 영어와 중국에 능통한 경찰관 4명으로 구성됐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148만 명이랍니다.

 

  이들이 주로 방문하는 곳은 명동, 동대문시장, 고궁 등인데요.

  그 중 24.2%가 서대문경찰서가 관할하는 신촌과 홍대주변을 찾는답니다.

 

 

  지난해 12월 대만에서 온 관광객이 휴대전화를 잃어 버렸다며 외국인 안전 지킴이에게 도움을 청했는데요.

  이들은 최아나 순경의 도움으로 서울의 한 편의점에 있는 휴대전화를 찾을 수 있었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사연을 올려 한국 경찰과의 인연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이화여대 입구는 중국인들이 찾는 관광명소입니다.

  이화(梨花)라는 발음이 "재물을 부른다."는 중국식 발음과 유사하고

  이곳을 배경으로 한 한국 드라마 등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

 

 

  취재를 하고 있는 중에도 외국인들이 지리를 묻는 등 도움을 청했는데요,

  이런 작은 것에서도 서대문경찰서의 외국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홍제천 이야기

 

  서대문에는 홍제천이 흐릅니다.

  북한산을 발원지로 종로와 서대문과 마포를 지나 한강으로 유입되는 아름다운 하천입니다.

  서대문경찰서 홍은 파출소 이선아 순경이 전하는 홍제천 이야기입니다.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는 50만 명의 조선 백성을 전쟁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이후 가족들이 몸값을 지불하고 어렵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포로로 잡혀갔던 부녀자들은 오랑캐에게 정절을 잃었다 하여 '화냥녀'라는 수치를 당하게 되는데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인조임금은 포로로 잡혀갔던 부녀자들을 홍제천에서 목욕하도록 해

  몸과 마음이 깨끗해졌음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누구든지 부녀자들의 정조문제를 거론하면 엄벌에 처하겠다는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슬픈 역사와 인조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서대문경찰서 최재천 서장은 서대문구에서 4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이곳 주민이랍니다. ^^

  '도탑다'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서로의 관계를 끈끈히 한다는 말로 '돈의문'의 돈(敦)이 바로 그 뜻이랍니다.

 

  "서대문 주민은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주민 간에 끈끈한 정이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도탑게 지내는 이유가 돈의문의 좋은 기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라며 자랑을 아끼지 않은 서대문 서장님. ^^

 

  이런 끈끈한 정을 기반으로 더 안전하고 행복한 서대문구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동안 서대문을 복원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언제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대문'과 '서소문'이 멋진 모습으로 우리 곁에 서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

 

  다음은 '혜화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서교동주민 2016.10.12 17:54

    서대문 서소문 자주 지나다니는데.. 몰랐었어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우리 동네 경찰서 - 남대문경찰서

2015. 3. 20. 09:19

 

 

  서울에 대문이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요?

  누가 뭐래도 서울의 상징적 대문은 숭례문(崇禮門)입니다.

 

  숭례문은 조선 시대인 1395년(태조5) 축조된 서울의 정문으로,

  사람들은 남쪽에 있는 큰문이라고 해서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했습니다.

 

  오늘 방문할 경찰서는 바로 남대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남대문 경찰서입니다.

 

 

  남대문 경찰서는 서울역 바로 건너편에 있습니다.

  중부경찰서와 함께 서울의 중구를 관할하는 남대문 경찰서는 지난 1959년 10월 21일 개소했습니다.

 

  남대문 경찰서는 서울의 대문 경찰서답게 서울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퇴계로, 을지로, 남대문로 등의 중요도로가 지나가며

  KTX 서울역과 지하철 1 · 2 · 4호선을 통해 하루 2∼3백만 명의 사람들이 지나다닌다고 합니다.

 

 

  서울역입니다.

 

  대한민국 철도역사의 산실이기도 한 서울역은 1900년 7월 '경성역'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개시한 후

  '남대문역' 등의 이름을 거쳐 광복 이후 '서울역'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안타깝지만 서울역은 일본 건축가에 의해 일제 강점기인 1922년 6월 착공하여

  33개월 만인 1925년 준공된 건물입니다.

 

  르네상스식 건축법으로 지은 서울역은 지금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건축 당시 지붕의 돔과 독특한 외관은 장안의 화제로

  서울역을 본 것만으로 큰 자랑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

 

 

 

  서울시청입니다.

  남대문경찰서 태평로파출소 최유리 순경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이곳은 서울시청입니다. 저희 파출소가 관할이기도 합니다."

  "시청이 관할이면 최 순경과 함께라면 시장님도 만나 뵐 수 있나요?"

  "시장님이라... 음..."

 

  최 순경은 시장님 대신 옆 동네 정동을 아름답게 구경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줬습니다. ^^

 

 

  서울시청 옆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입니다.

  마침 저희가 도착했을 때 수문장 교대식이 열렸는데요.

 

  수문장 교대식은 하루 세 차례(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3시30분) 열립니다.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는 내내 외국인 관광객들은 저들의 카메라에 대한민국을 담아가느라 정신없습니다.

 

 

  대한문을 끼고 도는 운치 있는 담장은 덕수궁 돌담길입니다.

 

  연인과 함께 걸으면 헤어지게 된다는 설이 있는데,

  이유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건물이 과거에 가정법원이 위치해 있어

  이혼하러 가는 이곳을 걸어가면서 그런 말이 생겼다고 하기도 하고,

  다정한 연인이 걸어가는 것을 배 아파하는 모태솔로가 지어냈다는 설도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

 

  아무튼 이 길은 연인, 가족과 함께 걷고 싶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곳은 구 러시아 공사관 있던 터입니다.

 

  지금은 공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탑만 남아 있지만

  1896년 명성황후가 경복궁에서 일본군에 의해 시해를 당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이곳 러시아 대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그 사건이 바로 "아관파천(俄館播遷)"인데요.

  고종은 이곳에서 일년 간 머무르다 경복궁이 아닌 당시 경운궁(덕수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덕수궁이 잘 보이죠?

 

  이곳은 서울시 별관 13층 '정동전망대'입니다.

  원래는 회의실과 창고로 사용되던 곳을 서울시민에게 개방한 곳인데요.

  착한 커피 가격은 보너스입니다.

  일반인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니, 꼭 한번 들러보세요.

 

 

  이밖에 정동에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은데요.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에 의해 지어진 100년이 넘은 정동교회(사적 제256호)와

  한국 최초의 현대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현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이 있습니다.

 

 

 

  명동입니다.

 

  평일 오후인데도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명동파출소는 건물 모양도 예뻐 외국인이 참 좋아하는 곳인데요.

  일주일에 한 번씩 경찰기마대가 관광경찰대와 순찰을 하니 이것 또한 명동의 명물입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갈치조림을 맛있게 먹고 남대문 경찰서로 들어왔습니다.

 

 

  남대문 경찰서 왕태진 경위입니다.

  왕 경위는 지난 16년간 학교폭력예방을 위한 강의 등으로 유명한 학교 전담경찰관(SPO)인데요.

 

  Q. 학생들에게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지난 2000년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인데요. 딸아이 또래의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잘할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다가 '등 · 하굣길 교통사고 예방'에 관한 교육을 시작으로 '학교폭력' 등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550여 회 정도 교육을 했고, 50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제 강의를 들었습니다.

 

 

  남대문 경찰서는 매주 토요일 경찰서 강당을 아이들을 위해 활짝 개방했습니다.

  왕 경위의 제안으로 시작된 청소년문화 프로그램은 '방송 댄스' 배우기와 '꿈터' 교실인데요,

  경찰서를 찾은 아이들은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다양한 강의를 경찰서에 와서 듣곤 한답니다.

 

 

  남대문 경찰서 변관수 서장은 "조선 시대 우리 선조들은 숭례문을 신성시 여겼습니다. 연초면 많은 백성이 숭례문 앞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곤 했습니다. '국태민안(國泰民安)' 남대문 경찰서의 마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서대문 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우리 동네 경찰서 - 서울종로경찰서 편

2015. 3. 10. 09:21

 

  안녕하세요!

  걸어서 서울 속으로 '종로경찰서' 편입니다.

 

  지난 호 중부경찰서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이번에는 종로경찰서를 찾아갑니다.

 

 

 

 

  제가 근무하는 서울지방경찰청도 종로경찰서 관할구역 내 있습니다.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도

  각 부처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정부서울청사도

  서울의 5대 궁궐 중에 덕수궁을 제외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도 종로에 있습니다.^^

 

 

  뚜벅뚜벅!

  걷기를 좋아하는 저는 가끔 점심시간에 사무실 근처 경복궁을 크게 한 바퀴 도는데요.

  그럼 딱 40분, 3Km 정도를 걷습니다.

 

  제가 40분 걷는 동안 몇 개 동(洞)이나 거쳐 가는 줄 아세요?

  무려 13개 동입니다. 놀랍죠! ^^

  40분 정도 걸었을 뿐인데 13개 동을 걸을 수 있다니 말입니다.

 

 

  제가 걸었던 코스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면

  서울경찰청이 있는 ① 내자동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② 적선동 적선동에서 50m쯤 가면 ③ 통의동, ④ 창성동, ⑤ 효자동, ⑥ 사직동, ⑦ 팔판동, ⑧ 소격동, ⑨ 사간동, ⑩ 중학동, ⑪ 수송동, ⑫ 도렴동, ⑬ 내수동을 거쳐 처음 출발했던 내자동 청사로 들어옵니다. ^^

 

 

  서울에는 466개의 법정동(洞)이 있는데

  그 중 87개 해당하는 법정동(洞)이 종로구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종로구가 아주 넓은 곳이 아닙니다.

  종로구의 면적(23.91㎢)은 서울시 면적(605.25㎢)의 3.95%에 불과합니다.

 

  참고로, 서울에서 가장 넓은 내곡동(12.69㎢) 안에는

  종로의 작은 동(洞) 70여 개가 쏙~들어갑니다. ^^

 

  좁은 지역에 많은 동(洞)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랜 역사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종로에 있는 재미난 동명을 살펴보면 종로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 '효자동'은 효심 깊은 두 아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쳐들어왔습니다.

  지금의 효자동에 임천 조 씨의 효심 깊은 쌍둥이 아들 '희정'과 '희철'은

  어머니를 해치려는 왜적에 온몸으로 막아서다 그만 저세상으로 갔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선조는 지금의 효자동 100번지에 홍살문을 지어

  두 아들의 효심을 온 백성이 본받도록 했답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이 이곳을 쌍효자골 혹은 효잣골로 부르다 지금의 '효자동'이 됐답니다.

 

 

  한 마을에 여덟 명의 판서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팔판동',

  요즘 서태지의 노래 제목으로 유명한 '소격동'은 별에게 제사를 지내던 소격서가 있던 동네를 말하고,

  서울경찰청이 위치한 내자동은

  조선시대 궁궐에 쌀, 밀가루, 술, 기름 등 각종 부식을 보급했던 내자사가 있던 데서 유래됐습니다.

 

 

 

 

  종로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궁궐인데,

  조선 최대의 정궁 '경복궁'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창덕궁',

  조선 성종(1484)이 지은 '창경궁'과

  인조의 생부인 정원군의 생가였다가 광해군에 의해 궁궐이 된 '경희궁' 역시 종로의 명물입니다.

 

  궁궐은 아니지만, 궁궐보다 더 큰 위세를 누렸던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알려진 운현궁도 종로에 있습니다.

 

 

  종로경찰서 홍보담당 유명미 순경이 종로를 재미있게 구경하는 방법을 소개해 줬는데요.

  '골목길 해설사'와 함께 종로의 골목길을 여행하는 것입니다.

 

  종로구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골목길 해설사'는 3명 이상의 사람이면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신청할 수 있고,

  골목길 해설사와 함께 종로의 골목을 여행할 수 있습니다.

 

 

  종로경찰서 유명미 순경이 신청한 김금수 해설사와 요즘 뜨고 있는 북촌을 함께 걸어 보기로 했습니다.

 

  종로경찰서에 만나 윤보선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안국동 윤보선 대통령이 거주했던 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복정우물 터입니다.

  이곳의 물은 맑고 그 맛이 좋아 조선 시대에는 궁중에서만 사용했던 우물이라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뚜껑에 자물쇠를 채우고 군인들로 하여금 지키게 했고,

  1년에 딱 한번 대보름에만 일반인에게 개방했다고 하네요.

  이 지역에서는 이 물로 밥을 지어 먹으면 일 년 내내 행운이 따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복정우물을 지나, 북촌 8경을 발로 걸어 다니면 도심 속 서울의 아름다움을 흠뻑 느낄 수 있습니다.

 

  아! 잠깐 북촌은 현재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이니 이곳을 여행할 때는 조용히 이동하는 게 예의라고 하네요.

 

 

  피맛골을 아시나요?

 

  피맛골은 조선 시대 말을 타고 종로 대로를 지나던 벼슬아치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기 싫어하던 평민들이 다니던 길이란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했습니다.

  비좁은 골목에 서민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맛집이 줄지어 있는데요.

  비 오는 날 파전에 동동주가 생각나는 하루네요. ^^

 

 

  이곳이 종로경찰서입니다.

 

  종로경찰서는 혜화경찰서와 함께 종로구를 관할하는데요.

  종로경찰서는 이전 편에 소개됐던 중부경찰서와 마찬가지로 1945년 국립경찰 창설과 동시에 개서했습니다.

 

 

  종로의 랜드 마크가 된 종로타워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백화점' 있던 자리인데요.

  종로경찰서에 대해 알아보다 화신백화점이 종로경찰서의 역사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

 

 

  위 사진은 1901년 대한제국이 세운 '한성전기'의 사옥입니다.

 

  한성전기는 고종황제가 서울에 전차를 놓기 위해 세운 회사인데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회사는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됐고,

  비워진 건물을 당시 종로경찰서에서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이후 '화신백화점'의 전신인 '화신상회'가 다시 건물을 사용했고,

  지금의 종로타워 자리로 옮겨 '화신백화점'이 됐답니다.

 

 

  종로경찰서에 조금 독특한 이력의 경찰관이 있는데 세종로 파출소 윤지희(31) 순경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윤지희 순경은 경찰에 입문하기 전 경제신문 기자로 1년 6개월간 근무한 이력이 있습니다.

  외국어고등학교(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어학공부도 다녀 온 윤 순경은

  영어와 중국어를 잘해서 관광객인 많은 세종로 파출소에 근무하고 있는데요.

 

 

  윤 순경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물어봤습니다.

 

  Q. 기자의 눈으로 본 경찰과 경찰이 된 지금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 해 주세요.

 

  A. (웃음) 완전 다르죠!! 사회부 기자를 경험하지 않아서 경찰을 직접 접촉할 기회는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좋든 싫든 경찰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요. 저도 비로소 경찰이 되고 나서야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걸 깨닫게 됐는데요 그래서 경찰 홍보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경찰 홍보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A. 지금은 누가 뭐래도 SNS 시대잖아요. SNS를 통한 홍보가 아주 중요하죠. 가수 싸이가 하루아침에 월드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SNS 때문이죠. 우리 경찰도 다양한 SNS 홍보를 통해 시민들에게 가볍고 경쾌하게 다가가는, 그런 홍보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로경찰서 방범순찰대에 영화배우가 근무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어 방범순찰대를 방문했습니다.

 

 

  영화 '내 생애 봄날', '끝까지 간다', '아저씨' 등에서 맛깔 나는 조연으로 활약했던

  영화배우 이재원(30) 대원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재원 대원은 지난 8년 동안 '의사', '변호사', '경호원', '조폭' 등의 배역을 맡았는데

  '경찰'역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는군요.

 

  "의경생활을 통해 경찰을 간접 경험한 덕에 전역 후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남은 복무 기간 동안 성실하게 근무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종로경찰서에 현관에는 두 분의 흉상이 있는데

  바로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입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대통령 암살을 목적으로 3.8선을 넘어 서울에 잠입,

  세검정 자하문에서 경찰 검문에 발각되었습니다.

 

  이어 경찰과 북한 특수부대원 간의 총격전이 벌어졌고

  당시 현장에 출동해 지휘하던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총에 맞아 사망에 이른 사건입니다.

 

  사후 최규식 총경은 경무관으로,

  같은 현장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쓰러진 정종수 경장은 경사로 추서됐습니다.

 

  위 사진은 그 해 경찰의 날 동상제막식 때의 모습인데요,

  벌써 반세기가 흘렀네요.

 

 

  종로경찰서 홍보담당 경찰관과 최규식 경무관 동상 앞을 찾았습니다.

 

  서른일곱 나이에 처와 자식을 두고

  경찰 제복을 입은 채로 피 흘려 쓰러졌을 최 경무관의 늠름함에 숙연한 마음이 듭니다.

 

  경찰의 날 아니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래서 조금은 쓸쓸한 이곳에

  경찰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역사의 자랑스러움으로 남을 두 분의 선배경찰관들에

  부끄러운 경찰관이 되지 않기를 다짐해 봅니다.

 

 

  다음은 '남대문 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우리 동네 경찰서 - 서울중부경찰서 편

2015. 2. 25. 16:06

 

 

  서울은 1394년(태조 3년) 조선의 수도가 된 이후

  60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의 수도로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고층빌딩과 아파트만 있을 것 같지만 아름다운 고궁과 좁은 골목길 등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차에서 내려 걷다보면 한다면 볼 수 있는 또 다른 서울의 모습.

  서울경찰 뉴스레터가 우리 동네 경찰서를 중심으로 서울의 숨겨진 다양한 모습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서울의 면적은 605.25㎢입니다.

  이는 한반도의 0.28%(남한 면적의 0.61%)에 해당하는 넓이로,

  남북 간 거리는 30.30km, 동서 간 거리는 36.78km입니다.

  인구는 10,192,057명(2013년 기준)입니다.

  남한 면적의 1% 안 되는 곳에서 천만 명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대단한 곳입니다.

 

  이처럼 서울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질서유지를 위한 경찰활동도 중요한 곳입니다.

 

 

 

 

  서울경찰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한데요.

  서울은 앞서 말했듯이 복잡하고 다양한 곳입니다.

  선진 시민일수록 남을 배려하고 정한 규칙 등을 잘 준수하는데요.

  '교통안전선', '질서유지선', '배려양보선' 이런 선을 잘 지키는 것이 행복한 사회로 나가는 길입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우리 동네 경찰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서울에는 31개 경찰서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서울의 중심, '서울 중부경찰서'를 소개합니다.

 

 

  제가 '서울 중부경찰서'라고 했는데요.

  전국에 중부경찰서는 몇 개나 있을까요?

 

  저도 이번 기사를 쓰면서 알아봤는데,

  전국 16개 지방경찰청 내에 9개의 중부경찰서가 있더군요. ^^

  중부경찰서는 경찰서 이름처럼 각 도시의 가장 중앙에 위치한 경찰서입니다.

 

  '중부경찰서'가 있는 8개 지방경찰청(廳)의 9개 경찰서

  서울廳 · 부산廳 · 인천廳 · 대구廳 · 대전廳 · 울산廳 · 경기廳(수원 중부) · 경남廳(마산 중부, 김해 중부)

 

중부경찰서 의경이 뉴스레터 식구들께 환하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서울 중부경찰서(이하 중부서)는 이웃 경찰서인 남대문서와 함께 서울 중구를 담당합니다.

 

  중부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경찰서이기도 합니다.

  중부서는 1907년 조선의 27대 왕인 순종(1년) 때 전국 최초로 '경성 본정경찰서'라는 이름으로 개서 해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45년 대한민국 경찰 창설과 함께 지금의 중부경찰서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중부경찰서 로비에서 김성섭 서장을 만났습니다.

  지난해는 서울경찰 뉴스레터 편집인이었는데, 올해 1월 중부경찰서장을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한국사에 관심이 많은 김 서장이 중부경찰서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

 

  김성섭 서장 : 한국사에 3대 대첩이 있는데 바로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대첩입니다.
살수대첩은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30만 대군을 살수에서 전부 몰살시켜 수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고,
귀주대첩은 고려 시대 현종 때 거란군 10만 명을 귀주에서 물리쳐 승리한 싸움이고,
마지막 한산대첩은 영화 명랑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에서 크게 격파한 사건입니다.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과 한산대첩의 영웅 이순신의 정신이 서려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중구입니다.

 

 

  중부서 담당인 중구 인현동에는 이순신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으며, 대한민국 영화의 일번지인 충무로는 1946년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따서 '충무로'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을지로 역시 광복 후 일제식 명칭을 개정할 때 명장 을지문덕의 성을 따서 '을지로'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한국 3대 대첩의 주인공인 충무공 이순신과 을지문덕 장군의 정신이 서려 있는 곳이 바로 중부서입니다.

 

  중부서에는 3곳의 지구대와 4곳의 파출소가 있는데, 을지지구대, 충무파출소가 바로 이곳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중부서가 관할하고 있는 중구에는 유명한 거리와 골목이 많습니다.

 

  장충동 족발 거리, 오장동 냉면 거리, 충무로 반려견 거리와 오토바이 거리, 신당동 떡볶이 골목,

  충무로 카메라 골목과 인쇄 골목이 있습니다.

 

 

  충무로 인쇄 골목 근처 주자동(鑄字洞)의 동명은 조선 시대 활자를 만들던 주자소(鑄字所)에서 유래합니다.

  주자소는 조선 시대 활자를 주조하고 책을 찍어내는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으로,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든 곳입니다.

 

  왜 이곳에 수 백여 개의 인쇄소가 자리 잡게 됐는지 충무파출소 윤은아(26) 순경을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쇼핑 명소로 유명한 동대문 패션타운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손꼽는 곳입니다.

 

  원래 이곳은 미곡상, 어물상, 청과물상 등이 주를 이루어

  1905년에 90여 개의 점포로 시작된 광장시장이 그 출발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이곳 장터는 피난민의 생활 터전이 되었으며

  생활 물품과 군용물자, 외래품이 거래되면서 시장으로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1980년대 평화시장, 동대문종합시장, 신평화시장 등을 통해 지금의 종합 패션타운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대형 쇼핑몰마다 야외공연장을 마련하여 가수 초청공연, 비보이쇼, 댄스경연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으며 외국인들의 야간 투어 코스로도 이름난 곳입니다.

 

  충무로 인쇄 골목에 30년은 족히 됐을 법한 허름한 중화요리 집에서 맛있는 짜장면을 먹은 저는 소화도 시킬 겸 남산골 한옥마을을 찾았습니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제가 꼭 추천하는 방문지입니다.

  서울에서 40년이 넘게 산 저도 이런 곳이 있었나 했습니다.

 

  한옥마을에 있는 옛 가옥들은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전통가옥 다섯 채를 하나하나 뜯어낸 후

  이곳으로 그대로 옮겨와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조선 시대 전통가옥의 면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입니다.

  무료입장이 매력적인데요, 매주 화요일이 휴무라고 하니 참고해 주세요!

 

 

  이곳은 바로 광희문(光熙門)입니다.

  이름으로 봐서는 광화문의 동생(?)쯤으로 보이죠. ^^

 

  서울에는 4대문(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숙정문)과

  4소문(혜화문, 소의문, 창의문, 광희문)이 있는데

  광희문은 4소문의 하나입니다.

 

 

  광희문은 시구문(屍軀門) 혹은 '저승문', '황천문' 이라고 했는데,

  도성 안의 시신은 반드시 이곳 광희문이나 소의문을 통해서만 나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조선 시대에는 아무리 지독한 병마라도 수많은 원귀에 단련된 광희문에는 꼼짝도 못 할 것이라 믿어 많은 사람이 광희문의 돌을 갈아 만든 돌가루를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했다고도 하네요. ^^

 

  광희문은 지난 2013년 3월 새롭게 단장하고 39년 만에 일반에 개방됐습니다.

  근처에 들리시면 조선왕조의 600년 역사가 서려 있는 이곳을 꼭 방문해 보세요.

 

 

 

 

  가정폭력 전담경찰관인 허배석 경장은 중부서의 자랑입니다.

  '가정폭력 전담경찰관'

  이름이 좀 생소하죠?

 

  경찰청은 지난해 3월부터 학교폭력 전담경찰관, 성폭력 전담경찰관에 이어 가정폭력 전담경찰관 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가정폭력 전담경찰관은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 · 지원업무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Q. 가정폭력 전담경찰관이 여경이 많은데 남자 경찰관의 장점이 있습니까?

 

  A. 가정폭력의 가해자는 90% 이상이 남성입니다.
피해자의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가해자를 지혜롭게 관리하는 데는 저 같은 남자 경찰관이 유리하죠!

 

 

  허 경장의 업무 노하우는 발로 뛰는 데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전화로 가정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늘 현장 나간다고 합니다.

 

 

 

  Q. 동료들은 허 경장을 '사회복지사'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이유가 있나요?

 

  A. 얼마 전 '집 안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아내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제가 현장을 방문해 보니, 실제 집 안 구석구석 먼지가 수북했고, 냉장고에는 세 아이가 먹을 음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래서 동료 경찰관과 함께 그 집 청소해 주고 도배까지 해 준 적이 있거든요.
아마도 그때부터 동료들이 저를 '사회복지사'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명품경찰관 허배석 경장은 최근 여성가족부장관상과 중부경찰서 인권상을 받았습니다.

 

 

  중부경찰서는 웃는 모습이 예쁜 의경들이 있습니다.

  저를 보고 활짝 웃는 김기홍(22) 의경은 1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의경이 됐답니다.

  김기홍 의경의 안내로 중부경찰서 방범순찰대를 찾았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아무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는 노터치 타임을 통해 선임 후임 직원들은 편안하게 경찰서에 마련된 PC방과 독서실 그리고 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중부서는 '대한민국 치안의 중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의경이나 경찰관 모두 환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성섭 중부서장은 "주민이 근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근심하고 주민이 즐거워 한 뒤에 즐거워하겠다."라는 말로 시민을 향한 중부경찰의 마음과 자세를 대변했습니다.

 

  중부경찰 멋있죠?

  서울의 중심에 이런 든든한 경찰서가 있어 행복합니다.

 

  다음은 '종로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우리 동네는 우리가 지킨다!

2015. 2. 23. 08:30

 

  지구대에서 근무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제가 근무했던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는 서울 31개 경찰서 중에서도 112신고가 가장 많기로 손꼽히는 곳이었습니다.

 

  112 신고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신고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교대 시간까지 바쁘게 일하는 것은 당연지사였죠.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주민들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112 신고처리도 중요하지만, 이로 인해 순찰하는 시간과 장소가 줄어든다면, 그만큼 주민들이 범죄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걱정들이 있을 때마다 든든하게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요.

 

  그 든든하고 고마운 존재가 바로 오늘 소개할 주인공, 「자율방범대」입니다.

 

 

  「자율방범대」는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방범 자원봉사자 단체이며, 경찰의 방범 협력단체 중 가장 대표적인 조직입니다.

 

  이들은 경찰관들과 함께 범죄예방을 위한 야간 방범 순찰과 청소년 선도를 비롯한 여성 안심귀가 동행서비스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지난 1월 19일 밤 9시.

  서울에 있는 449개(현재 11,323명 활동 중) 자율방범대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광진경찰서 자양 4동 자율방범대를 찾았습니다.

 

 

  3평 남짓한 컨테이너에 안에는 회의용 테이블과 책상, 간의 탈의실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삼삼오오 모여든 자율방범대원들은 자정까지 있을 야간 순찰을 위해 순찰복으로 갈아입는 중이었습니다.

 

 

  올해로 20년째 자양 4동 자율방범대로 활동하고 있다는 왕규성 대장은 1995년 1월에 처음 만들어진 원년멤버이기도 한데요.

  전기 기술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 낮에는 생업을 위해 일을 하고, 밤에는 이웃을 위해 방범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딸 셋을 둔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항상 딸의 귀갓길을 직접 챙겼다고 하는데요.

  '딸 가진 부모의 마음'에서 직접 순찰에 나서기로 한 것이 자율방범대를 시작한 이유였다고 하네요.^^

 

 

  왕규성 대장 외에도 자율방범대원들은 가정과 직장생활 등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매주 월 · 수 · 금요일에 시행되는 방범 활동에 꼬박꼬박 참여하는데요.

 

  총 38명이 활동하고 있지만, 순찰이 조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날은 왕규성 대장을 포함한 5명의 자율방범대원이 경찰관과 함께 순찰을 시작했습니다.

 

 

  동네주민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어디가 방범 취약지이고, 어디가 학생들이 자주 다니는 통학로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어두운 동네 골목, 공원 등 그야말로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범죄예방을 위해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2013년도에는 서울경찰이 선정한 '베스트 자율방범대'로 뽑히기까지 했습니다.

 

 

  자율방범대는 남성만으로 구성됐다?!

  아닙니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여성자율방범대도 있습니다.

 

  여성자율방범대는 '부녀방범봉사대', '여성자율방범대'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요.

  적은 인원이지만 경찰의 치안 협력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습니다.

 

  현재 성동 · 영등포 · 동작 · 광진 · 중랑 · 관악 · 강동 · 구로 · 송파 등 총 9개 경찰서 소속으로 총 726명의 여성자율방범대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성동경찰서 응봉파출소에요.

  '부녀방범봉사대'를 만나기 위해 뉴스레터 취재팀이 두 번째로 찾은 곳입니다.

 

  '부녀방범봉사대'는 사무실이 따로 없기 때문에 대원들은 이곳에 모여서 순찰 준비와 월례회의 등을 한다고 합니다.

 

 

  야간 순찰을 나가기 전 최종현 순찰팀장과 함께 오늘 있을 순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부녀방범봉사대는 평소 생활을 해오며 느꼈던 위험한 장소나, 이웃의 어려운 문제들을 경찰관과 나눈다고 합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치안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답니다.

 

  부녀방범봉사대는 주민의 관점에서 경찰관이나 남성 자율방범대원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보살피고 있는데요.

 

 

  신경순 대장은 '우리 동네는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생각으로 지난 2003년 5월 부녀방범봉사대를 구성했습니다.

 

  신 대장은 이전에도 새마을부녀회에서 20년 정도 활동을 했는데요.

  당시 파출소장과 친분이 있던 남편의 권유로 활동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현재 부녀방범봉사대는 총 18명이 활동하고 있는데요.

  이들의 평균 연령은 50대 초중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녀방범봉사대는 '엄마 마음 순찰' 이라는 다짐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방범순찰이 우리 동네의 안전을 지키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도심이지만 인적이 드물고 가로등이 적은 동네의 특성 때문에 골목골목  더욱 꼼꼼히 순찰하고 있다고 합니다.

 

  순찰 뿐 아니라 주취자나 청소년, 여성들의 안전한 귀갓길을 돕고 있는데요.

  이른 아침에는 녹색어머니회 등과 함께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공사 등으로 아동 안전이 우려되는 곳에서 안전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녀방범봉사대의 활약은 주민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대원들을 만나면 환하게 웃으며 반겨줍니다.

 

  1시간 남짓 순찰하는 도중에도 참 많은 동네 주민과 안부를 물었는데요.

 

  무엇보다 주민들이 대원들을 반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활동이 방범 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대원들은 매월 회비를 모아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한부모가족을 대상으로 7년째 손수 김치를 만들어 나누어주는 행사를 하고 있고, 일일찻집을 운영해서 모은 돈으로 홀로 사시는 어르신이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결연가정 등에 위문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웃으며 김장하시는 모습 보이시나요?

 

  대원들은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일이 없다고 하는데요.

  오히려 자신의 수고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있다고 합니다.

 

  정말 다방면으로 활동하죠?

  자율방범대가 아닌 방범봉사대라고 이름을 정한 이유를 알겠네요. ^^

 

  자율방범대는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자율방범대'가 바로 그것인데요.

 

 

  현재 서울 시내에는 영등포, 구로, 금천 등 6개 경찰서 산하에 외국인 자율방범대(현재 106명 활동 중)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설치된 이유는 거주하는 외국인이 많기 때문인데요.

 

 

  뉴스레터 취재팀은 세 번째로 구로구 가리봉 시장 안쪽에 위치한 '외국인 자율방범대'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구로경찰서 외국인 자율방범대는 총 34명의 중국동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원들은 이 지역에서만 5~6년간 거주한 사람부터 우리나라에 온 지 1년도 안 된 사람까지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지닌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지난 2005년 중국인들에게 출입국 관련 소식과 우리나라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각종 정보 제공을 했던 신화보사 대표 조명곤씨에 의해 최초로 결성되었습니다.

 

 

  대원들이 외국인 자율방범대에 지원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외국인 밀집지역은 '우범지역'이라는 시각을 바꿔보고자 외국인들이 자율적으로 방범 봉사대를 만든 것인데요.

 

  지난 2012년 '오원춘 사건'에 이어 최근 발생한 수원 토막살인 사건 등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민들의 '편견'이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미지 개선을 위한 마음이 무엇보다 컸다고 합니다.

 

  또 친목 도모 등 동포 간 적응 차원에서 가입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현재 외국인 자율방범대장을 5년째 맡고 있는 김용운(56) 씨는 중국 지린 성 출신 동포인데요.

  6년 전 우리나라에 와서 지금은 이곳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외국인 자율방범대의 가장 큰 장점은 언어소통입니다.

 

  외국인들은 백 마디의 우리나라 사람의 말보다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 외국인의 충고 한마디에 더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야간 순찰이 시작됐습니다!

 

  외국인 자율방범대의 순찰은 붉고 화려하게 불을 밝힌 시장통을 시작으로, 가로등 불빛이 잘 닿지 않는 으슥한 벌집촌 골목까지 빠짐없이 진행됐는데요.

 

  대원들은 만나는 중국동포들과 인사를 나누고, 중국어와 한글로 '음주 소란·단순폭행도 벌금형에 처해진다', '기초질서를 준수하자'라는 내용이 적혀 있는 홍보용 전단을 나눠주며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가리봉 시장 주변은 주로 술에 의한 폭행 시비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대원들은 중국동포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나 상점을 꼼꼼하게 챙긴다고 하는데요.

 

  그 때문인지 외국인 자율방범대가 활동해온 이후로 강력사건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가까이서 이들과 함께 순찰하다 보니 열심히 하는 모습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포들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이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는데요.

 

  앞으로도 쭉~ 활발한 활동 부탁드려요. ^^

 

 

  이렇게 자율방범대가 동네의 안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지자체마다 약간 차이는 있으나, 구청에서 지급되는 월 12만 원 내외의 운영비로는 초소의 시설비와 순찰차량의 연료비 등의 경비를 충당하기도 빠듯하다고 합니다.

 

  또한, 순찰에 필요한 경광봉과 호각, 야광 조끼를 경찰에서 일부분을 지원해 주지만 장비 부족과 노후화에 따른 어려움도 있다고 합니다.

 

  더욱 효율적인 방범 활동은 물론 대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말이 있죠.

 

  부족한 경찰의 인력 문제를 지역 주민들이 함께 나서 극복해가고, 고민하는 자율방범대의 모습을 보니 이제는 든든하기까지 합니다.

 

  추운 겨울!

  시린 추위에도 '우리 동네는 우리가 지킨다'는 일념 하나로 늦은 시간까지 경찰활동에 동참해 주시는 영원한 치안파트너 자율방범대원 여러분께.

 

  3만 5천 서울경찰 모두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동작) 담당 경찰관 골목길, 이제 동네 구석까지 책임진다

2014. 11. 18. 09:22

(동작) 담당 경찰관 골목길, 이제 동네 구석까지 책임진다


서울 동작경찰서에서는 주민들에게 더욱 나은 치안환경을 제공하기 위하여

범죄에 취약한 비좁은 골목길에 범죄 예방을 위한 담당 경찰관을 지정하였습니다.

이로써 동작경찰서 지구대, 파출소에 근무하는 316명의 경찰관은 각자 자신만이 담당하는

골목길을 부여받고 책임감과 애착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근무하게 되었어요~^^



팔도를 세 번 돌고, 백두산을 여덟 번 올랐다는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마음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범죄에 취약한 골목길을 찾고, 또 찾아서

만들어진 담당 경찰관 골목길 순찰지도, 일명 “동작경찰서 순찰 여지도”~^^



자신이 담당하는 길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범죄 걱정 없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명을 다 해 순찰하며, 행여나 문이 열린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남성지구대 김시영 경위예요~^^



평소 순찰이 어려웠던 이 골목길을 담당하는 노들지구대 홍종호 경위,

처음엔 자신이 담당하는 골목길에 대해 행여 조그만 사건이라도 발생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부담을 많이 느꼈지만, “내 길은 내가 지킨다”는 생각으로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근무에 임하게 되었다는데요~^^



우리 집이 가로등도 없는 외진 곳이라서 밤에는 많이 불안했는데,

내가 사는 집 앞 골목길을 담당하는 경찰관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은 후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고, 요즘 경찰관을 더 자주 보는 것 같다는 동네 아주머니~^^


혹시라도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골목길마다 담당 경찰관을 지정한 동작경찰서,

주민들이 감동하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동작 경찰이 될게요.

우리 동네 골목길, 오늘도 이상 무!!





(동작) 주민의 소중한 소리, 포돌이 경청함

2014. 10. 1. 14:20

주민의 소중한 소리, 포돌이 경청함


여러분들은 경찰관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나요?

학교 폭력 예방?

교통 불편 해소?

동네 불량배 척결?

정말 많은 의견이 있을 텐데요.

서울 동작경찰서 노량진지구대에서는

주민들의 이런 의견을 직접 청취하고, 실제 근무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하여

포돌이 경청함을 제작하였습니다!!



경찰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요?

그렇다면 고민 고민하지 마~~^^

바로 이것이 포돌이 경청함이에요.

경청함에는 볼펜과 종이를 비치하여 누구든

편하게 다양한 의견을 기재할 수 있어요.

주민들의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Go!! Go!!



노량진 관내 주택밀집지역 이곳, 저곳에 포돌이 경청함을 설치하였습니다.



기재된 주민들의 의견은

매일 정기적으로 취합하여 꼼꼼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포돌이 순찰함은 주민들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순찰차가 쉽게 들어갈 수 없는 비좁은 골목길에 설치되어 있어

주기적인 도보 순찰 효과까지 있어 빈집털이 예방 등 방범효과도 최고예요!!

이것이 바로 일거양득, 아닐까요?



주민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 감사드리며,

앞으로 순찰 등 치안활동을 강화하여 더욱 안전한 동네를 만들겠습니다!!


근린 생활치안확보를 위해 “균순공확” 계획을 실천 중인 노량진지구대,

균형적인 순찰활동 제공을 통한 공감 치안확보의 줄임말이에요~~^^

앞으로도 주민에게 한발 더 다가가 작은 소리에도 가까이 귀 기울여 듣고,

주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동작경찰서가 되겠습니다!!



「동네 조폭」 이젠 STOP!

2014. 9. 19. 11:19

 

  없는 살림에 차곡차곡 돈을 모아 드디어 1톤 트럭을 마련한 A 씨.

  사람이 많이 지나는 길목에 트럭을 정차시켜 간이 식탁 등을 설치하고,

  평소 자신 있어 하던 몇 가지 술안주를 만들어 손님에게 팔 준비를 합니다.

 

  (장사만 잘되면 빚도 갚고 해야지!)

  하지만 행복한 기분도 잠시.

 

  어느 날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험상궂은 남자가 와서 "자릿세를 내놓으라"며 다짜고짜 욕설하기 시작합니다. 트럭 안의 집기들을 마음대로 때려 부수고, 반항하는 남편을 도로 위에 내던지듯 팽개치며, 다음에 올 때까지 자릿세를 준비해 놓지 않으면 불법영업으로 신고할 거라며 협박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아니 심장이 터지도록 분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렇지만 신고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왜 신고를 하지 못했느냐고요?

 

  A 씨의 영업행위가 식품위생법에 저촉되고, 단속이 되면 많은 벌금을 내야 한다는 지인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트럭에 대한 대출금도 갚기 전에 벌금으로 내야 하는 돈이 무서웠던 A 씨는 그렇게 체념하듯 그 남자에게 자릿세 명목으로 돈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와 같은 사례! 왠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씁쓸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처럼 등장하는 장면이죠.

 

 

  팔, 다리 등에 문신을 하고 험상궂은 얼굴로 영세 상인들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돈을 갈취하거나 폭력을 행사해 지역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이 사람!

 

  이런 폭력배들이 동네에서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게 놔둬야 하는 걸까요?

  그러면 안 되죠!

 

 

  그래서 경찰이 나섰습니다!

 

  경찰은 지역 상인들을 상대로 한 금품 갈취범, 행패를 부리는 상습 무전취식 사범, 주취 폭력배, 주민을 상대로 반복적 위협을 가하는 자 등 서민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주는 동네 조폭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펼치기로 했습니다.

 

 

  이름하여 '동네 조폭 척결 100일 작전'

 

  이 특별단속은 지난 9월 3일부터 돌입해 12월 11일까지 100일간 전국의 모든 경찰관서에서 시행 중입니다.

 

  이에 서울경찰청을 포함한 경찰청 산하 각 지방경찰청 소속 경찰서에서는 동네 조폭 전담수사팀을 운영해 수사 전문성을 높이기로 했고, 지역 곳곳을 잘 알고 있는 지구대, 파출소 소속 경찰관과 함께 숨어있는 동네 조폭에 대한 첩보 수집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동네 조폭이 상습적인 불법 행위자임을 감안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엄정 처벌을 유도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동네 조폭 단속은 피해자의 신고가 관건인 만큼.

  이번 특별단속 기간에 한해서 동네 조폭에게 피해를 입고도 신고하지 못하는 영세업자들의 피해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가벼운 영업상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행정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바람처럼 서민들을 등쳐먹는 동네 조폭들이 조금씩 사라져 안전하고 행복한 동네가 되기를 소망해 보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여러 명의 피해자들에게 수년간 금품 갈취를 해오던 동네 조폭의 검거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서울 강남의 밤은 낮보다 더 화려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논현동, 삼성동, 역삼동 등에는 전국 최대 규모라고 할 만큼 수많은 유흥주점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죠.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 6팀 경찰관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 유흥주점에 조폭들이 개입해있진 않을까? 조폭들이 개입되었다면 불법영업을 하는 업주들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뜯어내고 있지는 않을까?"라고 말이죠.

 

  이번 사건은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지난 2월 강남 유흥가 일대를 순찰하던 강력 6팀 이정민 경장은 한 주점 앞 승합차에서 대기 중인 호스트바 남성 도우미(일명 '호스트빠 선수')를 발견하고 창문을 노크했습니다.

 

  "누구세요?"

  "경찰관입니다"

 

  승합차에 타고 있던 남성들은 자신들을 단속하러 나온 줄 알고 깜짝 놀라 술렁였지만, 단속 나온 게 아니라 동네 조폭으로부터 피해 당한 사실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왔다고 하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강남 일대에서 남성 보도방을 운영하는 업주들은 '강남선수협회'라는 단체에 가입되어 있는데 단체의 협회장인 피의자 김 모 씨(33)는 '국제 PJ파' 출신 조폭이라고 했습니다.

 

  협회장 피의자 김 씨는 2011년 1월부터 친목모임인 것처럼 이 단체를 조직했고, 보도방 업주들에게 회비 형식으로 매월 일정 금액을 납부받고 회비 내기를 거부하거나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불법 영업으로 신고하겠다며 협박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일삼는다고 했습니다.

 

  불법영업을 하고 있는 보도방 업주들의 약점을 이용해 갈취하고 있는 전형적인 동네 조폭임을 간파한 강력 6팀은,

  우선 '강남선수협회'에 소속된 보도방 업주와 주점 사장들을 상대로 피해 여부를 확인했는데요.

 

  처음에는 보복이 두려워 '갈취당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회비'라며 말하기를 꺼리는 업주를 수차례 설득한 끝에, 협회에 가입된 18개 업주 중 15개 업주가 매월 회비(보호비) 명목으로 15만 원씩을 납부하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위 사진은 협회장인 피의자 김 모 씨(33)가 업주들로부터 매월 회비 명목으로 입금받은 통장 내역인데요.

 

  피의자 김 씨는 이렇게 보호비 명목으로 협회에 가입된 15개 업주로부터  월 15만 원씩 26개월 동안 상납 받아 총 5,850만 원을 챙겼습니다.

 

  강력6팀은 이 계좌를 압수수색하여 분석하였고, 그 결과 협회에 소속된 업주 이외에 또 다른 피해자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인 남성 보도방 업주 최 모 씨(29)와 김 모 씨(29)는 2012년 2월부터 8월까지 보호비 명목으로 각 3,800만 원과 3,086만 원을 갈취당했고, 역시 유흥업소 사장 김 모 씨(56)는 같은 이유로 530만 원을 상납했습니다.

 

  피의자는 조직폭력배임을 과시하면서 보도방 업주 최 모 씨와 김 모 씨에게는 '불법 영업 사실을 경찰에 알리겠다'며 협박했고, 유흥업소 사장 김 모 씨에게는 '돈을 주지 않으면 남성 도우미를 공급해 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협박을 가해 돈을 갈취했는데요.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불법 영업 사실이 탄로날까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고 피의자 김 씨에게 돈을 줬다고 했습니다.

 

  피의자 김 모 씨는 이러한 약점들을 이용해 총 1억 3천여만 원을 갈취했습니다.

 

 

  강력6팀은 피의자 김 모 씨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상습 공갈)과 폭행 등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지난 8월 27일 주거지인 전남 나주에서 검거해 구속했습니다.

 

  이번 사건 해결의 핵심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진술 덕분이었는데요.

  작은 상처를 두면 곪듯이 보복이 두려워 참는다면 결국엔 더 큰 피해가 뒤따른다는 걸 느끼게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주민의 신고가 핵심입니다!

 

  시민 여러분!

  동네 조폭 단속은 경찰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측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자나 시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꼭! 필요합니다.

 

  그동안, 일부 불법행위를 수반한 영업주들의 경우 자신들의 불법행위가 발각될 것을 우려하여 피해 신고를 꺼린 채, 동네 조폭들의 횡포를 참고만 있는 경우가 많았을 텐데요.

 

 

  아직도 이러한 피해자분이 계신다면 이번 특별단속 기간에 형사면책 제도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세요. 아울러 일반 시민께서도 동네 조폭에 대한 적극적인 제보나 신고를 당부드립니다.

 

 

  더욱 안전하고 행복한 서울이 되는 그 날까지 서울경찰이 더욱 열심히 뛰겠습니다. 함께 응원해 주세요^^ 화이팅!

 

  • 나이트 2014.09.21 20:21

    그런데 그 불법 유흥업소 업주들도 단속이나 구속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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