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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이야기/경찰의 새 이름, 인권경찰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가정폭력에 대한 통념 깨기, 서울경찰이 함께합니다.

서울경찰 2015. 6. 11. 08:59

 

  당신이 생각하는 가정폭력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이 이미지들은 포털에 가정폭력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영화 모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영화와 같이 대중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는 '가정폭력' 이미지들은 우리의 통념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것을 다시 재구성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텍스트인데요.

 

  악마와 같은 가해자,

  어두운 방에서 온몸과 얼굴에 피멍이 든 채 무기력하게 맞는 피해자.

  이런 이미지들을 보고 있으면, 가정폭력은 정말 사라져야 할 사회악(惡)이라는 점에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그런데, 막상 나한테, 아니면 내 친구, 내 누나(또는 언니)에게 가정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별로 없으시죠.

  정말 '저렇게 나쁜 것'이 없기에, 나같이 평범한 사람의 주변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여성이 보이시나요?

  사력을 다해 흘러가는 시간을 부여잡고자 노력하고 있죠.

 

  그녀의 절실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바로 40시간이 지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예정된 운명에 있습니다.

  왜 40시간이냐고요?

 

  (사)한국여성의전화가 2014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전남편,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폭력을 입고 목숨을 잃거나, 잃을 뻔한 여성이 모두 209명으로 밝혀졌습니다.

  최소 1.7일(40.8시간) 만에 한 명,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까지 합친다면, 훨씬 더 많은 여성이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준하는 관계 내 폭력으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 우리에게 40시간이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나요?

  이틀에 조금 못 미치는 시간.

  주말을 예로 들어 볼까요. 느지막한 아점과 영화 한 편을 즐기고, 밤늦도록 TV 삼매경에 빠진 토요일, 여유로움으로 맞이한 일요일 아침을 지나 어느새 오후, 돌아오는 월요일을 안타까워하며 마지막 저녁은 뭘 먹지? 하고 고민할만한 정도의 시간에 한 여성은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조금 실감이 되시나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정폭력이 일상화되어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시죠.

  아마 쉽게 받아들이긴 어려울 듯합니다. 필자 역시 그랬으니깐요.

 

  「2013년 가정폭력 전국 실태조사」 결과, 부부폭력 발생률이 45.5%를 넘어섰다는 것을 보면서도 '에이~ 진짜? 내 주변엔 없는데?' 싶어 갸우뚱해 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속마음이죠.

 

  그러다 보니, '나 같은 보통 사람'에 의해 '지금,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 '아주 나쁜 사람'들에 의해 '아주 먼 곳'에서나 생길만한 그런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나쁜 가정폭력이 나나 내 주변 사람들에게 발생하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해 처벌받도록 하겠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 본인의 가정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할 경우 55%가, 이웃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할 경우 55.6%가 신고의사를 보임(여가부, 「2013년 가정폭력 전국 실태조사」)

 

  하지만, 실제 가정폭력을 경험하게 되면, 위의 예상대로 행동할까요?

  실제 부부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단지 1.3%만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무려 98.2%의 사람, 즉 대부분의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예상과 실제 반응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부폭력 경험자들에게 물어보자,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61%)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폭력'은 저기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쁜 가정폭력'이라는 범죄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만들고, 피해자들을 더 고립시키며,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폭력,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뭔가 강해 보이고, 가정폭력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여자경찰관도 어느 시점, 어느 상황에서는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이 배운 똑똑한 사람은,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은, 덩치가 큰 사람은,

  배우자로부터 평소 사랑받는 것 같은 사람은,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편견을 버려주세요.

 

  많이 배운 똑똑한 사람은,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은, 덩치가 왜소한 사람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한 사람은,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없다는 편견을 버려주세요.

 

  저 포스터를 보면서, 놀라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신가요?

  '여자 경찰관의 멍자국이 불편하다' 혹은 '어떻게 제복을 입은 여자 경찰관을 이렇게 이용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야말로, 가정폭력은 특정 그룹의 사람(예를 들면 경찰관)에게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의 대명사라는 점을 이야기 하고자, 그리고 그런 편견에 반대하고자 이번 캠페인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런 편견들이 내재된 가정폭력이 사회 밖으로 나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가로막는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심각하고, 생각보다 일상화된 가정폭력.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지난 2월, 각종 커뮤니티를 비롯한 SNS에서 화제가 된 미국 여성 레슬리 모건 스타이너의 테드(TED) 강연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실제 가정폭력의 피해 경험자였던 강연자는 "왜 가정폭력 피해자는 떠나지 않을까?"라는 제목으로 가정폭력의 메커니즘을 잘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하버드대 학사 · 와튼 경영대학원 석사 학위를 가지고 직작생활의 대부분을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에서 보낸 그녀가 '정신적 동반자(Soulmate)'라고 할 정도로 사랑했던 남자에게 탄환이 장전된 총으로 협박과 폭행을 당한 것이 무려 2년이 넘는다는 게, 믿어지시나요?

 

  가해자를 떠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통념상 "비정형적 피해자"일 수 있지만,

  가정폭력의 조짐과 그 양상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점에서 가장 "전형적 피해자"였다고 말하는 그녀가 전하는 가정폭력 메커니즘.

 

  첫째, 가해자는 '사랑'으로 피해자를 유혹하고 매료시킵니다.

  그 여성의 모든 것을 사랑, 심지어 숭배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쌓아 '사랑'이라는 판타지를 만들죠.

 

  둘째, 피해자를 육체적, 금전적, 정신적으로 고립시킵니다.

  친구들, 직장, 심지어 가족들에게서 점차 멀어지게 하며, 가해자에 대한 의존도를 높입니다.

 

  셋째, 이때 즈음, 첫 폭력이 가해집니다. 가해자는 실수였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다짐으로 피해자를 안심시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죠. 더 심한 폭력이 더 자주 가해집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가 만든 잘못된 '사랑'이라는 환상 속에서 살게 된 그녀는, 자신의 사랑으로 '문제가 많은 남성'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계속 참아냅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보다 더 고립된 그녀는 '그가 정말 자기를 죽일 수도 있겠다'는 강한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그 두려움이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미지옥과 같은 가정폭력 메커니즘을 끊어내려면 어디에서 출발해야할까요?

 

 

  바로, 첫 번째 폭력이 시작된 바로 그때입니다.

 

  부부 사이에, 또는 부자(모자) 사이에 발생하는 우발적 폭력 상황 모두를 '가정폭력'이라고 이름 붙이고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가정'이라는 가장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비가시화될 가능성이 훨씬 높기에, 그 특수성에 걸맞은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폭력성까지 용인해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의 도움을 받아 폭력 성향이 다시 분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 사랑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서울경찰이 가정폭력 근절을 위해 여성인권진흥원과 손잡고 마련한 '가정폭력 OUT' 릴레이 포스터는 여기까지입니다.

 

  '폭력'이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공간인 '가정'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

  그래서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가정폭력'의 이미지는 상존하지만,

  그것은 단지 통념에 불과할 뿐, 현실에서 여성들에게 발생하는 가정폭력의 실상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심지어 '가정폭력은 이럴 것이다'는 선입견들이 오히려 가정폭력 피해자의 피해를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이제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그리고 그 환부가 외부 전문가들에게 드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세요. 여러분의 주의 깊은 경청이, 그리고 행동이 누군가의 행복을, 더 나아가 누군가의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신고는 112. 상담은 1366.

  항상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취재 : 홍보담당관실 김샛별 경감

촬영 : 홍보담당관실 박세원 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