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경찰서 - 성북경찰서

2015. 5. 18. 09:17

 

  어느 날 호랑이 사냥을 하던 장수가 목이 말라 말을 멈춥니다.

  우물가에 도착한 장수는 한 여인에게 물 한 바가지를 청하자

  여인은 버들잎을 따 물 위에 띄워 장수에게 건넵니다.

  여인의 정성에 감동한 장수는 그녀에게 청혼하고 둘은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고전이나 영화의 한 장면에서 보았을 법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호랑이를 사냥하던 장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이고,

  우물가의 여인은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입니다. ^^

  <신덕왕후>가 잠들이 있는 무덤이 바로 '정릉(貞陵)'입니다.

 

  '정릉'을 품고 있는 경찰서

  오늘 우리가 방문할 우리 동네 경찰서는 '성북 경찰서'입니다.

 

 

  성북구 보문로에 위치한 성북경찰서는

  1945년 경찰 창설과 함께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의 신청사는 2008년 신축한 청사입니다.

  성북구는 도심과 서울 동북부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고,

  북한산 국립공원과 고려대학교, 국민대학교 등 8개의 대학이 있으며,

  구 면적의 70%가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많은 대사관저가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성북경찰서 홍보담당인 김소미 순경과 함께 '정릉'을 찾았습니다.

  정릉은 주택가 중앙에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정릉'을 입력하고 가면 골목길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런 곳에 왕비의 능이 있을까?" 싶을 때쯤 정릉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릉은 앞서 말했듯이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묘지입니다.

  처음부터 정릉이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닙니다.

  태조 이성계는 사랑했던 여인의 묘(신덕왕후 강씨)를

  궁궐과 가까운 지금의 정동 영국대사관 자리에 잡았습니다.

  (정동의 동명도 '정릉'이 있었던 곳에서 유래합니다)

 

 

  왕자의 난 이후 태종(이방원)은 자신에게는 계모였던 신덕왕후를

  후궁의 지위로 격하시키고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애지중지하던 정릉도

  서울 정동지역에서 도성 밖 양주, 현재의 성북구로 정릉동으로 옮겼습니다.

  이유는 아버지 태조가 '신덕왕후' 소생인 여덟째 왕자 '방석(芳碩)'을

  세자로 정한 것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태종은 능을 옮긴 뒤에도 정릉의 정자각(丁字閣)을 허물고 석물을 모두 묻어 없애고,

  홍수로 광교에 있던 흙다리가 무너지자 정릉의 석물을 실어다 돌다리를 만들게 해

  온 백성이 이것을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후 정릉은 돌보는 이 없이 270년간을 지내다가

  1669년 조선 18대 왕인 현종에 의해 복원되었습니다.

 

  정릉이 이런 아픈 사연이 있는 줄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내게도 사랑이...신덕왕후를 찾아 온 님이여...내게도 오소서! ^^ (성북경찰서 김소미 순경)

 

  '우리동네 경찰서'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의 4대문과 4소문 이야기를 했는데요.

  오늘이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서울의 북대문에 해당하는 문이 바로 '숙정문(肅靖門)'입니다.

 

 

  숙정문은 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숙정문 주위에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소나무들이 많습니다.

  도성 북문이지만, 서울성곽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있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답니다.

 

  숙정문의 생생한 사진을 여러분께 보여 드리기 위해

  와룡공원에서 올라가 봤는데요,

  지도 상으로 멀어 보이지 않아 구두를 신고 산책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40분 등반했습니다. ㅠㅠ

 

숙정문 가는 길 성곽에서 본 서울시내 전경

 

  숙정문을 보기 위해서는 평일 4시 이전에 도착해서 숙정문 입구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안내 표찰을 패용해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참고하세요^^

  도성 밖 숙정문 넘어가 성북동입니다.

  성북동에는 정말 볼 곳이 많은데요, 지금부터 여러분께 성북동의 숨은 비경을 소개하겠습니다.

 

 

  숙정문을 통해 내려오면 처음 만나는 곳이 삼청각(三淸閣)입니다.

  과거, 삼청각(三淸閣)은 고위정치인의 회동과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 이용하였던 곳으로, 요정정치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 5월 서울특별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문화시설로 지정했으며,

  리모델링 공사를 끝낸 후

  2001년 10월 새로운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한국 가구박물관입니다.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꼭 한번 소개해 주고 싶은 공간입니다.

  최근 각국 정상 등 해외 VIP의 오찬 장소로 유명세를 얻은 곳이기도 합니다.

  2011년에는 미국 CNN이 꼽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방문했을 때는 행사가 진행 중어서 들어갈 수 없었지만,

  사전 예약을 통해 방문해 보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그런데 입장료가 좀 비싸네요! ^^)

 

 

  성북동 중턱에 위치한 길상사입니다.

  예전에 이곳은 '삼청각'과 마찬가지로 '대원각'이라는 이름의 대중식당이었는데,

  '무소유'를 저술하신 법정스님의 글에 감동을 받은 '대원각' 주인이

  1995년 이곳의 땅과 건물을 송광사에 시주했다고 합니다.

  이후, 1997년 '길상사'라는 사찰로 이름을 바꾼 이곳은

  법정스님이 2010년 타계할 때까지 머물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시끌벅적했던 대중식당이 이렇게 고요한 도심 속 공간으로 거듭났다는 거

  신기하지 않나요? ^^

 

 

  성북동에는 세계 각국의 대사관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틈에 근대 한국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집들이 숨어 있는데요.

  사진의 집은 <최순우 옛집>입니다.

  전 국립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로

  한국 미술사에 큰 자취를 남긴 최순우(1916~1984년) 선생의 개인 주택입니다.

 

  2002년 성북동 한옥의 양옥화로 허물어질 위기에 처한 것을

  시민운동단체인 '한국내셔널 트러스트'가 매입해

  2년간의 복원절차를 걸쳐 지금의 모습을 갖춰

  '시민문화 유산 제1호'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최순우 옛집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이종석 별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00년대 마포에서 젓갈 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석이 지은 별장으로

  20세기 별장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옥입니다.

  1985년, 덕수교회에서 인수해 사용하고 있으므로 방문 전 미리 교회에 요청해야 한다고 하네요.

  저희도 이종석 별장의 대문만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심우장(尋牛莊)은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인생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입니다.

  이 집은 독특하게 북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남쪽에 있는 조선총독부를 쳐다보지 않으려는 한용운 선생의 뜻에서랍니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랍니다.

  심우장의 현판은 한용운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 선생이 쓴 것입니다.

 

 

  성락원(城樂園)은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으로 처음 지어졌고

  조선말기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조선 후기 정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성북동에 이런 자연이 남아 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저희가 방문했을 때는 송석정이 수리 중이었으나, 그 아름다움은 감출 수 없어 보입니다.

 

  성락원에는 200∼300년 되는 엄나무를 비롯하여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안뜰과 성락원 바깥을 가려주는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성락원은 조선시대 서울 도성 안에 위치한 몇 안 되는 정원중 하나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사적 제378호. 면적 1만 4,407㎡)

 

출처 : 성북구청 홈페이지

 

  지금까지 설명한 볼거리들이 모두 성북동에 위치합니다.

  성북동은 칼국수와 돈가스가 유명한 곳이니,

  주말 가족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신 뒤 걸어 다녀 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모든 것이 걸어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미아리 고개입니다.

  성북구 돈암동과 길음동을 잇는 고갯길로,

  한국전쟁 당시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기 때문에

  북한군과 대한민국 군인 사이의 교전이 벌어진 곳이며,

  북한군이 퇴각할 때 많은 남한 포로를 데리고 이 고개를 넘어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자동차로 1분이면 오를 수 있는 이 고갯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고갯길 위에서 북으로 간 가족을 기다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기에

  이 고개를 단장(창자를 끊어내는 듯한 고통)의 미아리 고개라 불렀답니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미아리 고갯길에는 점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1960년대에서부터 자리 잡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는

  100여 개 이상의 점집들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20여 곳만 남아 있습니다.

 

 

  미아리 고개를 넘어 매일 성북경찰서에 출근하는 경찰관이 있습니다.

  성북경찰서 정보보안과 외사계 근무하는 김 루 경장입니다.

 

 

  김 루 경장은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난 중국 국적의 한국인입니다.

  중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지난 2000년 부모님과 함께 한국을 찾았습니다.

  한국어 학당을 통해 한국말을 배운 김 경장은 서울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2012년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한민국 경찰(외사특채)이 됐습니다.

 

 

  Q. 현재,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요?

 

  A. 성북경찰서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관련 경찰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성북경찰서 관내에는 8개 대학에 2천 명이 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유학생들을 상대로 범죄예방 교실을 운영하기도 하고 다문화 센터에서 경찰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김 루 경장은 경찰청 등에서 주관하는 각종 국제 행사에도

  중국어 통역으로 선발돼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중국어보다 한국어가 더 편하하다는 김 루 경찰!

  (심지어 꿈도 한국어로 꾼다고 하네요^^)

 

  앞으로도 더 멋진 활약을 기대합니다!!

 

 

  성북경찰서에 대포수사(?)의 달인이 있다고 해서 만났습니다.

  수사과 지능팀에 근무하는 구기동 경위(52)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포는 전쟁에 무기로 쓰이는 대포가 아닌 건 아시죠? ^^

  '허풍', '거짓'이라는 의미의 '대포'(은어)를 말하며,

  자신이 직접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대포통장, 대포폰, 대포차 등을 일컫습니다.

  구 경위는 지난해 10월 노숙자 명의로 서민들의 전세자금을 빼돌린 일당 42명을 검거했는데요,

  이들이 가짜 서류를 제출해 착복한 서민주택 전세자금이 무려 75억 원에 달한답니다.

  이런 범죄 뒤에는 노숙자와 대포통장이 꼭 등장한다고 합니다.

 

 

  구 경위는 현재 대포차량에 관한 기획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요.

  대포차량 역시 노숙자 명의를 도용해 법인을 설립하고,

  법인이 사들인 차량을 고가에 파는 수법을 구사합니다.

  이런 대포차량의 수요자 대부분이 범죄자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합니다.

  곧 구 경위에 의해 검거될 대포차들의 어마어마한 숫자를 기대해 봅니다.

 

  성북 경찰서 관내에는 재미있는 구전설화가 전해 내려오는데요.

  옛날 안암동에 순흥 안씨(安氏) 성을 가진 '안감(安甘)'이라는 채소장수가 살고 있었답니다.

  하루는 이 사람이 채소를 다 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점잖은 노인이 술값 때문에 주모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인이 술을 마신 다음 술값을 치르려고 하였으나 돈을 가져오지 않아

  야단을 맞고 있었던 것이 안쓰러웠던 안감은 대신 술값을 치러주었습니다.

 

  노인은 안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자신에 집에 꼭 들러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며칠 후 노인의 집을 찾아간 안감은, 그 노인이 '장안 최고의 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안암동의 서쪽에는 성북동에서 흐르는 개천이 있고

  동쪽에는 영도사(지금의 개운사)에서 흘러내리는 개천이 있는데,

  비만 오면 두 개천의 물이 흘러넘쳐 섬 같이 고립된 안암동 주민들의 고생이 많으니,

  개천에 다리를 놔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 추구에만 집착하는데,

  동네를 위한 소원을 말하는 채소장수에게  더욱 감동한 노인은 쾌히 동네 앞에 다리를 놓아주었습니다.

 

  이리하여 이 다리는 안감의 이름을 따서 안감내다리, 개천은 안감내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안감내 다리는 지금의 안암교이고 안감내는 안암천으로 불리던 지금의 성북천입니다.

 

  안감이 실천한 '배려양보'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며,

  다음은 『동대문 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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