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부경찰서 경찰 역사박물관을 아시나요?

2015. 10. 28. 13:48


















 서울중부경찰서 경찰 역사박물관을 아시나요?


 경찰 70주년을 맞아,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나가고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중부경찰서에 최초로 경찰 역사박물관을 건립했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진귀한 기록도 있으며,

 현재의 밑거름이 되어준 발자취적인 기록들도 있습니다.


 경찰 스스로 일군 이 공간은 경찰관들에게도 자긍심을 높일 소중한 자료가 되며,

 오랜 역사를 그 모습 그대로 개방함으로써 시민의 열린 마당이 됩니다.


 언제든지 놀러오세요.

 24시간 열려있는 우리들의 공간입니다.



 협조 : 서울중부경찰서 경찰 역사박물관



제작 : 홍보담당관실 박소영 경사



우리 동네 경찰서 - 동대문경찰서

2015. 6. 1. 10:01

 

 

  흥인지문(興仁之門)!

  사람들은 「동대문」이라고 부르는 서울 사대문 동쪽에 있는 문의 이름입니다.

 

  그동안 우리 동네 경찰서 편에서 사대문의 이야기를 모두 다뤘는데요.

  「동대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눈치채셨겠지만,

  오늘 방문할 경찰서가 동대문 경찰서이기 때문입니다. ^^

 

  서대문 경찰서 관내에는 서대문이 없는 슬픈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동대문 경찰서에 관내에는 동대문이 있다? 없다?

  정답은 없습니다.

 

  이유는 현재 동대문의 행정구역이 종로구 종로 288번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대문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번 혜화경찰서 편에서 다뤘습니다.

  아무튼, 오늘 동대문구를 관할하는 동대문 경찰서를 방문합니다.

 

 

  위에 교통 정리하는 경찰관이 보이시나요?

  1957년 10월 서울 어느 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관 모습인데요.

  전차가 지나가는 것으로 봐 종로나 동대문의 어디쯤으로 추측해봅니다. ^^

 

 

  동대문 경찰서는 1957년 「청량리 경찰서」라는 이름으로 개서했고,

  2006년 3월 관할 조정을 통해 동대문경찰서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동대문구는 서울 동부의 중심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교통 수단인 전차의 출발역이 바로 청량리역입니다.

 

  지금부터 동대문 경찰서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량리역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청량리역을 관할하는 청량리역 파출소를 찾았는데요.

  청량리역 파출소 건물도 무려 1957년부터 사용한 건물이라고 하네요.

 

 

  청량리역 파출소 정성희 순경입니다.

  경찰관으로 임용된 지 1년 된 신임경찰관인데요,

  정 순경은 관내 '문안순찰'을 아주 잘하는 싹싹한 경찰관이라고 합니다.

 

 

  문안(問安)순찰이란?

  집안 어른에게 안부 인사를 하는 것처럼,

  경찰이 순찰하며 주민들에게 일상적인 안부를 묻고

  지역의 애로사항을 경청하는 치안서비스입니다.

 

 

  정 순경이 말하는 문안순찰의 핵심은 '관계'랍니다.

  시민과 경찰과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이웃'이 되고, '가족'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거죠.

  정 순경은 관내에 스무 명 정도의 어머니(?)가 계시고,

  서른 명 넘는 언니와 동생이 있다고 하니, 관계를 잘 맺는 경찰관 맞지요? ^^

 

 

  정 순경이 청량리역에 숨어 있는 문화재가 있다고 저희에게 소개해 주었는데요.

  바로 「청량리역 검수차고」입니다.

 

  이 낡은 건물이 등록문화재 269호인데요

  1938년에 건립되어 청량리역의 전차대를 거쳐 기관차를 수리 및 보관하는 차고로 사용된 건물이랍니다.

  우리나라 철도건축사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철도차량 정비시설로 철도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랍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경찰서 앞에서 설렁탕을 한 그릇 먹었는데요.

  설렁탕이 유래가 되는 「선농단」이 동대문에 있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선농단」은 조선시대 왕이 풍년을 기원하며 농사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제를 마친 왕은 친히 밭을 갊으로써 백성들에게 농사일이 소중함을 알렸다고 합니다.

 

 

  선농제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 3년(1909)을 마지막으로 일제강점기에 폐지되었으며

  사방 4m의 돌단만이 남아 있던 것을 후대에 복원했다 합니다.

 

 

  왕이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일반 백성들과 함께 먹은 음식을 '선농탕'이라 불렀고

  이 음식이 지금의 '설렁탕'이라는 설명이 「선농단 역사문화관」에 있었는데요.

  설렁탕에 관한 다른 학설도 있으니 어느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

 

  「선농단 역사문화관」은 지난 4월에 개장을 했고 무료라고 하니 한 번쯤 방문해 보세요.

 

 

  선농단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제원 터」라는 표지석이 있는데요.

  「보제원」은 조선시대 여행자에 대한 무료 숙박을 제공하고

  의지할 곳 없는 병자에 대한 치료를 담당하던 구휼기관이었답니다.

 

  조선시대에는 보제원과 비슷한 역할과 기능을 가졌던 기관으로

  서쪽의 홍제원, 남쪽의 이태원, 전관원 등이 있었답니다.

  조선시대 이런 훌륭한 복지단체가 있었다고 하니 대단하네요.

 

 

 

  경동시장에 위치한 서울약령시입니다.

  국내 한약재 거래량의 약 70%를 점유하는 한약재 전문시장으로,

  1960년대부터 한약재를 취급하는 상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청량리역을 이용해 모여 들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고 합니다.

 

  경동시장 한약거리(상가)로 불리다가 1995년 서울시로부터 「서울약령시」로 지정 됐습니다.

  거리를 가득 메운 한약 냄새 때문에 지나다니기만 해도 건강해 진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랍니다. ^^

 

  다양한 한약재가 시중 시세보다 20~40% 저렴한 가격으로 거래된다고 하니,

  봄철 건강을 위해 한 번 들려보심도 좋을 듯싶습니다. ^^

 

 

  할머니와 손자의 무덤

  「영휘원」은 조선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의 무덤이고,

  「숭인원」은 엄씨가 낳은 아들 영친왕의 큰아들 이진의 무덤입니다.

 

  순헌귀비 엄씨는 8살에 입궁해 명성황후의 시위상궁을 하다

  1897년 고종황제와의 사이에서 영친왕을 낳아 귀인이 된 후

  순헌황귀비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 후 여성들의 신교육을 위해 1906년 진명여학교를 설립하였고,

  명신여학교(현 숙명여자대학교)가 재정난을 겪자 200만평 땅을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숭인원에 안장된 이진은 1921년 8월 일본에서 태어나 부모(영친왕, 이방자여사)와 일시 귀국하였으나,

  이듬해 5월, 생후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의 풍습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장례를 치룰 수가 없었으나,

  순종황제가 이진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어른의 장례와 같게 치르도록 하고 원호를 숭인(崇仁)으로 내리고,

  할머니인 순헌귀비 엄씨의 영휘원 남측에 모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곳 영휘원과 숭인원을 「홍릉(洪陵)」이라고 알고 계신데,

  「홍릉」의 주인인 명성황후가 처음에는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가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로 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휘원 옆 세종대왕기념관입니다.

  조선 4대 임금인 세종의 성덕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설립한 이곳은

  1973년 한글날인 10월 9일 개관했습니다.

 

  이곳을 방문해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의 묘인 역릉은 지금의 서울 강남 헌릉 부근에 있었는데

  풍수학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예종(1년)때인 1469년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으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왕의 묘를 옮기면서 당시 운송수단이 마땅치 않아 석물을 함께 옮기자고 하였으나

  왕명에 의하여 그 자리에 묻었답니다.

  1973년에 석물들을 발굴하여 청량리 영휘원(永徽園) 북쪽에 세운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캠퍼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경희대가 위치한 회기동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 씨의 묘인 「회묘(懷墓)」가 있던 곳에서 유래합니다.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회릉으로 추숭하였으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회묘로 강봉되고 신주는 묘 곁에 묻혔으며,

  석물(石物)은 봉분과 함께 남아 있다가 서삼릉 내의 묘역으로 이장되었습니다.

 

 

  배봉산 근린공원입니다.

  이 나지막한 산의 이름에는 유래가 있는데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가 아버지에 의해 죽음을 당한 뒤

  배봉산 기슭에 수은묘라는 이름으로 묻히게 됩니다.

 

  왕세자의 죽음을 슬퍼하던 백성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예를 다해 절을 했다고 하여

  배봉산(拜峰山)이라 부르게 됐답니다.

  이후 수은묘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에 의해 수원의 융릉으로 이장됩니다.

 

 

  이 밖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휘경동은 「휘경원(徽慶園)」이 있었던 곳에서 유래하는데,

  「휘경원」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의 후궁이자 제23대 임금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 씨의 묘입니다.

  휘경원 역시 지금의 휘경중학교 자리에 있다가 철종 임금 때 경기도 남양주로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동대문 경찰서 관내는 옛 왕과 왕족들의 묘지가 많은 곳이네요.

 

 

  장안동 고미술 거리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예스러움을 찾아 인사동을 찾지만

  '진짜 옛 것'에 관심이 있다면 답십리 고미술 거리를 추천합니다.

 

  1980년대 청계천, 아현동, 충무로, 황학동 등지에서 모여든 고미술상 140여 곳이

  답십리에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보고, 묻고, 만지고, 게다가 구매까지 할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

  '답십리 고미술상가 거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보시죠! ^^

 

 

  지금까지 동대문 관내 명물들을 안내해 드렸다면,

  이제 동대문 경찰서 경찰관 중 명물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경찰서 홍보담당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경찰관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동대문 경찰서 최고 인기 경찰관은 바로 지능범죄수사팀 현병의(54)경위입니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현 경위는 헌병대 직업군인으로 8년간 근무하다 늦은 나이에 경찰에 들어왔습니다.

  경찰에 들어와 경제팀 조사업무를 배운 것도 만45세 때인 2007년입니다.

 

  그렇지만 매사 열심히 근무한 덕에 지금은 경제 5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특별한 경력이나 이력을 찾았던 제가 현 경위의 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수사부서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것도 아니고, 높은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늘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현 경위는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는 인품에 가진 경찰관이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근무할 수 있었던 건 군 생활 할 때 제가 형님처럼 생각했던 김성호 경장의 덕입니다."

 

  헌병으로 경찰과 함께 한강 초소근무를 할 당시 김성호 경장은 지금은 퇴직했지만

  얼마 전까지 동대문 경찰서에서 경무과장으로 근무했던 김성호 경정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자신을 추천해 준 선배경찰관처럼

  자신도 늘 후배를 챙겨주고 싶다는 현병의 경위에게서 사람 따뜻한 경찰관의 배려심을 느낍니다.

  서울경찰이 추진하는 선선선 中 하나인 '배려양보선'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다음은 「동작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취재 : 홍보담당관실 이주일 경위
촬영 : 홍보담당관실 박세원 경사

 

 

 

 

우리 동네 경찰서 - 용산경찰서

2015. 4. 30. 08:50

 

 

  책상 위에 커다란 서울 지도를 올려놓고,

  두 눈을 꼭 감은 상태에서 서울에 중앙을 손가락으로 '콕' 찍으면

  아마도 그곳이 용산구일 확률이 높습니다. ^^

 

  한강의 중심이자 서울 한가운데 위치한 용산!

 

  우리 동네 경찰서!

  오늘은 용산 경찰서로 찾아갑니다.

 

  용산구 원효로에 있는 용산 경찰서는 1945년 국립경찰 창설과 함께 문을 열었습니다.

  현재 사용하는 건물은 1979년에 건축한 건물입니다.

 

 

 

 

  남산은 알겠는데 용산은 어디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서울에 40년 이상 살고 저도 용산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네요. ^^

 

 

  서울 인왕산의 남쪽 지맥이 남산을 거쳐 구불구불 능선을 이루고

  한강까지 뻗어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의 모양과 같다'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 용산입니다.

 

  현재는 도심 개발로 용산의 능선에는 집과 빌딩이 들어섰습니다.

  용(龍)이 멋있게 하늘로 승천하기에는 등에 지고 있는 건물이 너무 무거워 보이네요! ^^

 

 

서빙고 나루터 부근에서 본 노량진과 동작대교

 

  용산은 조선시대부터 교통과 물류의 요충지였습니다.

 

  지금의 반포대교 북단에 있었던 '서빙고 나루터'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나루터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서빙고 나루터를 통해 한양에 입성했답니다.

 

 

  서빙고(西氷庫).

 

  '서쪽에 있는 얼음 창고'라는 뜻의 서빙고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운영하는 가장 큰 얼음 창고였습니다.

  위치는 반포대교 북단 지금의 서빙고동 주민센터 자리입니다.

 

 

  용산 서빙고에는 한해 13만 정(丁) 이상의 얼음을 보관했다고 하는데요,

  한 정(丁)의 크기가 대략 두께 12cm 이상, 사방 둘레가 180cm이었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보는 크기의 얼음이 무려 13만 개 이상을 저장했다고 하니 대단하죠! ^^

 

  서빙고의 얼음은 궁중에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일반인에게도 나눠 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활인서(조선시대 의료기관)의 환자 치료나, 한여름 의금부의 죄수에게도 나눠주었다고 하네요. ^^

 

 

 

  배달하는 '집배원', 물건 파는 '판매원', 기타 치는 '김태원' 모두 모여 '이태원'

 

  앞서 말했듯이 물류와 교통의 요충지인 용산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는데요.

  이들에게 잠을 잘 숙박시설이 필요했겠죠?

 

  당시 용산에서 가장 유명한 숙박시설의 이름이 바로 '이태원(梨泰院)'이었습니다.

  '이태원'이 오늘날 호텔의 이름이란, 사실 여러분 아셨나요? ^^

 

 

  조선시대 이태원이 위치한 곳은 지금의 용산고등학교 자리였습니다.

  지금의 이태원 거리와는 조금 차이가 있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일본군 주둔을 위해

  이태원 주변 주민을 지금의 이태원역 근처로 강제 이주 시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태원 거리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태원 입구 관관경찰 안내센터

 

 

 

  "서울은 몰라도 이태원은 안다."

  서울을 방문했던 외국인이 사이에 회자됐던 말인데요.

  그럼 왜 이태원에는 외국 사람이 많은 걸까요?

 

  앞서 설명했듯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의 주둔지였고,

  광복 이후 미군의 주둔지가 되고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많은 외국인이 다니게 되면서

  지금의 상권이 형성됐습니다.

 

 

  현재 이태원은 연간 164만 명 하루 평균 4,500명 정도의 외국인이 찾는 명소가 됐으며,

  1997년 서울시에서 최초의 관광특구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서울에 있는데,

  바로 이태원 '세계 음식거리'입니다.

 

  지하철 이태원역에 내려 해밀톤 호텔 뒤편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데요.

  각자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용산에는 이태원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유일하게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용산미군기지'입니다.

 

  이곳에도 대한민국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시나요?

  정식 명칭은 '미8군 한국 경찰출장소'인데요.

  양현호 경위를 포함 3명의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곳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용산경찰서 보안과 소속으로,

  미군과 한국인 사이에 일어나는 다양한 형사사건의 초기대응과

  미군과 한국경찰간의 연락관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근무하는 경찰관의 특징은 모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과

  매일 한국에서 미국으로 출근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곳 미군부대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주문하고 카드를 내밀었더니,

  미국에서 00달러가 결제 됐습니다. 라는 문자가 오네요. ^^)

 

  한국 경찰출장소에서는 주말 저녁마다 미군 헌병과 함께 이태원 주변 순찰근무를 한답니다.

 

 

  얼마 전 장이태·박호선 경사는 미군의 요청으로

  미국 병사를 상대로 한국 마약 범죄에 관한 특별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미군도 서울에 주둔하면 대한민국 경찰의 보호를 받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미군을 보호하고 있는 대한민국 경찰이야말로 세계 최강이 아닌가 싶습니다. ^^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을 뽑으라면 많은 사람이 효창공원을 이야기합니다.

 

  용산경찰서 관내 있는 효창공원을 찾았습니다.

  때마침 내린 봄비가 한결 더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네요.

 

 

  현재 효창공원에는 광복을 위해 순국한 애국지사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194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이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이곳 효창공원에서 안장했고,

  자신도 1949년 6월 흉탄에 쓰러져 이곳에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이름이 '효창(孝昌)'공원이라는 것이 좀 이상하죠?

  애국(愛國)공원이면 더 이해가 쉬울 텐데 말이죠!

 

 

  '효창공원'의 옛 이름은 '효창원(孝昌園)'입니다.

  이름에서 알 듯 끝에 능(陵), 원(園), 묘(墓)가 들어가면

  왕족의 묘라는 것을 예전 국사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묘를 말하고, 원(園)은 왕이 되지 못한 세자나 세자빈의 묘를 말합니다.

 

  효창원은 '정조 이산'의 어린 아들 문효세자와 그의 생모 '의빈 성씨'의 묘소를 말합니다.

  유독 자식 복이 없었던 정조는 의빈 성씨의 몸에서 첫아들인 '문효세자'를 얻게 됩니다.

 

  존재만으로도 아비에게 기쁨인 '문효세자'는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 죽고 맙니다.

  그리고 같은 해 아들을 잃은 슬픔에 생모인 '의빈 성씨'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조는 이들의 묘지를 선대왕릉 부근으로 하지 않고

  당시 궁궐에서 멀지 않으면서 수십만 그루의 소나무가 장관을 이룬 이곳에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의 묘를 세우고 이름을 '효창원(孝昌園)'이라 했습니다.

 

  효창원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효창공원이 되면서

  기존 묘소는 서삼릉(경기도 고양시 원당)으로 옮김을 당했습니다.

  이후, 조국광복과 함께 독립 운동가들의 묘소를 이곳으로 옮겨와 지금의 공원이 조성됐다고 합니다.

 

 

  용산구 사진을 위성에서 보면 빽빽한 빌딩 숲 사이로 유일한 녹색지대가 효창공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서 말한 건물에 깔린 전설의 동물 용(龍)이 하늘로 승천한다면

  아마도 효창공원 언덕쯤에서 머리를 빼꼼히 내밀지 모른다는 소심한 예언(?)을 해 봅니다. ^^

 

  다음은 '성북 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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