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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이야기/현장영웅 소개

현장경찰관을 만나다 ① 폭주족 수사의 '달인' 장흥식 경감

서울경찰 2013. 1. 30. 11:06

 

 

현장경찰관을 만나다 ① 폭주족 수사의 '달인' 장흥식 경감

 

 

장흥식 경감(46)은 본명보다 장반장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올해로 경찰에 입직한 지 딱 20년이 된다는 그는 수년간의 폭주족 수사로 여의도 폭주족들 사이에선 이미 전설로 회자될 정도이다. 지난 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70대 노인의 조선족 부인 살해사건으로 기자와 인연을 맺은 그는 일반적으로 형사 하면 떠올리는 험상궂은 외모에 날카로운 눈매가 아닌 서글서글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폭주족들 사이에서 장반장으로 통한다는데, 폭주족 수사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원래 오토바이에 관심이 되게 많았다. 92년에 경찰에 입직하여 94년부터 대학로 앞 동숭파출소에서 근무하였는데, 그곳은 당시 폭주족들의 성지로 통했다. 순찰을 돌면서, 폭주족들이 대학로에서 묘기를 부리고 행인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면서 단속도 많이 했지만 도저히 근절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그러던 와중 815일이면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던 폭주족들의 난동으로 직원들이 부상을 당하고 언론의 질타를 맞는 모습을 보면서 폭주족 수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오토바이를 좋아하여 거금을 들여 오토바이를 직접 사서 몰고 다녔다는 그는 20년 간의 경찰생활 동안의 매 승진을 특진으로 기록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지금까지 단속한 폭주족 수만 2500여 명에 달한다는 그는 단속 일변도의 기존의 수사 기법을 벗어나 인터넷 카페를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폭주족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일회성의 단속만을 통한 폭주족 검거로는 폭주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폭주족들의 인터넷 카페를 통한 수사이다. 폭주족들이 활용하는 인터넷 카페에 접속해보니 폭주 날짜와 장소 등 각종 정보와 사진 등이 많이 있었다. 처음에는 가입하기가 까다로워 애먹었으나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획수사를 하였다. 터널 유인 작전, 지하차로 유인 작전 등의 작전을 통해 폭주족들을 유인해서 검거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하여 2010년에는 112신고 67%감소, 청소년 사망 47%감소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폭주족들과도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하는데

 

폭주족들과 많이 만나게 되면서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3단계로 나누어 폭주족들에 대응하게 되었다. 1단계로는 불법행위를 일삼는 폭주족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단속과 수사를 해서 처벌을 받게 하고, 2단계로 잠재적으로 폭주족이 될 수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오토바이 폭주의 위험성을 알리는 등의 예방활동을 했으며, 3단계로 폭주로 처벌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안전교육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사후관리를 하여 다시 폭주에 뛰어들지 못하게 막는 활동을 했다. 그리하여 폭주족들이 모여 있는 집결지에 가서 라면을 끓여주고 초코파이도 사주고 했다. 그렇게 하였더니 언젠가부터 나를 장반장님 하고 부르며 따르고……. (웃음) 주말마다 뚝섬 가서 애들과 놀아주고 좋게 타일렀더니 폭주가 근절되기 시작하였다.

 

 

-폭주족 수사를 하면서 보람을 느꼈거나 안타까웠던 일이 있다면?

 

항상 보람을 느꼈다. 뚝섬가면 이들이 지금은 폭주를 끊고 대신 농구를 하며 나를 알아보고 반장님 컵라면 하나 사주세요 한다. 도로를 질주하던 청소년들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보람을 느낀다. 안타까웠던 일은 폭주족들이 나타날 것을 대비하여 순찰을 돌고 있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폭주족들이 나타났다는 무전을 받고 급히 출동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 보니 오토바이 두 대가 중앙선을 넘다가 마주오던 화물차와 충돌하여 청소년 두 명이 불구가 된 일이 있었다. 순간적인 일탈행위로 인하여 평생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는데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출동해서 이들을 막았다면 구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이들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남는다.

 

이야기를 하는 장반장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한 때 장반장 하면 동네에서 중식 배달을 하는 배달부들도 다들 알고 인사를 청할 정도로 오토바이족들 사이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지금도 경찰서를 찾아와서 사인해 달라고 하거나 악수를 청하는 등 감사의 인사를 하려는 전직폭주족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핸드폰 주소록에 폭주족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전직 폭주족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장 경감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사회적인 관심임을 덧붙였다.

 

얼마 전 전직 폭주족이었던 사람이 찾아와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에게 너 그때는 폭주가 인생에 전부였잖아, 지금 생각해 보니까 어떠냐?’ 하니까 아 반장님 창피해요하면서 부끄러이 웃는다. 폭주족들에게도 사회적인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오토바이를 아예 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안전하게 타도록 유도하는 것은 가능하다. 경찰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청소년 보호단체 등이 협력하여 청소년들이 오토바이를 통해 다른 범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유민재 리포터. ixx@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