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헤어짐을 아쉬워하다 길 잃은 할머니 이야기
강추위가 몰아치던 지난 2월 8일 일요일 밤 9시 경이었습니다.
회현 파출소의 조성우 경위와 조춘식 경사는 평소에 하던 대로 순찰차를 타고 방범순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회현 지하철역 2번 출구를 지나갈 때 할머니 한 분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적인 상황이었으나, 두 경찰관은 추운 날씨에 연로한 할머니 혼자서 밤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할머니의 안전이 염려되었습니다.
그래서 순찰차를 멈추고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할머니, 날씨가 추운데 감기라도 걸리시면 어쩌려고 밤에 혼자서 어디 가시나요? 일행은 없으신가요?”라고 다정하게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추운 날씨에 많이 지치셨는지 온몸을 떨면서 횡설수설하시면서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경찰관은 할머니의 건강이 염려되어 할머니를 순찰차에 태우고 따뜻한 파출소로 모셨습니다.
파출소에 와서 먼저 할머니에게 따뜻한 물과 차를 드시게 하여 추위에 언 몸을 녹이게 하면서 할머니를 안심시킨 후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걸면서 이것저것을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는 횡설수설하시다가 중간중간 본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나이는 82세이고 심하지는 않지만, 치매를 앓고 있으며 할아버지가 20년 전에 돌아가신 후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서민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월 8일 일요일 오전에 대전에서 사는 출가한 딸이 찾아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딸과 함께 점심을 맛있게 먹고 오후에 딸이 집에 돌아간다고 하자 집 앞 버스정류장까지 나와서 딸을 배웅했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딸을 태운 버스가 멀어져가자 외롭게 지내시던 할머니는 딸에 대한 그리움과 헤어짐에 대해 아쉬움을 떨치지 못해 버스가 간 쪽으로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게 된 것입니다.
평소에는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집이었지만 딸이 떠나간 그 날은 왠지 텅 빈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어졌던 할머니는 허전하고 쓸쓸하고 적적한 마음에 딸이 탄 버스가 간 방향으로 걷다가 지병인 치매가 증세가 나타나서 그만 길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집을 찾기 위한 할머니의 사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정신이 온전하다가도 치매 증세가 나타나는 할머니는 집을 찾기 위해 온 거리를 헤매다가 집에서 약 15km나 떨어진 회현역까지 걸어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영하 10도 이하의 그 추운 날씨에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고생을 하였음에도 할머니는 아무런 이상이 없이 건강을 유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맑은 정신이다가도 도중에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횡설수설하는 할머니 이야기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조성우 경위와 조춘식 경사는 중요한 부분이 나오면 바로 메모하면서 할머니의 긴 이야기를 경청하여 할머니에 대하여 알게 된 것입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다 들은 조성우 경위와 조춘식 경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할머니를 순찰차에 태우고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 그 아파트 경비실에 들러 확인을 요청하자 근무 중이던 경비원 아저씨가 “우리 아파트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맞다”며 확인을 해 주었고 할머니 집까지 동행해 주었습니다.
“할머니가 계속 방치되었다면 추운 날씨에 밖에서 동사하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경찰이 일찍 발견하여 할머니가 무사해서 천만 다행이다.”라며 인사를 하는 아저씨에게 두 경찰관은 “할머니를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고 또 할머니에게 이상이 있으면 경찰이나 119에 바로 신고하고 딸에게도 연락해 줄 것도 잊지 않고 여러 번 당부했습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순찰차 안에서 조성우 경위와 조춘식 경사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돌봐주는 가족 없이 홀로 사시는 할머니가 또 언제 치매 증상이 나타나서 오늘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 놓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홀로 살고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우리 주위에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보살핌으로 이러한 어르신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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