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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이야기/경찰의 새 이름, 인권경찰

탈북 청소년들의 ‘우리말’로 꾸는 꿈

서울경찰 2013. 8. 7. 09:40

 

서울 강남구에는 탈북 청소년들이 희망의 빛을 키워가는 '여명 학교' 기숙사가 있습니다.

 

탈북 청소년들의 한국사회 적응을 돕고, 나아가 이들을 미래 통일 한국에 중요한 이바지를 할 수 있는 인재로 교육하기 위해 지난 2004년 개교한 여명 학교는 서울 중구 남산의 아랫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총 90명의 학생 중 22명의 학생이 강남구 논현동(남학생 13명), 삼성동(여학생 9명)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강남경찰서 보안과(서장 김기출) 염희숙 경위를 비롯한 경찰관들은 이들 22명의 학생이 하루빨리 우리 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신변보호와 범죄예방교육 등의 노력을 계속해왔습니다.

 

그러던 지난 3월의 어느 날. 논현동에 위치한 여명 학교 남학생 기숙사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염 경위는 강남구청과 연계하여 기숙사의 화재 복구를 지원하면서 학생들을 더욱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화위복이라고 할까요. 염 경위는 학생들과 더욱 친해져, 예전에는 하기 힘들었던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염 경위는 학생들이 북한 사투리에 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북한 사투리 때문에 대인 관계에 두려움을 갖게 되고, 남한 사회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왕따를 당하기 일쑤라는 등 그간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남한의 표준어를 배우고 싶다는 뜻을 염 경위에게 조심스럽게 전해왔습니다.

 

염 경위는 아이들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염 경위>

 

그동안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도 막상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어 가슴 한편이 무거웠는데,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쳐 줌으로써 이들의 앞날에 ‘여명’을 밝혀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에 염 경위는 그 길로 여명 학교를 찾아가 논현동 · 삼성동 기숙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외활동을 진행하는 방안에 관해 학교 측과 논의했습니다. 희망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활동을 지원할 수 있게 된 염 경위는 다음으로 학생들에게 강의를 제공할 학원을 찾아 나섰습니다.

 

어느 지역을 어떻게 검색해야 하나 막막한 마음이 앞섰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송파구 탈북자 마을 주변의 일명 '스피치 학원'을 검색했습니다. 대부분의 스피치 학원은 취업준비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취업을 목전에 둔 탈북자들이 수강하고 있는 스피치 학원이 있을 수도 있다고 짐작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취업을 준비하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스피치 학원 'PINspeech 아카데미'를 발견했습니다.

 

무작정 학원을 방문해 'PINspeech 아카데미'의 김경희 원장에게 사정을 설명한 염 경위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탈북자 대상으로 스피치 교육을 한 경험이 있는 김 원장이 수강료를 절반가량 할인해주고 직접 강의를 진행해주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전해온 것입니다.

 

다음 문제는 비용이었습니다. 학원 측에서 강의료를 대폭 할인해주었지만 그럼에도 7백만 원가량 되는 강의료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평소 탈북자 인권 보호를 위해 힘써온 한 독지가가 이 사정을 듣고는, 학생들의 교육비 전액을 흔쾌히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드디어!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덕에 최종적으로 '우리말'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의사를 표한 15명의 학생이 지난 6월 8일부터 7월 27일까지 8주간 '우리말 바르게 말하기'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육은 강남경찰서 2층 강당과 학원 강의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PINspeech 아카데미' 김경희 원장이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강의를 진행해주었습니다.

 

첫날의 교육과정은 개인발표 및 목표설정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꺼려왔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김경희 강사의 조언과 격려를 듣고 아이들은 8주 후 이루고 싶은 각자의 목표를 하나씩 설정해 나갔습니다.

 

이후에는 본격적인 스피치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8주 동안 복식호흡 훈련과 발성 · 발음 트레이닝에서부터, 어조 · 낭독 훈련이 이어졌습니다. 긴장을 풀고 자신감을 기를 수 있는 레크레이션 시간도 했습니다.

 

 

 

'부모님과 같은 마음으로' 두 달간의 교육을 지켜봐 온 염 경위는 "강의실에서 입 크기만 한 물통을 물고 'ㅏ, ㅑ, ㅓ, ㅕ, ㅗ, ㅛ…'를 연습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8주간 강의를 진행한 김 원장은 "'ㅅ'을 발음할 때 혀가 윗니 쪽에 닿아야 하는데, 북한식 발음은 혀가 아래로 내려가 아랫니 쪽에 닿으면서 소리가 새게 된다"면서, "북한 사투리는 우리 표준어와 발성도 다르고 호흡이 짧은 탓에 긴 문장을 읽을 경우 숨이 모자란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2달의 교육으로 모든 사투리가 교정되기는 힘들겠지만, 아이들이 북한말과 우리 표준어의 발음과 호흡의 차이를 알고, 표준어로 말하는데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교육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7월 27일 드디어 2달간의 교육을 마친 학생들이 조촐한 수료식을 가졌습니다.

 

이날 교육을 수료한 탈북 청소년 전 모군은 "표준어를 열심히 배워 예쁜 여자친구도 사귀고, 좋은 직장에 취직도 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꿈을 밝혔습니다. 또 다른 수강생 한 모양은 "그동안 친구들과 식당이나 옷가게를 가도 주문도 제대로 못 하고 옷 사이즈를 물어보는 것도 겁이 났다"면서, "지난 2달 동안 표준어의 기본 원리를 배워, 이제 혼자서도 계속 연습할 수 있게 됐다"고 스스로의 변화에 대한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의 밝은 모습에 덩달아 가슴이 쿵쿵 뛰었다는 염 경위는 "아이들이 이렇게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하다"면서, "이렇게 교육을 마치기까지 정말 많은 분의 도움과 지원이 있었다"는 말로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강남경찰서 보안과(서장 김기출)는 앞으로 해당 스피치 학원과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탈북 청소년들의 '우리말 바르게 말하기' 교육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된 탈북 청소년들이 더 이상의 두려움과 외로움 없이 '우리말'로 꿈꾸고, 웃고, 떠들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봅니다.