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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이야기/현장영웅 소개

경찰의 뿌리 '임시정부 경찰' 당신들을 기억합니다

서울경찰 2019. 4. 5. 10:47

 

 

 

 

"경무국은 민활하고 용감한 활동을 계속 이어온 결과...

동포의 생명과 재산을 협박하던

'강도배'들은 그 그림자를 구경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일본정탐 '하나다 나카가와' 등은 자신들이 배치했던 정탐선이

끊어져서 매우 당황하며..."

 

"그 자 한 사람이 목표가 아니고, 그 연루자를 모두 없애버리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관련자를 은밀 조사하기까지는 밝힐 수 없다."

 

"당국에서는 앞서 이 자를 불러 신문한 일도 있었으나...

상당한 주의만 주고 불문에 부쳤더니..."

 

도산 안창호 선생의 주도로 창간된 상해 독립신문 「경무국 방문기」에

동포사회의 치안을 지키고, 일제 밀정의 독립운동 방해 공작을 차단하는

임시정부 경찰의 활약상이 잘 묘사되어 있는데요.

 

*상해 독립신문은 1919. 8. 21. 창간되었으며,

일제의 끊임없는 탄압과 자금 사정으로 1926년 폐간되었습니다.

 

 

 

 

임시정부 법령에 의해 정식 치안조직으로 설치·공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찰은

임시정부 초기 사실상 유일한 실행 조직으로서,

일제의 밀정을 방지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는데요.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심장부로서 항일투쟁을 이끌어가는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게다가 많은 임시정부 경찰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무장 의열 투쟁에 참여하기도 하였죠.

 

 

 

 

대표적 인물인 백범 김구 선생은 초대 경무국장으로서

임시정부 경찰의 기틀을 확립하였습니다.

 

우리 역사상 최초 민주 공화제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경찰,

이로써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 역사상 1호 민주경찰이 된 것입니다.

 

 

 

 

김구 선생은 1923년 내무총장 취임 후 그해 12월 17일 임시정부 산하

상해 교민단에 치안조직인 의경대를 창설하셨습니다.

 

교민사회 치안유지와 일제 밀정 색출 등의 임무를 수행한 의경대는

많은 의열 청년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경로가 되기도 하였는데요.

 

1925년 이승만 대통령 탄핵 이후 임시정부가 내홍을 겪으며 그 활동이 침체되자

김구 선생은 1932년 스스로 의경대장이 되어 독립투쟁을 이끌기도 했었죠.

 

이러한 임시정부 경찰의 헌신은 광복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광복이후 경무부 교육국에서는 경찰교양지 「민주경찰」을 창간하게 되는데요.

 

김구 선생은 축사 '자주독립과 민주경찰'을 통해

"사회혼란 극복의 노고를 치하하며 애국 안민의 신 경찰이 되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 후 국립경찰 2주년을 맞이하여 「민주경찰」 특호('47. 10월호)에

"祝 民主警察 特號 刊行, 國 民의 警鐘이 되소서" 라는 축하 휘호를 선물하였는데요.

(축 민주경찰 특호 간행, 국 민의 경종이 되소서)

 

그날의 축하 휘호에 담긴 메시지는

오늘날 「민주·인권·민생경찰」이라는 대한민국 경찰정신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통한의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호하고

독립을 위한 끝없는 헌신을 보여준 우리 대한민국 경찰.

 

마침내 이뤄낸 광복 이후 혼란한 상황에서도

김구 선생을 포함한 임시정부 경찰은 애국안민의 길에 앞장섰으며,

민주 · 민생 · 인권을 위한 그 정신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안타깝게도 아직 많은 임시정부 경찰 영웅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기억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우리 경찰은 각종 사료, 역사적 고증을 통해

현재까지 125명의 임시정부 경찰을 발굴해냈으며,

아직 확인되지 않은 마지막 한 분까지

나라를 위해 헌신한 경찰 혼으로 기록에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모든 분들이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경찰의 뿌리 「임시정부 경찰」, 당신들을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