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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가정폭력 극복! 우리는 더 행복해질 거에요♥

서울서대문경찰서 2015. 5. 17. 16:31

지난 3월 말, 서대문경찰서에 가정폭력 사건 하나가 접수 되었습니다. 부부가 술을 마시다 감정이 격해져 부인과 남편이 서로를 때린 상호폭행 사건이었습니다. 다른 사건과 비교해 봤을 때 특별할 것이 없는 사건이었죠.

 

괜찮으신가요?

 

사건 발생 다음 날, 서대문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박홍식 경장은 전날 있었던 가정폭력 사건을 살펴보며, 사건당사자인 아내 분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지금은 어떠세요? 좀 괜찮아지셨나요? 저희가 따로 도와 드릴 건 없을까요?”

네 괜찮아요. 같이 살기 힘들어서 이혼하려고 해요.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바로 전 날 있었던 사건으로 많이 힘들었을 법도 한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너무나 담담했습니다. 후에 두세 번 더 전화를 드렸지만, 특별히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굉장히 차분한 목소리의 괜찮다라는 대답만 돌아왔죠. 박 경장은 사건 내용 자체가 그렇게 중해 보이지는 않지만 아내 분의 목소리가 다른 사건 당사자와는 달리 너무 차분하고 담담하여 뭔가 속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신고된 주소로 다른 가정폭력 사건이 있었는지 면밀히 찾아보았습니다. 찾아본 결과, 비슷한 주소로 가정폭력 신고 전력이 있었습니다. 그 주소가 지금 이 사건의 주소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신고를 할 때는 급박한 상황에서 신고를 하기 때문에 간혹 접수가 잘못되는 경우가 있어, 충분히 이 집에서 가정폭력 신고 전력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를 한 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일단 그 전에 큰 딸인 A양을 만나보았습니다.

 

 

아빠가 너무 싫고 무서워요

 

A양에게 들은 얘기는 놀라웠습니다. 단순히 가정폭력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이 사건에 있어서는 쌍방 폭행으로써 피의자이자 피해자였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피해자였습니다. 피해자인 A양의 어머니21살에 9살 많은 남편을 만나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결혼을 시작한 그 해에 A양을 낳았습니다. A양이 자라면서 아빠가 엄마를 때린 것을 본 것만 해도 수십 번이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께도 성질을 마구 내고 욕을 하는 등, 패륜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A양에게 가장 충격적인 기억은, 뭔가에 화가 난 아빠가 누워있는 엄마의 뒷통수를 발로 밟아 엄마의 이가 부러진 것이었습니다. 박 경장은 놀라서 진지하게 물어봤습니다.

아빠하고 같이 사는게 무섭지 않니?”

아빠가 2주마다 한 번씩 지방에서 일하다 올라오는데요. 너무 싫고 무서워서 아빠가 올라올 때마다 항상 친구 집에 가서 자요.” 

바로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얘기했습니다. 만나자마자 A양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 드렸습니다. 뚝뚝.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듣는 이야기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21살 무렵에 피해자의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와 방황 중에 채팅으로 만난 남자와 사귀게 되었고, 그 남자와 동거를 하다가 아기가 생겨 부부로서 같이 살게 되었는데 그 남자가 현재의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은 피해자보다 9살이나 연상이었지만 오빠로서 감싸주거나 힘든 시댁에서의 생활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게임 중독, 알코올 중독의 남편이 휘두르는 주먹에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깊은 멍이 들었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두 딸의 마음은 어땠을지,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작은 딸 B양이 어떨지도 궁금했습니다. 마포의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함께 B양의 학교에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예상 외로 B양은 매우 밝았습니다. 가정폭력 피해 가정의 아동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친구들과도 스스럼 없이 잘 지내고 있었고, 건강했습니다. 얘기를 하던 중 B양의 생일이 4월 중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생일선물이라도 줄까 싶어 박 경장은,

생일 선물로 어떤 걸 받고 싶어?”

“...엄마, 아빠가 이혼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밝은 아이가 얼마나 아빠의 가정폭력이 싫고 무섭고, 또 엄마의 아픔이 얼마나 느껴졌으면 생일선물로 엄마아빠가 이혼을 했으면 좋겠다니.. 말을 듣는 박홍식 경장의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지방에 내려가서 일을 한다는 남편이 곧 올라올 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시간이 없었습니다.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엄마와 두 딸을 위하여

 

발 빠르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우선, 박홍식 경장은 피해자와 함께 가정법원으로 가서 피해자를 도와 피해자보호명령제도 신청했습니다. 또한, 법률 홈닥터 변호사를 선임하여 피해자가 무료로 이혼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 피해자보호명령제도(http://scourt.go.kr/dcboard/DcNewsViewAction.work?gubun=261&seqnum=252)

 : 가정폭력 피해자가 수사기관을 통하지 않고도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

* 법률 홈닥터 변호사(http://blog.naver.com/homedoctorcs)

: 법무부와 지방자치단체 · 사회복지협의회가 함께하는 취약계층을 비롯한 서민에게 무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

그리고 현재 피해자가 어린이집 차량운전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5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세 모녀를 위하여 서대문구청을 통해 한 부모 가정 긴급 생계비 지원을 신청했습니다. 이로 인해 세 모녀는 한 달에 약 270만원 정도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 경장은 이 정도의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모녀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일자리 창출 센터를 통한 취업 알선까지 연계를 해드렸습니다.

 

큰 딸 A, 작은 딸 B. 이 두 아이는 지금까지 가정폭력 사건으로 인해 만났던 어느 아이들보다 밝고 똑똑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밝은 표정 뒤에는 오랜 가정폭력 속에서 자라오면서 두 아이의 가슴 속에는 큰 멍이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진심으로 행복하게 웃기 위해서는 이 사회가 따뜻한 곳이라는 감정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지원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니인 A양에게 먼저 물어봤습니다. 서대문경찰서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을 위한 문화활동 프로그램들 중에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A양은 프로그램을 찬찬히 살펴보고 생각한 뒤, UFC호신술을 하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박 경장은 곧바로 담당 SPO(School Police Officer, 학교전담경찰관)인 유선화 경위와 얘기하여 A양이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동생인 B양은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아이인데,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수학과 영어공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박홍식 경장은 B양을 위해 서대문구 구석구석을 직접 발로 뛰며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던 중 구세군 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내 꿈을 위한 첫 스타트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 수학학원과 연계되어 B양은 무료로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상담을 했던 구세군 복지재단이 밝은 표정과는 다르게 B양의 심리상태가 불안하고 우울증 증세도 보이는 것 같다고 하여, 이 또한 무료로 심리치료도 받을 수 있게 도왔습니다.

 

며칠 뒤, 세 모녀에게 다시 연락해 보았습니다. 안부도 물으며 이런저런 얘기 중에 둘째인 B양이 어릴 때부터 치고 싶어 했던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박 경장은 B양의 심리치료에도 좋겠다고 생각하여 세 모녀의 집 주변을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가까운 교회에서 운영하는 피아노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교회 담당자인 집사님을 찾아가 세 모녀의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사연을 들은 집사님은 흔쾌히 참가비 20만원을 안 받아도 괜찮다고 하시며, 무료로 주말에 수업을 참여할 수 있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더 행복해지길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었던 가정폭력 사건이었지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니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세 모녀가 가정폭력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나 멍든 가슴에 새 살이 돋아나는 날, 그 순간까지 서대문경찰서 박홍식 경장은 끝까지 책임지고 지켜봐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모 라디오 DJ의 엔딩 멘트처럼, 세 모녀가 항상 밝고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더 행복해질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