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는 한양도성 성곽 북쪽에 있어 성북(城北)구라 명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저십리* 숭신방과 인창방에 포함될 정도로 한양 중심부에서 가까웠음에도 성북구에 많은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인 영조(1724~1776)대 부터로, 성북구의 토질 등 제반 환경이 농경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사대문 주변 10리 이내, 다만 중랑천, 홍제천, 한강 등 자연 경계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임 영조가 성북구의 부흥을 위해 어영청(御營廳)*의 북둔(北屯)을 설치하고 면, 베, 모시 등 포백(曝白)과 훈조(燻造, 메주 쑤는 일) 독점권을 부여한 후 주민이 늘기 시작했는데요. * 조선 후기 중앙에 설치된 오군영 중 하나로, 왕을 호위하는 군영오군영 - 훈련도감(訓鍊都監), 어영청(御營廳), 금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