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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이야기/서울경찰 치안소식 39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성북경찰서 편

성북구는 한양도성 성곽 북쪽에 있어 성북(城北)구라 명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저십리* 숭신방과 인창방에 포함될 정도로 한양 중심부에서 가까웠음에도 성북구에 많은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인 영조(1724~1776)대 부터로, 성북구의 토질 등 제반 환경이 농경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사대문 주변 10리 이내, 다만 중랑천, 홍제천, 한강 등 자연 경계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임 영조가 성북구의 부흥을 위해 어영청(御營廳)*의 북둔(北屯)을 설치하고 면, 베, 모시 등 포백(曝白)과 훈조(燻造, 메주 쑤는 일) 독점권을 부여한 후 주민이 늘기 시작했는데요. * 조선 후기 중앙에 설치된 오군영 중 하나로, 왕을 호위하는 군영오군영 - 훈련도감(訓鍊都監), 어영청(御營廳), 금위영(..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금천경찰서 편

금천구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고구려의 한강 유역 점령 이후로, 고구려는 당시 금천구 일대를 잉벌노현(仍伐奴縣)이라 불렀습니다. 잉벌노는 '뻗어 나가는 땅'을 의미하는 순우리말 '늠내'의 음차(音借)*로 알려지는데요. * 한자의 음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 통일신라 경덕왕 때 곡양현(穀壤縣), 조선 태종 때 금천현(衿川縣)으로 개칭되었고, 조선 후기에 시흥현(始興縣)이 되며 현재의 금천구 시흥동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런 오랜 역사와는 별개로 금천구는 광진구, 강북구와 함께 1995년 3월 신설된(구로구에서 분리 · 신설) 서울의 막내뻘이 되는 자치구인데요. 옛 지명에 담긴 뜻이 마치 예언과도 같이 적중하며 지식 · 정보통신산업을 기반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땅'이 되었답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중부경찰서 편

북위 37도 33분 06.890초, 동경 126도 59분 30.664초. 이 좌표는 지난 2009년 1월 한국토지정보시스템과 GIS 프로그램 및 GPS 측량 등 최신 기술을 동원해 밝혀낸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중심점입니다. 다만, 실제 중심점은 녹지 안에 있어 서울시는 그곳에서 200m 가량 떨어진 남산타워 인근에 조형물을 설치해 서울의 중심점임을 표시했는데요. 중심점과 조형물의 행정구역 상 주소는 바로 서울시 중구 예장동 산 5-6번지! 중구(中區)는 실제로도 서울의 중심이었던 것입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스물한 번째 이야기! 오늘은 중구와 중부경찰서를 찾아갑니다. 중부경찰서는 일제 강점기였던 1894년 7월 14일 한성부 경무 남지서로 개서, 이후 남부경찰서(1907.7.27.), 경성 본..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도봉경찰서 편

굳이 풍수지리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형태(배산임수)는 사람이 살기 적합한 지형입니다. 산에서부터 모여든 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여분의 물은 하천을 통해 흘러나가 주택 침수를 방지하는 한편, 겨울의 찬 바람을 배후의 산이 막아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뒤로는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는 도봉산이 우뚝 솟아있고, 앞으로는 중랑천과 우이천이 흐르는 도봉구는 그야말로 살기 좋은 곳임에 분명합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스무 번째 이야기! 오늘은 도봉구와 도봉경찰서를 찾아갑니다. 도봉경찰서는 1991년 11월 1일 북부경찰서(現강북경찰서)의 6개 파출소와 노원경찰서의 7개 파출소를 인계받아 개서한, 비교적 신생 경찰서*입니다. * 서울 경찰서 중 30번째로 개서, ..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강서경찰서 편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서울에는 여전히 벼를 재배하는 논이 있습니다. 강서구 마곡도 개발 전 서울 전체 논 면적(5.1㎢)의 절반(2.4㎢)을 차지했던 곡창지대로, '마곡벌'이라고도 불리던 곳입니다. 가을이면 금빛 물결로 물들던 마곡벌은 이제 벼 대신 IT, R&D, 의료 등 첨단 산업의 기초가 싹트는 곳으로 탈바꿈했는데요. 서울의 남은 논벼 재배 지역(2022년 현재 약 1.73㎢) 역시 대부분 강서구에 몰려 있으니 강서구는 1차 산업과 4차 산업이 공존하는 특별한 자치구랍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열아홉 번째 이야기! 오늘은 강서구와 강서경찰서를 찾아갑니다. 강서경찰서는 1977년 2월 25일 영등포경찰서 관할 10개 파출소를 인수하며 개서* 강서구의 분구(1977.9.1.)에 맞춰 19..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송파경찰서 편

일설엔 옛 한강변의 이 마을 언덕을 중심으로 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송파(松坡=소나무 언덕)라 칭했다고 합니다. 유래를 듣고 나니 송파(松坡)라는 이름이 괜스레 친근하게 느껴지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무 부동의 1위가 소나무이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소나무는 바람과 서리에 굴하지 않아 기개를 상징하기도 하는데요. 그 어원인 '솔'이 '수리'(=으뜸)에서 왔다는 설도 있으니 경찰의 상징인 참수리와도 연결되는 듯해 더욱 마음이 갑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열여덟 번째 이야기! 오늘은 송파구와 송파경찰서를 찾아갑니다. 송파경찰서는 1988년 송파구가 강동구에서 분구(分區)하고 도시 개발이 이루어짐에 따라 1990년 강남경찰서와 강동경찰서에서 송파구 지역 파출소를 인계받아 개서했..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노원경찰서 편

드넓은 평야에 갈대(蘆)가 많은 들판(原)이 있었다는 노원구(蘆原區). 일설에는 무성한 갈대로 인한 행인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여관(院)을 설치한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도 합니다. 고려시대부터 사용될 만큼 역사 깊은 지명인 갈대 들판(蘆原)은 어느새 셀 수 없이 많은 단지가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 숲으로 변화했는데요. 바람 따라 춤추던 갈대는 여전히 중랑천변의 산책로에 명맥을 이어오고 있답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열일곱 번째 이야기! 오늘은 노원구와 노원경찰서를 찾아갑니다. 노원경찰서는 1980년대 서울 동북부의 도시개발로 인해 증가한 치안수요에 대응해 북부경찰서(現강북경찰서)와 태릉경찰서(現중랑경찰서)에서 각각 파출소를 이관받아 1990년 10월 5일 현재의 위치(노원로 283)에 개서했습니..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서부경찰서 편

대구서부경찰서, 부산서부경찰서, 인천서부경찰서, 광주서부경찰서, 대전서부경찰서, 일산서부경찰서, 수원서부경찰서, 화성서부경찰서, 용인서부경찰서, 김해서부경찰서, 창원서부경찰서, 제주서부경찰서, 그리고 서울서부경찰서! 이렇게 전국에는 서부경찰서가 13개나 존재한답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흔한 이름을 지닌 경찰서라고도 할지 모르지만, 모든 서부경찰서들은 나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경찰관서이지요. 오늘은 그중 반백년의 역사를 지닌 서울서부경찰서를 소개할까 합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열여섯 번째 이야기! 오늘은 은평구와 서부경찰서를 찾아갑니다. 서부경찰서는 서대문경찰서에서 관할하던 은평구 지역의 인구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1969년 2월 12일 서대문경찰서에서 분서(分署), 현재의 위치*에 개서했습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성동경찰서 편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는 이렇다 할 생산 기능이 없던 사대문 안의 소비자에게 신선한 채소와 과일 등을 재배해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 사대문 주변 10리 이내, 다만 중랑천, 홍제천, 한강 등 자연 경계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임 한양도성 성곽의 동쪽에 있어 성동(城東)이라 명명된 자치구, 성동구 역시 성저십리에 포함되어 무와 배추를 주로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유구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성동구의 모습과 남겨진 옛 흔적을 살피고자 합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열다섯 번째 이야기! 오늘은 성동구와 성동경찰서를 찾아갑니다. 성동경찰서는 1945. 10. 21. 국립경찰의 창설과 동시에 개서, 현재의 성동구, 광진구,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에 중구의 일부까지 ..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 양천경찰서 편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어떤 곳에 대해 하나의 문장, 또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는 참으로 어렵겠지요. 그런데 서울의 이 자치구에 대해서는 ○○○○라 하면 누구나 납득하곤 하는데요. 서울 남서부에서 최고의 교육환경을 자랑하는 자치구, 바로 '교육특구' 양천구입니다. 서울, 그리고 서울경찰. 그 열네 번째 이야기! 오늘은 양천구와 양천경찰서를 찾아갑니다. 양천구는 1977년 강서구가 영등포구에서 분구된 후, 대단위 주거단지가 형성되며 1988년 강서구에서 3개 동(목동, 신정동, 신월동)을 나누며 분구했습니다. 양천경찰서는 양천구의 분구보다 앞선 1987년 6월 1일 신정경찰서로 현 위치에 개서, 1991년 7월 31일 현재의 이름인 양천경찰서로 개칭했습니다. 현재 양천경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