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에서 이 전쟁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전쟁이 발발한 지 6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영화나 TV를 통해 그때의 치열하고 가슴 아팠던 현장을 접하기도 하는데요.
3년여 세월에 걸친 치열했던 이 전쟁기간에 아이스하키게임을 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 아이스하키라는 종목은 아직도 조금은 낯설기만 할 수 있는데요. 아이스하키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 1875년 캐나다 맥길대학의 학생들이 얼어붙은 강에서 두 팀으로 나뉘어 시합을 벌인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스하키의 종주국 캐나다도 6·25전쟁에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25,678명의 군인들이 참전하였고, 6·25전쟁 중 전사 312명, 부상 1,212명이 고귀한 희생을 하였습니다.
[부산 UN기념묘지. 이미지출처: 지식백과 두산피아]
6·25전쟁이 이어졌던 1952년 3월.
당시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던 임진강 얼음판 위에서는 캐나다 참전용사들의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두터운 양말과 장갑, 티셔츠를 차려 입고 당시 꽁꽁 얼어붙은 모퉁이를 ‘임진 가든스’라 부르며 하키 게임을 즐김으로써 전쟁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날씨가 임진강이 꽁꽁 얼 정도로 추워 캐나다 현지의 날씨를 연상케 했다고 하는데요. 게임을 하던 캐나다 부대원들은 마치 고국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유럽인들에게 축구처럼 그들에겐 아이스하키는 국민 스포츠였으니까요.
[1953년 임진강에서 열렸던 아이스하키 경기 모습. 이미지출처: 국가보훈처]
주한 캐나다인들은 치열했던 전쟁의 현장에 있었던 추억의 아이스하키를 기념하기 위해 2000년부터 한국에서 ‘임진 클래식 아이스하키’ 대회를 열었습니다. 대회의 우승자에겐 트로피가 수여되었는데요. 대회가 가진 역사적 의미만큼 우승 트로피 또한 캐나다인들에겐 소중한 보물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트로피가 사라져 버린것입니다.
15년 전 이 트로피를 만든 앤드루 몬티스 홍익대 영어영문학과 교수(45)는 아이스하키 대회를 후원하는 이태원동의 한 술집의 뮤직박스에 이것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늦은 오후, 가게가 북적이는 사이 트로피가 사라져 버린 것 입니다.
이것이 없어진 것을 안 몬티스 교수는 용산경찰서에 신고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트로피!! 내겐 너무 소중한 트로피가 없어졌어요. ㅠㅠ”
“트로피...라구요? 트로피라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 진 거 아닌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말 없어서는 안되는거에요. 꼭 찾아야 합니다!”
신고를 받은 용산경찰서 강력 3팀장은 너무나 큰 피해를 입은 것 같이 말한 피해자 몬티스 교수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사라져 버린 트로피가 가진 그 의미를 알게 된 강력3팀은 그때서야 몬티스 교수의 목소리를 이해할 수 있었고 꼭 찾아서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건을 맡은 강력3팀은 우선 사라져버린 장소의 주변 CCTV를 모두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없어졌던 장소의 입구에서부터 주변 CCTV를 모두 찾아본 끝에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인근의 술집 CCTV에서 용의자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남성들은 인근 술집에서 친구들로 보이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트로피를 들고 자랑을 하는 듯 보였고, 트로피가 가진 의미 또한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강력3팀 양명수 형사는 CCTV의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용의자를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경기도 어느 곳 에서 근무 중인 용의자W를 찾아냈습니다.
강력3팀에 출석한 W는 “잘 모른다. 트로피 갖고 놀긴 했지만 가져가지는 않았다”며 오리발을 내밀었습니다.
몬티스 교수는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주한 캐나다대사관까지 찾아가 하소연했습니다.
그런데 대사관에서도 이 트로피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유명한 것이었죠. 캐나다의 6·25전쟁 참전을 상징하기에, 1년에 한 번씩 캐나다 현지에서 열리는 한국전 기념 아이스하키 대회에서도 우승 트로피로 쓰고, 6·25전쟁에 파병됐던 영웅들과의 숱한 기념사진에도 등장을 했습니다.
이것을 캐나다인이 아닌 다른 외국인이 가져갔으니, 몬티스 교수는 훔쳐간 용의자의 국가의 한국 책임자에게 찾아가 항의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습니다. 자칫하면 우리나라에서 양국의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들은 강력 3팀장은 용의자 W를 재소환하고 그 자리에 몬티스 교수를 동석시키기로 했습니다. W를 만난 몬티스 교수는 “처벌을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 캐나다인들에게 너무도 소중한 트로피! 제발 그 트로피를 돌려달라”며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눈물로 호소하는 몬티스 교수의 말을 들은 용의자 W는 이 말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W는 트로피를 가져간 외국인B 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B는 한국에서 만난 용의자W와 트로피를 가지고 술집에서 만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국인 미국 알래스카로 돌아가면서 트로피를 가져간 공범이었던 것입니다. 연락을 받은 공범B는 항공우편을 통해 익명으로 트로피를 경찰서로 보냈습니다.
몬티스교수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트로피는 이미 알래스카에 가 있었으니까요.
[트로피를 되찾은 몬티스 교수. 출처:동아일보]
너무도 간절히 원하던 트로피를 찾은 몬티스 교수는 잃어버린 가족은 만난 듯 입을 맞추며 연거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강력팀으로 우편물이 전달되었습니다. 큰 액자에 들어 있는 진심이 묻어나는 감사의 메시지, 그것은 바로 주한 캐나다 대사 에릭 월시의 감사 메시지였습니다.
양명수 경사님과 용산경찰서 담당 수사관님들께
주한캐나다대사관을 대신하여, “임진강 컵” 트로피를 제자리에 돌려놓는데 보여주셨던 뛰어난 헌신과 확고한 투지에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임진강 컵” 트로피는 수십 년 전 한국인을 돕고자 희생을 하였던 수많은 캐나다 참전용사들의 자부심과 추모의 상징이었습니다.
귀하는 캐나다 역사의 보물 같은 상징을 보존한 것 뿐 아니라, 캐나다와 한국의 역사적 유대를 더 강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주한 캐나다대사 에릭 월시
감사장을 본 양명수 형사는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강력반 형사 10년, 도난당한 많은 물건을 접하였습니다. 절도 피해자에겐 피해품(도난당한 물건)을 제자리로 가져다 놓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물건의 가치는 재산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그것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이번 사건으로 새삼 느끼게 되었고, 범인을 잡으려 집요하게 추적했던 일련의 노력이 국가 간 갈등을 회복하고 유대관계를 강화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자부심 또한 느꼈습니다.
우리 강력반 형사들에게는 크고 작은 많은 사건들이 접수되고 있습니다.
2015년은 피해자보호 원년의 해! 눈물을 흘리던 피해자가 물건을 되찾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은, 힘들고 지친 업무에 피로회복제와도 같았습니다.
이번 사건은 임진강 트로피가 가진 역사적 가치 만큼이나 우리 경찰관에겐 피해자를 향한 귀기울임과 정성을 다하는 자세가 그 가치를 보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고 실천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강력3팀은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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