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중심 · 현장 중심
안전한 서울, 질서있는 서울
자세히보기

우리동네 경찰서/우리동네 경찰서

(종암)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상해로 떠나는 시간

종암홍보 2019. 2. 14. 14:10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이 되는 해 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식민지배를 받는 아픈 역사 속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우리 선조들의 피나는 노력.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가까운 나라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 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임시로 중국 상해(上海, ShangHai)에서 조직·선포된 정부입니다.

 

당시 상해는 프랑스의 조계지였는데,

1919년 3·1운동 직후 일본의 식민통치에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기관의 필요성을 느낀 애국지사들이

상해에 집결하여 임시의정원을 구성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범 김구선생님 역시 상해임시정부의 구성원이었고,

나아가 초대 경무국장으로서 우리 역사상 1호 민주경찰이기도 한데요.

 

1926년 김구 선생이 국무령에 취임 후 1932년 1월 이봉창의 일왕 폭살미수 사건,

같은 해 4월 윤봉길의 홍구공원사건 등을 지도하는 등 강력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습니다.

 

1932년 5월 임시정부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절강성 항주(Hangzhou)로,

1937년에는 다시 강소성 진강(ZhenJiang)으로 옮겨 항일전을 펼쳤습니다.

 

1940년에는 "건국강령 3장"을 발표하여 광복군을 강화한 후,

1944년에는 김구를 주석으로 선출하여,

미국군과 함께 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다가 해방을 맞았습니다.

 

우리 경찰에도 광복군 출신이 있는가 하면,

1972년 경찰의 공식 역사서인 '한국경찰사'를 편찬할 때부터

임시정부 경찰을 한국경찰사의 분명한 요소로 기록하고 있답니다.

 

그 전에도 경찰이 있었지만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제를 선포한 임시정부의 경찰이 최초의 민주공화제 경찰이 되는 것이고

한국경찰의 정신과 이념의 원천이 되는 '민주경찰'의 뿌리가 되는 것이죠.

 

한번 쯤 들어본 나석주 의사도 경무국원이자 의경대원으로 활동을 하며

임시정부 경찰의 기틀을 확립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기 전 있었던 임시정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나요?

 

 

 

 

 

임시정부 유적지 입구에는 중국어와 한국어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임시정부 유적지에 입장하려면 입장료를 내야합니다.

1인당 20위안(약 3600원 정도)이고,

아쉽게도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을수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라는 의미라 애써 좋게 생각해봅니다.

 

 

 

[흥사단연례대회]

 

 

 

[윤봉길 의사]

 

 

나라를 지키기 위해 타국에서도 목숨을 바쳐 희생하신 분들을 생각하니 숙연해지네요.

 

경찰역사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임시정부의 역사, 잘 보셨나요?

 

경찰청에서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TF팀을 구성하여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들을 발굴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임시정부 경찰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제 경찰,

임시정부 초, 중기 유일한 실행조직,

독립운동의 심장부로써 임시정부가 정립되고 유지대도록 수호하는 역할,

임시정부 침체기 의열투사들을 길러내는 역할로써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삼일절도 다가오는 만큼,

임시정부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