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그 순간까지 가슴 속 새겨진 이름. 경찰

2016. 10. 28. 09:29



경찰의 날을 앞두고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총격전,

당시 현장에 출동해 범인이 쏜 총에 맞아 순직한 故 김창호 경감..

그렇게 우리는 그날 소중한 동료를 잃었습니다.



이처럼 최 일선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에게

위험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지난 10월 21일,

제71주년 경찰의 날을 맞아

근무 중 순직한 경찰관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남겨진 이들이 슬픔을 위로하는 자리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숭고한 희생 그 後

근무 중 순직한 경찰관들,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김신조 사건’이라 알려졌던 1.21 사태.

당시 대통령 암살 지령을 받고 청와대 앞까지 진출한 31명의 북한 특수부대원들.


촌각을 다투는 상황,

어둠을 뚫고 종로 한 복판에서 총격전이 발생했고

젊은 청년 서장이었던 최규식 경무관과 같은 종로경찰서 소속 정종수 경사는

무장공비를 막아서던 중 그들의 총의 맞아 순직하게 됩니다.


총에 맞아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끝까지 사수하라” 외쳤던 최규식 경무관.


두 경찰관의 헌신과 고귀한 희생으로 무장공비의 청와대 진입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추모비와 동상이 건립되었고

종로경찰서에서는 48년 째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가스가 누출됐다!

사람이 쓰러졌다!”


다급한 무전소리, 그리고 유독가스로 가득한 지하 작업장.


1982년, 아현동 가스폭발사고를 기억하시나요?

사고 당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인부들을 구조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진 경찰관이 있었습니다.故 김유연 경장.


출처 : 동아일보


근무와 학업 그리고 임신한 아내를 위한

가사 일까지 도맡아했던 한 집안의 착실한 가장이자

당시 마포서 연봉파출소(현재 공덕지구대 관할) 소속 젊은 경찰관이었던 그는


몸을 사리지 않는 구조작업으로 가스에 질식되어 긴급 후송되었고,

안타깝게도 가족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 이라며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


“결혼을 하게 되니 아버지가 더 생각 난다”며

어린 시절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도 한 없이 자상하기만 했던 아버지를 추억하는 딸


“당신과 같은 경찰이 되겠습니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마포경찰서 동료들은 추모 동상을 제작해

오랜 기간 한결같이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는데요.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신임경찰관들에게 귀감이 되고

동료경찰관들에게 초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카페 안에 도주 중인 성폭행범이 있다”는

시민 제보를 받고 신촌의 한 카페에 젊은 형사들이 들어섰습니다.


당시 10년차 베테랑 형사였던 심재호 경위는 본인 담당 사건이 아니었음에도

피의자를 놓치는 것은 경찰 본분이 아니라며 끝까지 쫓아갔는데요.


총기 사용이 일반적이지 않던 시절,

범인이 휘두른 칼에 맞아 목숨을 잃어가는 순간까지도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범인을 잡고 버티는 일 뿐.


비통함 속에 치러진 영결식.


“사람들이 왜 우는거야?”

너무 어렸기에 아버지의 죽음을 이해 못했던

네 살배기 아들의 말은 지켜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런 아들이 어느덧 훌쩍 자라, 아버지와 같은 경찰을 꿈꾸는 중학생이 되었다고 하네요.



기념일이면 선물바구니를 들고 오던 로맨틱하고 자상한 남편.

자취하는 후배들을 집으로 불러 고기를 구워주던 친절한 선배.

생전에도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고 베풀었던 그가

순직 이후에도 동료 경찰관들에게 큰 선물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의 순직 후, 2년이 지나 ‘위험직무 관련 순직 공무원의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경찰을 포함한 위험직무 중 순직한 공무원들에 대한 보상이 크게 확대됐다고 합니다.


더욱 인상적인 건, 그를 향한 동료들의 큰 사랑도 이에 못지않다는 점이었는데요.

순직 당시 전국 동료경찰관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위로금이 7억 원에 달했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그의 가족을 찾아 위로하는 동료도 있다고 합니다.



“조금 늦어”

아내에게 마지막 안부를 전하고 영영 돌아오지 못한 남편,

하지만, 그의 경찰정신은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길이 남아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같은 꿈을 꾼 세 살 터울의 형제,


문재훈 경위와 그의 동생은

그렇게 그들은 대한민국의 경찰관이 되었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제대로 된 근사한 가족사진 하나 없었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위하고 의지했던 형제였고, 모자지간 이었다고 하네요.


“다녀올게 형, 퇴근하고 엄마랑 외식하자!”

말을 남기고 출근한 동생.


몇 시간 후, 동생이 교통사고 처리 중

졸음운전을 하는 승용차에 치여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애기를 듣고

병원에 달려갔지만, 동생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30대 중반,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동생.

지금도 후배들의 승진을 축하해주는 날이면

승진임용식 때 환히 웃던 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 한 편이 저며 온다고 하는데요.


몇 해 전 근무 중 사고로 눈을 다치는 큰 부상을 입고

경찰로서 삶을 포기하려했었던 문 경위.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해 준 것은 세상을 떠난 동생에게 바쳤던 다짐,


“네 몫까지 근무할게...”

라는 굳건한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제발... 빨리 와주세요, 팀장님이 숨을 안 쉬어요...”


불의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경찰관을 살리기 위해 울면서 구조요청을 하는 동료

사고 당시 이 음성은 SNS 상에 전파되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울렸다고 합니다.

지난 2013년, 11월,

단속근무 중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린 오토바이에 치여 순직한

故 박경균 경위



두 자녀의 아버지이자,

누구보다 팀원들을 생각했던 자상한 팀장이었던 그,


사고 당일에도

사정이 생긴 근무자를 대신해 손수 근무에 임했던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대한민국 경찰관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영전을 지켰던 딸은

지난 8월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가정을 꾸렸다고 합니다.



영결식 테이블에 고이 놓인 영광스런 제복 아래 고귀한 경찰정신은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는 발생하는 사건사고

그 순간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명을 잃어가는 그 순간까지

가슴 속에 새긴 이름, 경찰

마지막까지 그들은 “경찰관” 이었습니다.


우리 곁을 떠난 그들에게는 멈춰진 시간이지만,

수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들의 경찰정신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 속에 기억되고

남겨진 이들은 그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몫까지 살아내고 있습니다.


순직 경찰관들의 숭고한 경찰정신을 기억하고

그 가족들이 슬픔을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는 것,


바로 우리,

서울경찰 그리고 여러분들의 몫일 것입니다.






※ 본 기사는 추서 이후의 계급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기사 : 홍보담당관실 경사 박소영



어느 50대 여인의 마지막 소원

2014. 7. 8. 09:58

  지난 5월 27일 밤 9시.

 

  매우 야위어 병색이 완연한 50대 여인이 서울역파출소를 찾아왔습니다.

 

  그 여인은 거동이 불편해 다른 40대 여인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파출소 근무 중이던 한진국 경위와 박성근 경위는 의자를 권한 뒤,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충북 음성군에 있는 구호공동체 '꽃동네'의 자원봉사자입니다. 제가 모셔온 분은 꽃동네에 입소해 도움을 받고 있는 분으로, 이 분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간절한 소원을 위해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40대 여인이 먼저 용건을 밝히자 50대 여인이 뒤이어 본인의 사정에 대해 설명합니다.

 

 

  "저는 지적장애가 있어 20여 년 전에 가족과 헤어져 꽃동네에 입소하여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10년 전 당뇨병에 걸려 약을 먹고 있는데 최근에 당뇨 합병증이 심해져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이 듭니다. 숨이 붙어 있는 동안 하나뿐인 혈육인 오빠를 만나고 싶은데 그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 연락처도 모르겠습니다."

 

  그 50대 여인은 파출소를 찾아온 연유에 대해 이야기하며 흐느끼기 시작했고, 사연을 듣던 한 경위와 박 경위도 가슴이 울컥하는 것을 애써 참아야 했습니다.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한 경위와 박 경위는 오빠의 소재지 파악을 위해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이미 수십 년이 지나 흐릿해진 기억에 곤란함을 겪는 가운데 어렵게 오빠를 찾을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를 찾아냈습니다.

 

  그중 결정적 단서는 '212번 버스 종점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오빠 집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70cm 정도의 큰 키에 30kg 정도의 몸무게로 혼자 힘으로는 서 있기도 힘들어하는 이 여인은 한 경위의 손을 붙잡고 "생전에 오빠를 꼭 만나게 해 달라.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그 절박한 모습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던 한 경위와 박 경위는 바로 순찰차에 몸을 싣고 옛 212번 버스 종점이 있던 양천구 신월동으로 달려갔습니다.

 

 

  파출소에서 목적지로 이동하는 중에도 '호구조사'는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흐릿하던 '오빠 집'에 대한 윤곽이 점점 드러납니다.

 

  30여 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 주변을 수소문해 옛 212번 버스 종점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까지는 수월하게 풀렸습니다.

 

  하지만 동네 전체가 비슷한 집이 많은 주거 밀집 지역이다 보니 그녀의 기억을 더듬어 찾기가 쉽지 않아 한 경위와 박 경위는 주변의 집을 하나씩 하나씩 확인하며 훑어 나갔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4시간여의 수소문 끝에 오빠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나오는 오빠를 본 그녀는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과 희망이 얼굴에 가득 찼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해하던 오빠도 이내 동생임을 알아보고 그 병약한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동생을 안아 주었습니다.

 

  소원을 이루게 해 주어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며 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에서 그녀가 그토록 찾았던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연을 듣고 인터뷰에 나서자 두 경찰관은 "저희가 아니라 저희 팀원 누구라도 발 벗고 나섰을 겁니다."라며 애써 공로를 팀 전체에 돌리며 멋쩍은 미소만 지었는데요.

 

  꽃동네 여인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준 서울역파출소 한진국 경위, 박성근 경위. 수고 많으셨어요. 곤란한 일을 겪는 시민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09-27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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