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도로와 교량, 터널 등 다양한 지형지물 극복 수단을 갖춘 현재와 달리,
과거의 교통로는 주어진 자연환경을 이용하고 때로는 그에 순응하며 만들어졌습니다.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 잡은 한양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사대문 밖을 나와 지방으로 가려면 산과 강 같은 자연의 방벽을 지나야 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중랑구는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진 않지만,
그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한양에서 동쪽으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만 했던 관문입니다.
* 사대문 주변 10리 이내, 다만 중랑천, 홍제천, 한강 등 자연 경계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임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열한 번째 이야기!
오늘은 중랑구와 중랑경찰서를 찾아갑니다.
중랑경찰서의 옛 명칭은 태릉경찰서로, 1973년 12월 19일 중화동 임시청사에서 개서,
현재의 중랑구와 노원구에 해당하는 넓은 구역의 치안을 담당했습니다.
이후 담당 지역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치안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1990년 9월 19일 노원경찰서가 신설되어 노원구 지역 파출소를 이관했고,
곧이어 10월 5일 중랑경찰서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중랑경찰서의 관할 구역은 중랑구 전체로,
6개 법정동(망우동. 면목동, 묵동, 상봉동, 신내동, 중화동),
16개 행정동(망우본동, 망우3동, 면목본동, 면목2동, 면목3·8동, 면목4동, 면목5동, 면목7동, 묵1동, 묵2동, 상봉1동, 상봉2동, 신내1동, 신내2동, 중화1동, 중화2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랑경찰서는 4개 지구대(망우, 용마, 봉화, 중화)와 4개 파출소(면목본동, 면목삼팔, 상봉, 먹골)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소는 아래 표를 참고해 주세요. ^^
구분 | 기관명 | 주소 |
경찰서 | 중랑경찰서 | 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역로3길 40-10 |
지구대 | 망우지구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391 |
용마지구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동일로 566 | |
봉화지구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로 177 | |
중화지구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중랑천로 146 | |
파출소 | 면목본동파출소 | 서울특별시 중랑구 상봉로 27 |
면목삼팔파출소 | 서울특별시 중랑구 사가정로41길 45 | |
상봉파출소 | 서울특별시 중랑구 중랑천로 69 | |
먹골파출소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7길 1 |
중랑구는 동대문구에서 1988년 분구한 비교적 신생 자치구인데요.
구 서쪽을 흐르고 있는 중랑천에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습니다.
중랑천은 총 연장 34.8Km에 평균 폭이 8.61m에 이르는 서울시에서 가장 긴 하천으로,
우이천, 묵동천, 당현천 등 13개의 지류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수심이 얕은 곳이 많아 징검다리로 왕래할 수 있는 지점이 다수 있을 정도지만.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의 경계로 삼았을 만큼 중요한 하천인데요.
상류엔 속계교(송계교, 현재의 월릉교 위치로 추정)가 건설되어 왕들의 행차를 도왔고,
하류의 전곶교(살곶이다리)는 송파나루 방향으로 연결된 조선시대 가장 긴 다리였답니다.
과거 인근 주민에게 생활용수를 제공하며 삶의 터전이 되어준 중랑천은
이제 양옆 둔치에 설치된 각종 운동시설과 산책로로 휴식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중랑구의 서쪽과 북쪽을 유유히 흐르는 중랑천과 묵동천이 장식하고 있다면,
그 동쪽과 남쪽은 용마산(348m)과 망우산(282m)이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용마산은 서울의 4외산 중 하나로, 아차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아차산과 용마산을 별개의 산으로 볼 수도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망우산과 인근의 봉화산을 포함해 전부 아차산이라고 불렀답니다.
맑은 날 용마산에 오르면 서울 동북쪽 전역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데
능선을 따라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연계 산행의 풍광이 각별합니다.
지금은 계단과 보행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산행을 즐길 수 있지만,
이러한 등반 보조 수단이 없던 예전의 용마산은 서울 동부의 전략적 요새*였습니다.
* 광진경찰서 편(링크)에도 소개된 고구려 보루군이 용마산까지 이어져 있음
이러한 자연 장애물이 있는 지역이 수도로 선택된 것은
소통과 교류의 이점보다 방어와 보호의 기능이 당시엔 더 중요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나라는 산악지형이 많기에 예로부터 다양한 군사 통신체계가 이용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봉수, 파발, 역참 제도가 있는데,
각각의 장단점이 극명해 어느 하나만 운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중 봉수는 횃불(烽)과 연기(燧)로 긴급한 소식을 전달하는 국가 기간통신망이었는데요.
조선시대엔 5개의 직봉(봉수 제1~5로)을 중심으로 간봉이 보조하는 방식으로 뻗어나가
전국 총 600개 이상의 장소(주로 산지)에 봉수대가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봉수는 어디서든 12시간 내에 목멱산(남산)으로 보고되는 것을 목표로 운영했다니,
신속한 통신체계임은 분명했지만, 전화 · 전신이 도입되며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습니다.
이미 폐지된 제도이지만, 봉수의 흔적은 전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봉수가 설치된 산이 많았기에 봉화산은 전국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명칭으로,
당장 인터넷 포털에 검색해 보면 70곳이 넘는 봉화산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중랑구 봉화산(159m)도 그 유래가 정상에 있던 봉수대인데요,
직봉인 봉수 제1로에서 목멱산의 경봉수(京烽燧)로 이어지는 마지막 봉수입니다.
전동 휠체어도 오를 수 있는 데크 길을 따라가면 쉽게 정상에 다다를 수 있고,
낮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전망이 좋아 주민 산책로로 인기 있습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봉화산의 옛 이름은 가구산(加仇山)으로 추정된다지만,
봉수대의 존재를 알리는 취지에서 현재의 이름에 더 마음이 갑니다.
과거엔 봉화산 정상에 설치된 5개의 봉수대가 5단계의 군사 신호*를 전파했으나,
지금은 1개 봉수대만을 복원해 그 상징성을 전하고 있습니다.
* 평시 1개, 적 발견 시 2개, 적 접근 시 3개, 적 침범 시 4개, 접전이 벌어지면 5개 점화
앞서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한양에서 경기 동부와 강원도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필히 중랑천을 건너야만 했고, 이어지는 망우산 역시 넘어야 했습니다
망우산을 넘기 위해 이용된 도로는 바로 망우산 북쪽 능선에 있는 망우리 고개인데요.
태조 이성계가 묻힌 건원릉을 포함한 아홉 개의 능(동구릉)이 고개 너머에 있었기에
조선시대 내내 왕들이 능행차에 사용했던 유서 깊은 도로입니다.
‘망우’ 명칭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본인의 능지를 정하고 환궁하던 중 망우리 고개 위에서 능지를 바라보니
진정 명당이었기에 “이제 근심을 잊게 됐다.”라고 한 데서 망우(忘憂)라 되었다는데요.
사실, 건원릉 터는 이성계 사후에 선정된 것이니 후대에 붙여진 이야기라 봐야겠지요.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전설이 만들어질 정도의 명당이었기 때문에
망우리 고개 인근은 예로부터 묘역이 형성되기 좋았는데요.
이렇게 형성된 묘역은 한때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리웠지만,
현재는 울창한 숲에 역사와 문화가 깃든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했고,
만해 한용운, 시인 박인환 등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사들이 이곳에서 우리를 반깁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내에는 유관순 열사 합장묘역도 있습니다.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유관순 열사는
당시 일제에 의해 이태원 공동묘지에 묘비도 없이 매장되었는데요.
1936년 이태원 공동묘지를 일제가 군사기지 건설 목적으로 폐쇄하며
무연고로 판명된 28,000여 기의 묘와 같이 화장한 후 이곳에 합장된 것입니다.
유관순 열사도 광복을 맞이한 후손을 보며 근심을 잊고 영면하셨으면 합니다.
중랑경찰서 산하 지구대는 다 그렇지만, 망우지구대의 하루도 참으로 치열한데요.
지구대 소속 순찰차 4대가 그야말로 쉴 틈이 없이 움직입니다.
택지지구 개발로 담당 구역이 넓어진 데다가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이 혼재해 있어
접수되는 112 신고가 양도 많지만, 그 종류도 실로 다양합니다.
게다가 모든 순찰차가 출동을 나간 상황에 추가 사건이 발생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망우지구대 경찰관들은 가급적 자체적으로 소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신고를 받고 지체할 수 없기에 인근 지구대에 지원 근무를 요청할 때도 많은데요.
이와 같은 지원 근무의 활성화가 중랑경찰서 치안유지의 원동력이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도 지역 치안유지와 범죄예방 활동에 여념이 없는 망우지구대 경찰관 여러분,
열정적인 자세로 근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중랑구에서 소개해드릴 마지막 명소는 용마폭포공원입니다.
이 부지는 본래 서울특별시 산하 역청사업소에서 운영하던 채석장이 있던 곳으로,
수십년 간 용마산 기슭에서 골재를 채취해오다 1988년 올림픽과 함께 폐쇄되었습니다.
채석장이 공원이 된 것은 1991년입니다.
심각하게 훼손된 서쪽 산자락엔 인공폭포가 설치되며 주민 휴식처로 재탄생했는데요.
폭포의 높이는 최대 51m로, 한때 아시아 최대 인공폭포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공원엔 더위를 피해 그늘막 텐트와 돗자리를 펴 놓고 쉬는 분이 많이 계셨습니다.
한여름 밤,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수 줄기를 보며 망중한의 호사를 누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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