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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이야기/현장영웅 소개

우리 동네 경찰서 - 서울서대문경찰서 편

서울경찰 2015. 4. 1. 17:04

 

 

  걸어서 서울 속으로...

  오늘 방문할 경찰서는 서대문경찰서입니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서대문역 주변에 '서대문경찰서'는 있는데 '서대문'은 없네요?

 

 

  맞습니다. 서대문은 현재 없습니다. ㅠㅠ

 

  일제강점기인 1915년 전차 궤도 복선화 사업을 이유로 조선총독부에 의해 철거됐습니다.

  과거 서대문이 있었던 자리에 이곳이 서대문(돈의문)이었음을 알리는 표지판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입니다.

 

 

  '숭례문'이 '남대문'의 정식 이름이듯

  '돈의문'은 '서대문'의 정식 이름입니다.

 

  최초 서대문은 태조 5년(1396) 사직공원 부근에 세워진 '서전문'이었습니다.

  이후 도성을 고치며 세종 4년(1422) 지금의 정동사거리에 새로 세우며 '돈의문(敦義門)'이라 칭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돈의문을 새로 지어진 문이라고 해서 '신문(新聞)' 또는 '새문' 이라고 했는데요,

  지금의 신문로가 서대문을 통하는 길이고,

  1887년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새문안교회' 역시 새문(서대문) 안쪽에 지어진 교회라는 뜻입니다.

 

 

  예전 서울은 성곽에 둘러싸여 있었고 여덟 개에 문으로만 출입을 했는데요,

  여덟 개의 문이 바로 사대문과 사소문입니다.

 

  사대문은

  동대문(흥인지문), 서대문(돈의문), 남대문(숭례문), 북정문(숙정문)이고,

  사소문은

  동소문(혜화문), 서소문(소의문), 남소문(광희문), 북소문(창의문)입니다.

 

  그런데 유독 서쪽 지역을 통과하는 '서대문'과 '소의문'이 일제의 도시계획에 의해 철거됐습니다.

 

 

  서대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서대문 형무소'인데요.

  과거 '형무소'는 현재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하 서대문 역사관)'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서대문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한 블록 올라가면 독립문역 사거리가 나옵니다.

  이곳이 바로 '서대문 역사관'이 있는 독립공원입니다.

 

 

  독립문이 멋져 보입니다.

  저는 이번 취재가 있기 전까지는 독립문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줄 알았습니다. ㅠㅠ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독립문 앞에 두 개의 돌기둥이 보이시나요?

  이 기둥의 이야기를 알면 독립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돌기둥은 커다란 문을 바치던 기둥인데요.

  그 문이 바로 영은문(迎恩門)입니다.

 

 

  영은문은 모화관(慕華館)의 대문 격입니다.

  모화관이란 조선시대 한양을 찾아오는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장소입니다.

  사신이 도착하면 왕세자가 모화관까지 직접 나가서 이들을 영접하고 연회를 베풀며 위로했다고 합니다.

 

  독립문은 1897년 서재필 선생 등이 세운 독립협회가 국민의 성금을 모아 세웠습니다.

  조선의 개방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기 위해 모화관과 영은문 앞에 세운 것입니다.

 

 

  모화관은 후에 독립협회 사무실로 사용했고,

  지금은 '독립관'이라는 이름으로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봉안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독립문의 생김새가 파리의 개선문과 비슷하지요?

  이 문을 처음 디자인한 서재필 선생이 파리의 개선문을 보고 스케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서려 있는 서대문 역사관입니다.

 

  일본이 을사늑약(1905)으로 외교권을 강탈하고 이에 저항하는 수많은 사람을 가둘 감옥이 필요했는데요.

  그래서 지은 '경성감옥'이 바로 '서대문 형무소'입니다.

 

  주말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꼭 한번 들러 보시기를 권하며

  사진 몇 장으로 이곳의 슬픈지만 꼭 기억해야 할 역사를 전합니다.

 

 

  서대문역에 내리면 바로 서대문경찰서가 보입니다.

  서대문경찰서 1894년 7월 '서경찰지서'로 출발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지나 1945년 경찰 창설과 함께

  지금의 '서대문경찰서'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서대문경찰서에는 조금 특별히 경찰관이 있는데요.

  바로 '외국인 안전 지킴이'입니다.

 

  외국인 안전 지킴이는 서대문 지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안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서대문경찰서에서 운영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이들은 영어와 중국에 능통한 경찰관 4명으로 구성됐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148만 명이랍니다.

 

  이들이 주로 방문하는 곳은 명동, 동대문시장, 고궁 등인데요.

  그 중 24.2%가 서대문경찰서가 관할하는 신촌과 홍대주변을 찾는답니다.

 

 

  지난해 12월 대만에서 온 관광객이 휴대전화를 잃어 버렸다며 외국인 안전 지킴이에게 도움을 청했는데요.

  이들은 최아나 순경의 도움으로 서울의 한 편의점에 있는 휴대전화를 찾을 수 있었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사연을 올려 한국 경찰과의 인연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이화여대 입구는 중국인들이 찾는 관광명소입니다.

  이화(梨花)라는 발음이 "재물을 부른다."는 중국식 발음과 유사하고

  이곳을 배경으로 한 한국 드라마 등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

 

 

  취재를 하고 있는 중에도 외국인들이 지리를 묻는 등 도움을 청했는데요,

  이런 작은 것에서도 서대문경찰서의 외국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홍제천 이야기

 

  서대문에는 홍제천이 흐릅니다.

  북한산을 발원지로 종로와 서대문과 마포를 지나 한강으로 유입되는 아름다운 하천입니다.

  서대문경찰서 홍은 파출소 이선아 순경이 전하는 홍제천 이야기입니다.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는 50만 명의 조선 백성을 전쟁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이후 가족들이 몸값을 지불하고 어렵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포로로 잡혀갔던 부녀자들은 오랑캐에게 정절을 잃었다 하여 '화냥녀'라는 수치를 당하게 되는데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인조임금은 포로로 잡혀갔던 부녀자들을 홍제천에서 목욕하도록 해

  몸과 마음이 깨끗해졌음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누구든지 부녀자들의 정조문제를 거론하면 엄벌에 처하겠다는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슬픈 역사와 인조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서대문경찰서 최재천 서장은 서대문구에서 4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이곳 주민이랍니다. ^^

  '도탑다'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서로의 관계를 끈끈히 한다는 말로 '돈의문'의 돈(敦)이 바로 그 뜻이랍니다.

 

  "서대문 주민은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주민 간에 끈끈한 정이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도탑게 지내는 이유가 돈의문의 좋은 기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라며 자랑을 아끼지 않은 서대문 서장님. ^^

 

  이런 끈끈한 정을 기반으로 더 안전하고 행복한 서대문구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동안 서대문을 복원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언제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대문'과 '서소문'이 멋진 모습으로 우리 곁에 서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

 

  다음은 '혜화경찰서'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