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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이야기/서울경찰 치안소식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혜화경찰서 편

서울경찰 2022. 7. 5. 11:52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의 사대문,

그리고 혜화문(동소문), 소의문(서소문), 광희문(남소문), 창의문(북소문)의 사소문.

 

옛 서울(한양)은 사대문과 사소문,

그리고 그 문을 잇는 성곽 내부의 공간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경찰서는 본 기획기사를 통해 소개해드리는 첫 사대문 안 관서로,

그 이름부터 사소문 중 동소문에서 가져온 혜화경찰서입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아홉 번째 이야기!

오늘은 종로구와 혜화경찰서를 찾아갑니다.

 

 

 

 

 

혜화경찰서의 옛 명칭은 동대문경찰서(現동대문경찰서 = 舊청량리경찰서)로,

1945년 10월 21일 국립경찰 창설과 함께 정식으로 개서했는데요.

 

2006년 3월 1일 관할 조정을 하며 명칭을 혜화경찰서로 바꾸고,

종로경찰서와 함께 종로구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혜화경찰서의 관할 구역은 종로구 일부로,

25.5개 법정동(연건동, 동숭동, 이화동, 연지동, 효제동, 충신동, 명륜1가동, 명륜2가동, 명륜3가동, 명륜4가동, 혜화동, 창신동, 숭인동, 권농동, 묘동, 봉익동, 장사동, 와룡동, 훈정동, 원남동, 인의동, 예지동, 종로4가동, 종로5가동, 종로6가동, 종로3가동 일부),

8.5개 행정동(숭인1동, 숭인2동, 창신1동, 창신2동, 창신3동, 혜화동, 이화동, 종로5·6가동, 종로1·2·3·4가동 일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혜화경찰서는 8개 파출소(대학로, 종로5가, 창신, 혜화, 명륜, 효제, 덕산, 동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소는 아래 표를 참고해 주세요. ^^

 

 

구분 기관명 주소
경찰서 혜화경찰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12-16
파출소 대학로파출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장2길 33
종로5가파출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호로 407
창신파출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지봉로13길 20-12
혜화파출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279
명륜파출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78
효제파출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1나길 24-6
덕산파출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산성곽동길 20-1
동묘파출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8가길 19

 

 

 

 

 

한양도성(漢陽都城)은 도읍인 한양의 경계에 축조되어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성곽과 문을 일컫는데요.

 

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의 4내산의 능선을 따라 성곽을 두르고,

내 · 외부를 오갈 수 있도록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두었습니다.

 

우리가 평지의 성곽이 헐린 이후의 모습만 봐 왔기에,

그리고 이미 확장된 서울의 모습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흥인지문과 숭례문이 도심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지만,

 

조선 건국 당시의 한양은 종묘, 사직단, 궁궐 등 주요 시설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성곽으로 보호받던 공간이었습니다.

 

 

낙산공원에서 본 성곽

 

 

한양도성의 성곽은 평균 높이가 약 5~8m에 전체 길이가 18.6Km에 이르는 규모로,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 그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1396~1910, 514년간

 

어느 때고 자유롭게 서울에 드나들 수 있는 요즘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조선시대 한양에는 야간 통행금지 시간이 존재했는데요.

 

초경 3점(22시경) 종을 28번 치는 '인정'에 성곽 문을 닫고 도성 내 통행이 금지되며,

5경 3점(04시경) 북을 33번 치는 '파루'와 함께 해제되었다고 합니다.

 

필자가 낙산공원에 방문한 시간도 인정을 한참 넘긴 시간이었습니다.

 

그 밤늦은 시간까지 산책을 즐기는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요.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성곽 옆 한양도성 순성길을 걷는 것도 낭만적이었답니다.

 

 

 

종묘 영녕전

 

 

한양도성 내에서 소개해 드릴 첫 장소는 종묘(宗廟, 으뜸이 되는 사당)입니다.

 

종묘는 조선 왕조의 제왕과 왕후의 혼이 담긴 신주를 보관하고 제례를 치르는 곳으로,

사직(社稷)*과 함께 조선의 개창 당시 궁궐보다도 우선적으로 세워진 제례 시설입니다.

* 땅의 신과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당, 성역이었으나 일제의 훼손 이후 공원화됨

 

본래 정전에 총 49위(태조를 비롯한 제왕의 신주 19위, 왕후의 신주 30위),

영녕전에 총 34위(제왕의 신주 16위, 왕후의 신주 18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었는데요.

 

현재 정전의 신주는 보수공사(2020~2023)로 인해 창덕궁에 임시로 봉안하고 있습니다.

 

종묘에 들어서면 다른 궁궐과 다르게 엄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장엄하게 느껴지는 큰 규모의 건물이 별다른 장식 없이 세워진 데다가

단청조차 최소한으로 억제한, 절제미가 담겨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좌)과 부용지, 주합루(우)

 

 

종묘의 북쪽, 율곡로 건너편엔 창덕궁과 창경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담을 맞대고 있는 두 궁궐을 합쳐 동궐(東闕)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본래 동궐과 종묘는 하나의 공간처럼 연결되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조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제가 율곡로를 개통하며 분리되었습니다.

 

남쪽의 종묘와 다르게 북쪽의 창덕궁은 화려합니다.

 

전각의 배치부터 주변 환경에 어울리게 배치되어 있어 경직된 분위기가 덜한 편으로,

특히 북쪽 정원인 후원(後苑)은 조경 예술의 정수가 집약된 공간입니다.

 

넓은 대지에 수백 년 수령의 거목이 우거져 있고,

연못과 정자가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후원을 거닐면 종로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는데요.

녹음이 우거진 산책로는 마치 임금과도 같은 호사를 누리게 해 줍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시장 - 시전(市廛)이 있던 종로구는

동대문종합시장, 낙원상가 등 현재에도 큰 규모의 시장이 성업 중입니다.

 

그중 1905년 설립된 광장시장은 서울 최대 규모이자

100년이 훌쩍 넘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인데요.

 

언뜻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이 모이기에 광장(廣場)시장인가 싶지만,

사실 시장이 청계천의 다리였던 광교와 장교 사이에 있었다 하여 廣藏시장입니다.

 

두툼한 녹두전으로도 유명한 광장시장은 비 오는 날이면 특히 더 붐비는데요.

신명 나게 도는 맷돌을 앞세워 고소한 향기를 풍기는 점포 앞을 지나치긴 쉽지 않지요.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이른 오후 시간부터 녹두전을 안주 삼아

환담을 나누는 모습을 시장 곳곳에서 볼 수 있답니다.

 

 

 

 

광장시장이 상대적으로 '요즘 것', '새것'을 파는 시장이라면,

동묘시장에서는 '골동품', '재고품' 등 다른 시장에서 보기 힘든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동묘공원 서쪽의 종로58길을 중심으로

인근 골목까지 가지 쳐 나가듯 수많은 점포가 늘어서 있는데요.

 

길 건너에서 바라볼 땐 일반적인 전통시장과 구분할 수 없지만,

거리에 들어서면 시간 여행을 하듯 기억 속에만 남아있던 물건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의류, 서적, 생필품, 중고 가전제품까지 생각할 수 있는 물건은 다 있는데

저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골동품들을 살펴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릅니다.

 

이렇듯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서인지 동묘시장 안에서는

그야말로 남녀노소, 성별과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혜화경찰서는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 중 관할 구역의 면적으론 29번째,

경찰관의 수로는 27번째를 차지하는 크지 않은 경찰서입니다.

 

하지만 중심업무지구를 포함한 데다가 거주자 대비 10배에 달하는 유동인구로 인해

혜화경찰서가 관할지의 교통 상황은 늘 전쟁터와 같답니다.

 

특히 출 · 퇴근 시간이 되면 사방에서 몰려드는 차량에 교차로는 엉망이 되기 십상이고,

원활한 도로 소통을 위해 교통경찰관들이 수신호에 나서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거기에 더해 동대문종합시장, 광장시장, 방산시장, 평화시장 등 다수의 시장과 접해 있어

상업활동을 위한 이륜차의 출입이 도로의 혼잡을 가중시키기도 하는데요.

 

무더운 여름에도 얼어붙는 겨울에도 굳건히 도로를 지키는 혜화 교통경찰 덕분에

도심으로 향하는 길이 더 안전하고 빨라지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 게시물의 종착지는 혜화문입니다.

 

혜화문(惠化門)의 축조 당시 이름은 홍화문(弘化門)이었으나,

성종 14년(1483)에 건립된 창경궁의 동문이 홍화문으로 명명되며 둘이 혼동되어

중종 때 혜화문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북쪽의 음기(陰氣)를 막기 위해 지어진 숙정문(북대문)은 평시엔 열어놓지 않았기에,

한양의 동북쪽으로 열린 혜화문의 중요성은 사대문에 버금갔다고 전해집니다.

 

명명한 의도(임금의 성덕이 도성 밖 백성을 은혜롭게 교화)와 무관하게

실질적으로 도성을 오가는 백성에게 큰 도움을 주는 문이었다고 하네요.

 

비록 지금은 본래 위치에서 3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옮겨 다시 지어졌다지만,

혜화문을 통과하며 옛 한양에 들어서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