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도 경찰서가 있다고요?
'등산객들의 생명지킴이' 경찰산악구조대를 소개합니다
▲ 단풍이 완연한 가을 도봉산의 모습
깊어가는 가을, 한적한 산길을 걸으며 울긋불긋 단풍을 감상하는 묘미는 다른 계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을산행만의 특권입니다.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맘때, 가을을 즐길 여유도 없이 등산로에서 조용히 사람과 산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수십 년간 등산객들의 '생명 지킴이' 역할을 해 온 경찰산악구조대입니다.
경찰산악구조대는 1983년 5월에 만들어졌습니다.
▲ 1983년 5월 경찰산악구조대 발대식 모습
1983년 4월 한국대학생 산악연맹 소속 대학생들이 북한산 인수봉 춘계 암벽에서 합동 등반을 하던 도중 기상악화로 조난을 당해, 7명이 암벽에 매달려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당하는 대형 사고를 계기로 창설된 것인데요.
이후 탐방객들과 사고 건수가 가장 많은 북한산과 도봉산 두 곳에 경찰산악구조대를 만들어 24시간 지키도록 한 것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자~ 지금부터 등산객의 생명을 지키는 사명감과 끈끈한 동료애로 똘똘 뭉친 진짜 산 사나이들인 경찰산악구조대를 만나보실까요?
도봉산 경찰산악구조대!!
호랑이를 만나려면 호랑이 굴에 가야하듯, 산악구조대를 만나려면 산으로 가야겠죠~ '헉헉!!!'
11월 1일 금요일.
취재를 위해 찾은 도봉산!! 도봉산 입구 매표소에 주차한 뒤, 마중 나온 도봉산 경찰산악구조대 염요섭 대원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1시간 가량을 올라갔습니다.
▲ 도봉산 산악구조대 전경
도봉산 정상인 선인봉에서 약 300m 아래의 암벽 밑에 위치한 30평 남짓한 아담한 목재건물이 보이는데요. 이곳이 바로 도봉산 경찰산악구조대 본부입니다. 막사를 선인봉 아래 마련한 것은 도봉산 내 어떤 장소든 20분 안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걸 바로 '최적의 위치'라고 하는 거겠죠?
도봉산 경찰산악구조대의 식구는 현재 모두 8명.
▲ 선인봉을 배경으로 선 전득주 대장과 산악구조대원들
도봉산 경찰산악구조대는 현직 경찰인 구조대장 3명과 의무경찰 5명의 소수정예 구조대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득주 구조대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응급구조∙암벽 등반 강사 자격증을 따고 6년째 도봉산을 지키고 있는 산악구조 베테랑입니다.
지원자로 선발하는 의경들은 막사에서 상주하고, 대장인 현직 경찰 3명이 3교대로 근무하며 하루 근무 인원 6명을 유지하면서 비상상황에 대비합니다.
▲ 구조대원들이 생활하는 2층 침대
목제 건물 안에는 구조대원들이 잠을 자는 방과 주방, 욕실 등이 갖춰져 있는데요. 대원들은 식재료 구입부터 요리까지 모두 직접 한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2번씩 20㎏의 지게를 지고 산을 내려가 식재료를 구입하고, 겨울에는 호스가 얼어 매일 30분 거리를 이동해 5ℓ짜리 물통으로 물도 직접 떠온다고 하니, 일상이 체력훈련인 셈이죠^^;;
구조대원들의 임무와 일상
신선대에서부터 주봉, 포대능선을 거쳐 사패산까지가 도봉산 경찰산악구조대의 영역입니다.
도봉산은 대부분 암반과 기암절벽으로 돼 있어 안전사고가 잦은 편으로, 지난해만 해도 2명이 목숨을 잃고, 98명이 다쳤습니다. 올해는 10월 현재까지 1명이 숨지고, 75명이 다치고, 14명의 조난자가 발생했는데요.
▲ 도봉산 산악구조대 전득주 구조대장
전득주(49 · 경위) 구조대장은 "가을철 주말에는 하루 평균 2만여 명의 등산객이 도봉산을 오르다 보니 조난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며, "하산 길에 미끄러져 사고가 나는 경우가 가장 많고, 암벽 등반 중 낙하하는 사고도 빈번하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산악구조대는 등산객을 구조하는 것은 물론, 산에서 발생하는 형사사건도 처리하는데요. 사찰에서 불상을 훔치거나 다른 등산객의 배낭을 들고 가는 절도사건, 등산객들 사이의 폭행사건 처리도 구조대의 업무입니다.
지난달에는 도봉산 야영장에서 옆 텐트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은 40~50대 남성 7명이 멱살잡이를 하는 폭행사건이 발생해 구조대가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 구조대원들과 함께한 순찰길
구조대는 오전에는 암벽 등반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보통 7시간 이상을 산속에서 순찰하면서 보낸다고 하니, 가히 일상이 철인 3종경기라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에 보람 느껴
오후 1시 30분경 염요섭 대원과 함께 도봉산 경찰산악구조대 막사로 이동하던 도중 발목 골절 환자가 발생했다는 다급한 무전이 들려왔습니다.
염 대원과 함께 약 1㎞ 떨어진 사고 지점까지 내달렸습니다.
▲ 인파로 북적거리는 마당바위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보통 걸음으로 30분 걸린다는 거리를 15분 만에 주파했습니다.
▲ 발목 골절 환자를 응급처치 중인 구조대원의 모습
전득주 경위와 대원들은 발목 골절 환자의 부상 정도를 살피고 재빨리 응급처치를 실시했습니다. 다행히 발목 골절 외엔 별다른 외상은 없어 보였는데요.
부상자는 20대 중반의 여성이었는데, 마당바위에서 하산하던 중 바위틈에 발이 빠져 오른쪽 발목이 골절됐다고 합니다. 대원들은 부목과 압박붕대, 에어파스 등으로 응급처치한 후 헬기 후송이 쉬운 마당바위까지 100m 정도를 업어서 이동하였습니다.
▲ 연막탄을 터트려 소방헬기에 구조 위치를 알리는 구조대원의 모습
119소방헬기에 위치를 알리기 위해 연막탄을 켭니다. 대원들은 가방 속에 연막탄을 하나씩 휴대하고 있습니다.
119소방헬기가 곧이어 사고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헬기 프로펠러의 엄청난 바람 때문에 부상자를 헬기에 인계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는데도 구조대원들은 능숙한 솜씨로 부상자를 안전하게 이송했습니다.
▲ 119소방헬기로 부상자를 이송하는 구조대원의 모습
구조대원들에게 가장 어려운 상황은 환자의 부상이 심각한데 기상이 나빠 헬기가 산까지 올 수 없을 때라고 합니다. 이때는 구급차가 올 수 있는 도봉산 입구까지 환자를 직접 옮겨야 하는데, 3~4명의 구조대원이 일정 거리씩 교대해가며 환자를 업어서 산을 내려간다고 합니다.
몸을 가눌 수 없는 환자는 들것에 실어 산 밑으로 옮기는데 들것의 무게만 25㎏입니다. 체력이 좋은 대원들도 2시간 동안 사람을 업고 내려가면 탈진할 정도라고 합니다. 전 대장은 "한번은 발목을 다친 100㎏이 넘는 남성을 업어 산을 내려가는데 상체에 힘을 주니 '빡'소리가 나며 갈비뼈에 금이 간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 구조대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득주 경위와 대원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참 대단하고 멋있는 분들이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대원들의 애환과 구조 경험들을 듣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묵묵히 임무를 완수해내는 그들의 모습에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도봉산 경찰산악구조대에서의 짧은 체험을 마치고,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한 채 도봉산을 내려왔습니다.
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 그리고 김창곤 경위
11월 4일 월요일 오전.
도봉산 경찰산악구조대 전득주 경위로부터 전해 들은 대로 암벽 등반 실력으로는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자랑한다는 김창곤 경위를 만날 생각을 하니 아침부터 두근두근 가슴이 떨렸습니다.
▲ 북한산 인수봉의 모습
도선사 주차장에서부터 백운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인수봉을 향해 20분 정도 올라가다 보면 해발 550m에 위치한 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가 보입니다.
▲ 북한산 산악구조대의 모습
2008년 1월에 신축한 건물이라 외관은 도봉산 경찰산악구조대보다 좋아 보였는데요. 하지만 내부엔 별도의 화장실과 독립된 수면 공간이 없어서 생활하는데 적지않은 불편이 있다고 합니다.
북한산은 우이령을 경계로 하여 도봉산으로 나누어지는데요.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산으로 등재돼 있을 정도로 탐방객들이 많다 보니 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에겐 1년 365일이 비상입니다.
지난해에만 사망자 1명, 부상자 123명, 조난자 14명 등 총 138명을 구조하였고, 올해는 10월 말 현재까지 사망자 8명을 포함해 177명을 구조하였습니다. 수치로만 보자면 작년보다 더 바빠진 셈이죠;;
암벽 사고가 전체 사고의 50%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김창곤 구조대장은 평소 실제 사건과 흡사한 훈련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 암벽 등반 훈련 중인 대원들의 모습
"100번을 잘하다가도 딱 한 번 실수해서 추락하면 목숨을 잃는 게 암벽 등반입니다. 수직 세계란 그런 것이죠. 그 한 번에 대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훈련과 교육을 하는 겁니다." 라고 김창곤 경위가 말합니다.
▲ 자유등반 훈련 중인 김창곤 경위와 대원들의 모습
이날은 경사 75도가 넘는 암벽을 자유자재로 오르고 내리는 자유 등반부터 조난자를 업어 내리는 훈련 그리고 암벽에서 떨어진 부상자를 들것에 실어 구조하는 훈련 등을 했습니다.
▲ 부상자를 들것에 실어 구조하는 훈련
보기만 해도 아찔한 장소에서 실시되는 훈련! 하지만 숱한 훈련으로 단련된 이들에게 두려움이란 없어 보입니다.
▲ 훈련에 임하는 박민우 수경의 모습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렸던 터라 박민우 대원에게 "무섭지 않으냐?"고 살짝 물어봤는데요. "재밌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물어보는 제가 다 머쓱해졌답니다.;; 대원들이 아무리 20대 초반이라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발걸음은 마치 솜털같이 가벼워 보였습니다. 위풍당당 '산 사나이들'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가량 훈련을 끝내고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위에서 타는 목을 축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훈련이 끝난 후의 물 한 모금
김창곤 대장은 "구조대 활동을 하면서 생사가 오가는 아찔한 순간을 많이 경험했다"며 "등산이나 암벽 등반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산을 오르기 전 충분한 스트레칭과 준비운동을 하고 등산 하루 전날 코스를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골프 같은 운동에 돈 들이는 건 당연하고 목숨 걸고 하는 등산은 공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등산도 안전하게 하려면 투자를 해야 합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고, 장비로 제대로 갖춰야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어요."
김 경위는 2003년 6월 19일부터 2013년 11월 현재까지 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장으로 재직하면서 약 650건의 산악사고를 처리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건이 무엇인지 묻자 "의상봉 능선상의 나월봉에서 추락한 시신을 한 달 만에 찾은 실종사고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사고자 아버지가 매일같이 북한산에 와 아들을 찾아다녔고, 저 역시 북한산에서 추락할 만한 곳은 죄다 훑고 다녔으니까요." 라고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 자일(등산용 로프)을 이용해 암벽을 등반 중인 대원들의 모습
김창곤 경위는 5 · 13d급 수준*의 등반 기량을 지닌 경찰산악구조대장으로 유명합니다. 해군 부사관 시절 한 대원의 권유로 백아도 해벽을 접하다 암벽 등반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경찰에 투신한 것 역시 경찰산악구조대장이 되어 산에 다니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는데요. 김 경위는 그동안의 구조 경험을 바탕으로 암벽 등반과 안전에 관한 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밝혔습니다.
* 암벽 등반 난이도에 관한 국제표준인 미국 요세미티 등급체계로, 5 · 13d 등급은 국내에서도 10명 미만의 클라이머만 등반할 수 있는 최상급 난이도에 속합니다.
인수봉 정상에서 내려온 필자는 대원들의 배낭 속이 궁금했습니다. 도봉산 경찰산악구조대도 그렇고 대원들이 항상 큼지막한 등산 가방을 메고 이동했으니까요. 뭐가 들어있는지 잠깐 살펴볼까요?
▲ 경찰산악구조대원의 배낭속의 들어있는 장비들
대원들은 배낭 속에 붕대, 스프레이 파스, 알코올 거즈, 소독약, 부목, 인공호흡장비, 연막탄, 등반 장비 등을 메고 이동하는데요. 그 무게만도 20㎏ 정도라고 합니다.
생소했던 것은 지혈대로 생리대를 이용했던 것이었는데요. 혈액 흡수가 빨라서 환자를 빨리 지혈시킬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이것을 활용한다고 합니다.
또 골절 부위에는 일반적인 나무 부목이 아니라 등산용 매트를 반으로 잘라 활용하는데요. 골절 부위 자극으로 환자의 통증이 심해지면 쇼크 상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대들은 우리들의 영웅!!
▲ 자일을 이용해 암벽을 등반 중인 대원들의 모습
경찰관은 수사부터 교통 업무에 이르기까지 나열할 수도 없는 수많은 임무와 궂은 일을 도맡아 합니다.
이번에 제가 만나본 경찰산악구조대원들 역시 대한민국의 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등산객 여러분들의 '생명 지킴이'들 이니까요.
수십 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많은 등산객들의 추억과 함께 자리해 온 도봉산 · 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그들의 열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등산로에서 이분들을 만날 때 "수고했다, 고생했다, 감사하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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