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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경찰서/우리동네 경찰서

(양천) 경찰역사 알리미! 양천경찰도 함께합니다!

양천홍보 2019. 2. 18. 15:36

안녕하세요, 양천경찰서 블로그 담당자입니다.


3월 1일은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도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경찰을 포함한 공공기관에서는 올 한 해 동안 이와 관련하여 많은 홍보를 할 계획입니다.

 

 

 

 

또한, 경찰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홍보와 함께 경찰역사 바로 알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경찰의 과오가 없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많은 경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청에서는 독립운동, 6.25 참전, 민주화 운동에 공을 세운 경찰관들을 발굴하여 경찰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후배 경찰관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더욱 헌신하여 일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먼저,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경찰관들을 살펴볼까요?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가로 알고 계신 백범 김구 선생!

 

 

 

 

 

백범 김구 선생은 1919년 초대 경무국장으로 대한민국의 1호 민주경찰이었습니다.


또한, 1923년 ‘의경대’를 창설하여 상해 교민사회의 치안유지와 일제 밀정 색출 등을 수행하며

젊은 청년들이 의경대를 통해 독립운동에 투신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었습니다.

 

 

 

 

 

‘상해 독립신문(1925년 11월 1일 자)’에는 당시 의경대를 포함한 임시정부 경찰의 활약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긴 식민통치 기간을 지나온 경찰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한 번 국가를 위해 몸을 던졌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전국 경찰관의 1/3에 해당하는 17,378명이 죽거나 다쳤고,

이를 추모하기 위해 전국 184곳에 경찰충혼탑과 위령비를 세웠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해 기록한 마틴 러스의 ‘브레이크 아웃’에는 경찰관의 활약상이 잘 드러나 있는데요,
“그곳에는 훈련되어 군기가 있고 상당한 전투력을 가진 한국 전투경찰 부대가 있었다.”

 

 

 

 

 

하지만 장진호 전투에서 온몸으로 중공군에 맞서 싸워 UN군의 후퇴를 도왔던

경찰관들의 명단과 행적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군사정권의 통치 속에서 국민들의 생명과 인권이 억압 받을 때에도

국민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운 경찰들이 있었습니다.

 

1980년 5월, 신군부는 계엄군을 투입하여 광주시민을 탄압하였고 경찰에게도 발포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안병하 전남경찰국장과 이준규 목포서장은 시위대를 보호하며 국민의 곁에 섰습니다.

 

 

 

 

  

이후 경찰이 치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안병하 국장은 고문을 당한 후 강제사직되었으며,

이준규 서장도 직무유기로 구속 후 파면되었습니다.

또한 68명의 경찰관이 징계를 받았으며, 123명의 경찰관이 강제로 사표를 내야 했습니다.

 

 

이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많은 경찰관들이 있었지만 아직 찾지 못한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경찰은 이분들의 희생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 6.25 전쟁, 민주화 운동 등에 참여 했던 경찰관이 계시거나

혹은 참여 경찰관을 알고 있다면, 양천경찰서 경찰역사 T/F팀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02-2093-8321)

 

 

국가와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곁을 지켜온 경찰(警察)!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경찰은 국민 곁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며,
양천경찰 또한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