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의 '다시 꾸는 꿈'

2013. 10. 1. 15:31

실비아의 '다시 꾸는 꿈'

 

 “집 앞 건물에서 누가 자살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한 아주머니의 다급한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성동경찰서 성수지구대 김성식 경사와 서대옥 경사는 3층 건물 옥상 끝에 위태롭게 서있는 한 외국인 여성을 만났습니다.

 

 현장 도착 즉시 김 경사가 건물 아래에서 여성과 대화를 시도하는 동안, 서 경사는 신속히 옥상으로 뛰어올라갔습니다.

 

 옥상 위로 올라간 서 경사가 한 발짝씩 조심스레 다가서며 설득하길 30여분.

 여성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습니다.

 

 “경찰아저씨 나 죽이지 마세요. 살려주세요...”

 

 

 서 경사와 김 경사의 안내를 받으며 성수지구대로 온 여성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경찰관들이 음료수를 가져다주어도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땅만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서 경사는 평소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김안젤리나 수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달래고 설득하기를 한 시간.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실비아라고 했습니다.

 실비아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건 지난 1998년이었습니다.

 페루에서 태어나 한 번도 페루를 떠나본 적 없는 평범한 20대 아가씨였던 실비아는 페루에서 취업을 해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민 끝에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페루에서는 대학교까지 졸업한 전문 인력이었지만, 한국 땅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장에서의 단순 노동 뿐이었습니다.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한 염색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그녀는 15년 동안 남자친구 한번 사귀지 못하고 오로지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부치겠다는 그 생각 하나로 악착같이 돈을 벌었습니다.

 

 가족들을 마지막으로 본건 지난 2003년 비자 연장을 위해 페루의 고향을 찾았을 때라고 합니다. 가족들을 만났다는 반가움과 기쁨도 컸지만, 왕복 600만원이라는 비행기 값 때문에 그 후 10년 동안 그녀는 다시 페루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비행기 값이 무서워 비자 연장 시기를 놓치게 되었고, 그 탓에 그녀는 어느 순간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어버렸습니다.

 불법체류자는 은행 거래로 돈을 송금할 수도 없는 탓에 그녀는 지금 몇 년 째 가족들에게 한 푼도 부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염색공장 사장의 도움으로 4년 전부터는 그동안 모은 3천 5백만 원으로 전세방에 살면서, 매달 사장 명의 통장에 돈을 모아 어느덧 그 금액이 6천만 원을 넘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외로운 타지 생활을 너무나 오래한 탓인지 얼마 전부터 극도로 우울해지는 때가 자주 찾아와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는 불법체류자라는 자신의 신분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듯 했습니다.

 

 “우리가 도와줄게요. 실비아가 원하는 게 뭔지 말해봐요.” 서대옥 경사의 말에 실비아는 믿지 못할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서 경사를 빤히 쳐다보다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집에가고 싶어요. 페루에 가고 싶어요.”

 

 서 경사는 우선 실비아 휴대전화 속 번호로 염색공장 사장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이 그동안 실비아 몫으로 모아둔 금액을 모두 찾아 지구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실비아의 표정이 밝지 않았습니다. 자기도 자신의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두려워 그렇게 큰돈을 관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실비아의 돈을 경찰이 대신 보관해주기로 결정하자 실비아도 안심하는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실비아가 계속해서 우울증세를 보이자, 서 경사와 김 경사는 실비아에게 은평 시립병원에 입원을 권유하였습니다.

 실비아가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도 경찰관들의 노력은 계속됐습니다. 실비아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페루 영사관을 통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페루에 있는 실비아 가족과 연락이 닿았고, 지난 8월 29일 페루에서 실비아의 여동생 까테린이 실비아를 데려가기 위해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이튿날 실비아와 카테린이 병원 퇴원 수속을 마치고 성수지구대로 찾아왔습니다. 공장의 사장과 김안젤리나 수녀가 함께한 자리에서 서 경사와 김 경사는 실비아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돈을 전달했습니다.

 

 실비아는 “지금까지의 한국 생활이 꿈만 같다”면서, 한편으로 “동생과 페루로 돌아가게 된 이 순간, 또 다시 새로운 꿈을 꾸는 것 같다”는 감격스런 소감을 밝혔습니다.

 

 9월 2일, 실비아는 드디어 동생과 함께 한국을 떠나 오랫동안 그리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랜 타국생활에 지쳐 있던 그녀의 가슴 속 상처를 보듬고 치료해 준 경찰관 덕에, 실비아는 이제 페루에서 가족들과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12-0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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