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형사지!

2013. 8. 22. 11:21

그러니까 형사지!

 

 

10여명으로부터 10억 8천만원 편취한 피의자를 검거한 강서경찰서 임진우 경위의 수기입니다.

 

 

1. 아내보다 휴대전화를 더 가까이 하는 경찰관…

 

 

 “아이고, 형사님 고맙습니다...이제야 두발 뻗고 잘 수 있겠네요”

 

내가 ‘경찰의 꽃은 수사다’라는 생각으로 수사과에 몸은 담은 뒤부터, 그리고 악성사기범 검거전담팀장을 하면서 가장 보람있는 순간은 검거된 범인을 보고 피해자가 고마움에 눈물을 흘릴 때다.

 

한 해 동안 54명(총 피해금액 108억)을 검거하면서 꽁꽁 숨은 범인들을 쫓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이 비록 고되고 지칠 때가 많았지만,

항상 수사관으로 보람을 느끼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검거팀의 특성상 휴대전화 위치추적과, 스마트폰으로 접속한 인터넷 IP를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땀이 줄줄 흘러 내리는 한 여름에도 손에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다.

 

집에서 잠깐 눈을 붙일 때도 내 품에는 아내 대신 휴대전화가 안겨 있는 경우가 많다. 아내는 그런 휴대전화를 몹시 질투하는 눈치다.

 

하지만 어쩌랴... 오늘도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뒤로한 채 수배자의 뒤를 쫓아 집을 나선다.

 

 

2. 유령같은 그놈의 실체를 잡아라

 

 

컴퓨터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에게 접근하여 물건을 납품 받아 상습적으로 편취하는 악성 사기꾼이 있었다. 이 사기꾼으로 인해서 무려 피해자가 10여명이고, 확인된 피해금액만 10억 8,000만원으로 계속해서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내가 너를 반드시 잡아주마’

 

그러나 이 놈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휴대전화 가입내역을 확인하였으나 자신 명의 휴대전화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고, 가족들마저 본인 명의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일단 범인의 처와 가족들이 살고 있는 서울 강남구 소재 H아파트 관리사무소 입주자 카드와 아파트 CCTV를 확인했으나 범인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범인이 운영하던 사업장, 거래처, 피해자들을 만났으나 범인에 대한 행적이나 연락처 등 단서를 발견할 수 없었다.

 

다시 수사는 원점... 탐문과 가족들의 통화내역 상에도 별달리 나온 게 없자, 이번에는 병원 치료 내역을 확인하였다.

 

그 결과 2011년도에 강남에 있는 치과에서 진료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비록 2년 전 일이라 배제할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원을 찾아갔다.

 

벌써 다리품 팔며 진행한 수사가 1개월이 흘렀다. 물론 다른 사건도 병행했지만 서서히 지쳐가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범인이 병원 진료 시 기재하였던 전화번호가 하나 나왔다. 확인 결과 역시나 명의자는 범인으로 되어 있지 않았다.

이 번호도 지금 안 쓸지도 모른다...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는 간다.

 

 

“...여보세요” “저... 00씨 휴대폰 아닌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쫓는 범인과 동일한 연령대인 40대 중반의 남성의 목소리였다. 전화를 끊은 후 직감적으로 “드디어 찾았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1개월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겨우 전화번호 하나 건진 것이다.

 

 

3. 저기...대리기사 아니세요?

 

 

“팀장님, 00이 역삼동으로 간 거 같은데요?”

 

“그래? 빨리 근처로 가보자!”

 

 

우리는 이 번호를 통해 범인이 타고 다니는 렌터카를 특정하였고, 배달음식점을 통해서 은신처를 알아내었다. 결전의 날이 눈 앞에 다가왔다...

 

2013. 6월 중순경 날씨가 막 무더워지려는 계절, 위치추적 결과 은신처를 마지막으로 범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은신처에는 방금 막 들어갔는지 렌트카 본네트가 따뜻했다.

 

 

 

 

마지막으로 건물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전혀 다른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범인의 사진을 보여주니 이 사람이 틀림없단다.

 

“지금부터 잠복을 시작하자.”

 

집에서 나오는 범인을 덮치려 했으나 웬일인지 몇 시간이 넘어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도주했나 싶어 차 문을 열고 기지국 위치 전송 받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걷고 있는데, 앞에서 걸어오던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저기... 대리기사 아니세요?”

 

 

심야시간에 휴대전화를 보며 이동하는 내 모습이 대리기사 같아 보였나보다.

 

 

4. 그러니까 형사지!!

 

 

놈은 사기꾼답게 보통 촉이 좋은 놈이 아니었다. 칼이 자기 목 밑까지 들어온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걸까...좀처럼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늘 시켜먹던 배달음식도 주문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인내심 싸움이다! 촉이 좋은 사기꾼 상대로는 인내야 말로 그 이상의 무기는 없다고 생각했다.

 

12시간쯤 흘렀을까...드디어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번, 수백 번 보았던 사진이 놈의 얼굴에 오버랩 된다. 꿈에서 까지 나타나는 바로 그 놈이었다.

 

“00씨.”하며 다가가자 자신도 놀라며 “네!” 하는 것이었다. 사기범은 검거가 어렵지 막상 검거될 때는 순순히 포기하는 편이다.

 

‘차라락’ 경쾌한 금속음을 내며 놈의 손목에 수갑을 채울 때의 그 쾌감, 이 맛에 수사를 하는 것인가....

 

놈은 호송되는 차안에서 “제 휴대폰, 렌트카, 집 모두 제 명의가 아닌데 여긴 어떻게 아셨어요.”고 물었다. 나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형사지!!”

 

 

왼쪽부터 경위 임진우, 순경 김종균, 경사 김태연, 경위 정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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